사실 요양병원에 들어가자고 한 이유는 이제 죽고 싶어서다.
삶의 커다란 이유가 살아진 후 그녀와 나의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늙은 다리와 체력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이사를 가자니 별다른 이유와 그에 따르는 돈도 없었다. 최종적으로 이런 상황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탄처럼 내게 다가왔다. 노인의 70% 이상은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고 한다. 30%는 집이나 다른 공간에서 삶을 마감한다는 것인데, 집에 있으면 더 오래 살 것 같았다.
병원에 들어가서 큰 아이와 입원절차를 밟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자주 올게요 아버지"
"자주 안 와도 된다. 서울까지 차 밀리겠다 조심히 올라가고 고맙다"
이제 오로지 홀로 남았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내 병실 베드에 자리를 잡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따뜻한 햇빛이 나를 비추는 남향이었다. 이제껏 남향에서 살아본 적 는데 죽을 때가 다 돼서 남향이라니... 이곳의 하루는 간단하다.
아침에 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기상을 하고 아침을 먹는다. 다음으로 의사의 회진시간에 맞춰 혈압과 체온을 재고 약을 먹는다. 10시부터는 물리치료나 산책을 간다. 산책 후에는 점심을 먹고 나른해질 무렵 TV를 보다 낮잠을 잔다. 15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인데 활동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어제는 색칠놀이를 했고 노래도 불렀다. 그러면서 옆 병실의 A 씨, 앞 병실의 B 씨와 친구가 되었다. 활동이 끝난 후 친구들과 아이들처럼 떠들다 보면 저녁을 먹고, 저녁 후에는 TV를 보다 아이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다 보면 씻고 잘 시간이 된다.
어쩌면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이 공간의 일정이 나를 더 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죽으러 온 건데... 그런 느슨한 생각이 들 때면 밤 사이 옆의 베드가 정리되었다.
아이들은 입원 후 1달이 지난 시점에 면회를 한 번 왔다. 계속 집에서 보살피는 것보다 기관의 도움을 받아 보살피는 게 더 마음이 편한 건지, 내가 미리 정리한 후 남겨둔 유산이 마음이 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결 표정이 밝아보였다. 마음의 짐이 한결 줄어들었다.
이곳 생활이 익숙해진 반년이 지난 시점,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단순 감기 같았던, 그리고 메르스처럼 일부 사람들만 걸릴 줄 알았던 '코로나'는 국가 비상사태가 되었고 모든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바뀐 것은 면회가 금지된 것이다. 외부인 출입을 막는 것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들이 변하더니 급기아 내가 좋아하는 15시의 활동이 문을 닫았다.
싱그럽게 장난을 걸던 간호조무사의 말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마스크를 쓴 친구들의 말이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귀가 어두워지며 비언어적인 표현방법인 표정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던 노인들은 눈만 보이는 표정에 소통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2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상황은 길어졌고 그 기세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달이 지날 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힘들다", "보고 싶다"는 작은 외침을 하던 노인들의 일부는 다발적인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나의 친구 B도 마찬가지였다.
"빨갱이 새끼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살려주세요"
그 시절 같은 서러움을 겪은 나의 친구는 그 시절로 돌아가버렸다. 하루는 빨갱이에 쫓기는 군인이 되기도, 하루는 그들을 처단할 계획을 몰래 짜고 있는 공작원이 되기도 했다. 다만 B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점점 병들어갔다. 조용하던 병실이 미쳐가는 소리로 가득해 견딜 수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왔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죽으러 왔다. 평온함에서 죽음을 맞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운 상황은 나를, 나의 죽음을 두렵게 만들었다. 이대로 있으면 내가 더 나약해질 거 같아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기훈 아비야, 여기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데 뭐 요즘 애들 귀에 꽂고 다니는 거 뭐 그런 거 하나만 보내줄 수 있냐?"
전화를 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내 앞으로 택배가 도착했다. 아이폰과 이상한 전자노트 같은 게 있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태블릿 PC라고 한다. 아들이 손자 녀석이 안 쓰는 것을 같이 보냈다고 그거로 뉴스 보시거나 노래 들으시라고 했다.
지나가는 간호사를 잡고 태블릿 PC와 이어폰 사용법을 배웠다. Youtube라는 빨간색 박스를 클릭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그 어지러운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루종일 youtube가 추천해 주는 영상을 이어봤다. 누군가 꽃을 찍고 올린 영상, 뉴스, 강아지 영상 등등 보다 보면 하루가 지났고 소음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날도 Youtube를 클릭하려고 태블릿 pc를 켰다. 빌어먹을 손가락이 미끄러져 다른 곳을 눌러버렸다. 열린 화면에 춤을 추고 있는 여자들이 작은 박스마다 있었고 처음 보는 영상들이 가득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내가 그날 클릭한 어플의 이름은 '아프리카 TV'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