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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스파거스 Sep 03. 2024

데이빗 스트리트의 악어(완)

캐나다까지 비행시간은 13시간. 


돈이 여유가 있었더라면 바로 직항으로 갔을 텐데 그 정도의 돈은 없다.

비행기에 올라탄 지금도, 이 결정이 맞는 것인지. 단순한 돈 낭비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앞으로 갈 뿐. 


티비 화면에 영화를 검색한다. 

볼만한 영화가 없다. 하필 영화와 드라마가 잔뜩 담긴 패드는 위 선반에 놓여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패드를 꺼내고 싶지만, 내 옆자리 160kg 거구의 남성을 깨울 자신이 없다.


영화 카테고리를 지나 다큐멘터리를 눌렀다.

악어의 신비가 보인다. 미국에는 길거리 고양이만큼 악어도 많다던데 다큐멘터리를 재생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환경운동가가 나온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악어의 성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악어는 자연적으로 번식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될 거예요"


무슨 소리인가 싶다. 환경이 지구온난화가 무슨 영향을 준다고...


화면은 전환되고 랩(LAP) 실의 악어의 알들이 보인다. 각 악어알들의 둥지에 온도계가 꼽혀있다.

놀랍게도 31.7℃ ~ 34.5℃ 사이의 둥지에서는 수컷 악어가, 그 외에 온도에서는 암컷이 태어났다.

우리처럼 X와 Y 유전자의 영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온도, 즉 그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성별이 결정되다니.


그 순간 난기류로 만난 비행기 화면은 다큐멘터리가 꺼지고 까만 화면이 나왔다.

그 화면에 비친 나의 모습이 마치 악어와 같았다. 내가 지금 이 비행기에 있는 이유와 같았다.

흔들리는 비행기 속 나는 눈을 감았다.




착각으로 시작된 그 장난은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적극적으로 부인을 해도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묵묵부답으로 응해도 아이들의 눈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밖에서는 나는 여자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되었다.


그런 나도 집에서는 남자여야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경찰인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말했다. 나의 행동을 감시하며 나의 말투를 검사했다. 


' 사내대장부가!' '남자가 그렇게 목소리가 작아서 쓰겠냐?' '밥 팍팍 먹어야지 남자가 힘을 쓰지'


아이러니했다. 나는 그저 그대로 있는 것 같은데 각자 나의 모든 것인 '친구'라는 세계와 '가족'이라는 세계가 나의 역할을 정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아버지의 자랑이자 가족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려면 남자이자 '강력한 아들'이 되어야 했으며, 친구들의 어쩌면 내가 원하는지도 모르는 그 눈빛에 부응하자면 '여자가 되고 싶어야 하는 친구'가 되어야 했다.


그 헷갈림이, 나를 정해주려고 하는 그 강요들이 나를 헷갈리게 했다. 그때부터 이 세계를 떠나야겠다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야 내가 살 수 있다 생각했다. 남은 고등학교 기간 동안 몰래 돈을 모아야 했다. 20살이 됐을 때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갈 수 있는 비행기 값을 모아야 했다. 


낮에는 학교를 가고 밤에는 야자 대신 횟집 알바를 했다. 최저시급보다 돈을 안 주는 사장이었지만 비행기 값과 조금 여유자금을 충분히 모을 수 있었다. 갈 곳을 정해야 했다. 구글 화면에 검색을 했다


"자유로운 나라, 도시"


쓸데없는 정보들이 많이 나왔다. '자원이 자유로운 나라',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나라...', 1page부터 시작해서 계속 다음으로 넘기다 보니  토론토의 '데이빗 스트리트'가 나왔다. 데이빗 스트리트를 클릭했다. 무지개 깃발로 가득한 가게들부터 시작해서 게이 거리까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도시의 풍경이었다. 뒤로 가기를 누르려는 순간. 가게를 찍으려던 블로그 주인의 카메라에 찍힌 사람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오른쪽을 향해 입을 벌리고, 꼬리를 270도 돌리며 먹이를 먹을 준비가 되어있는 악어. '크로커다일'을 입고 지나가는 백인남자. 그 남자는 웃고 있었다. 옷은 상관없다는 듯 누구의 시선도 상관하지 않는 듯하게 웃음을 지으며 지나가는 사진이 뒤로 가기를 누르려던 나의 손을 멈추게 했다.


이곳이라면 나의 이 헷갈림이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긴 비행 끝에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간단한 입국심사 후 우버를 불렀다. 저 멀리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남자가 보인다.


"Hi, Welcome to Canada, where do you want to go?"


"Let's go to David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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