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신나서 어두운 방 불을 안 켜서일까? 아니면 악어의 주둥이와 거친 눈매만 보고 옷을 고이 접어서일까? 내가 입은 악어 옷 그러니깐 내가 ‘라코스테’라고 주구장장 엄마를 조르고 얻은 옷은 ‘크로커다일’이었다.
같은 악어라고 할 수 있지만 ‘크로커다일’과 ‘라코스테’는 지금 봐도 꽤나 달랐다. 서로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고 꼬리와 머리를 평평하게 유지하는 평화로운 이미지의 ‘라코스테’와 꼬리가 구부러져있어 당장 지금이라도 먹이에 달려갈 것 같은 역동성을 보이는 ‘크로커다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달랐다.
“아 김철수 여자 옷 입고 개 웃기네. 가서 여자애들이랑 놀아”
깔깔대며 남자애들이 나를 지나갔다.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 앞에 ‘크로커다일’ 매장이 있었는데 보통 여성복 위주로 파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성복만 있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 시절 보이는 게 전부였던 우리에게는 ‘크로커다일’ = ‘여성복’이었을 뿐.
당황해서 빨개진 나의 표정과 머뭇거리는 나의 입술의 모양이 재미있던 탓일까? 그날 이후 여자옷 입은 김철수라는 별명이 계속 붙었다.
초등학교 때라면 그 정도 수준에서 끝났겠지만, 머리가 좀 큰 중학생들은 더 자극적인 게 필요했다. 날마다 나의 나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돌기 시작했다.
'김철수 사실 남자 좋아해서 가끔 여자옷 입는데.'
'저번에 남자애랑 같이 데이트 가는 거 봤다던데'
등등 점차 누가 시작했는지, 누가 퍼트리고 누가 듣는지 알 수 조차 없는 단순히 옷에서부터 시작된 김철수 이야기들은 이제 아무도 걷잡을 수 없었다.
나를 먼저 몰랐던 아이들은 나를 피하기 시작했고 나를 알던 아이들도 나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크로커다일'을 사줬던 엄마에게 향했던 나의 울부짖음은 나 자신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옷을 대충 살펴보고 나간 나의 대강대강을, 곧바로 대답하고 받아치지 못한 나의 소심함을, 그리고 그냥 내가 여자였으면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정체성의 혼동까지.
그때 좀 더 단호하게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창밖을 보며 생각에 젖여있을 때 안내방송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