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패싱' 당한 유럽, GDP 3% 수준까지 방위비 올린다?
국방비 지출에 인색했던 유럽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EU 국가들의 의견은 깨끗이 무시한 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 협의'를 시작하고 이르면 2월 중에 푸틴 대통령을 만날 기세로 협상 속도를 높여가자 이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이 파리에 모여 '유럽 평화유지군' 논의를 했지만 합의에 실패했습니다.
미국에 무임승차해 온 유럽 국방력의 현주소만 확인한 꼴이 됐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영국 장성은 "군인 숫자도 없고, 장비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럽 군수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뛰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로 유럽 각국이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공감대가 시장에 확산됐습니다.
1. 1% 국가, 2% 국가, 3% 국가
폴란드나 발틱 3국 등 동유럽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EU 국가들이 '평화 비용'을 내는데 인색했습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GDP의 3% 이상을 국방비로 쓰는 국가는 손꼽을 정도입니다. 1) 한국 무기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등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린 폴란드, 2)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같은 발트 3국 일부 국가입니다.(리투아니아 역시 2.85%로 5위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EU의 핵심 국가들은 GDP의 2%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러시아와 멀리 떨어져 있고, 국방력 강화가 급할 것 없는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같은 남쪽 나라들은 1%대의 국방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캐나다입니다. 미국 옆에 자리하고 있어, 굳이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안보가 보장되는 탓에 국방비는 GDP의 1.37% 수준입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유럽의 방위비 부담 비율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패싱을 당한 유럽이 스스로를 지키면서 동시에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들에게 전체 GDP의 5%까지 증액하고 요구하고 있고,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은 "3.7%까지 증액해야 한다"라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2. 유럽의 무기 회사들
세계 최대 군사 관련 회의라는 뮌헨안보회의(MSC)가 이번 달에 열렸습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작심 발언을 합니다.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신규 보안관'이라고 비유하면서 1) 유럽 각국의 방위 증액 2) 강력한 불법 이주 제한 정책을 요구합니다. 특히 "현재 유럽의 가치가 미국이 방어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후 유럽 방산 기업들의 주가가 계속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은 '이제 더 이상 유럽이 방위비 부담을 미국에 미룰 수 없겠구나'라고 받아들였습니다.
CNBC는 시티은행의 자료를 인용해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GDP 대비 2%에서 3%까지 올리면 유럽의 방위 산업은 큰 성장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방위 산업 주가는 대략 30%가량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보탰습니다.
미국 CNBC 방송은 이런 혜택을 볼 수 있는 유럽의 방산 회사를 몇 개 꼽았습니다. 유럽 매출 비율이 높은 유럽 회사들입니다. 유럽 각국이 대부분 자국이 방위 산업체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그 회사에 먼저 주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겁니다.
독일 방산 기술 기업 헨솔트(Hensoldt)는 올해 들어 주가가 33% 올랐습니다.
이 회사는 독일 뮌헨 안보회의가 열린 날, 하루에 주가가 12% 올라서 화제가 됐습니다. 독일 정부가 이 회사의 지분을 25% 들고 있다는 게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회사는 매출의 86%를 유럽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또 스웨덴은 Saab (Swedish defense manufacturer Saab)를, 영국은 키네틱 (British defense group QinetiQ)과 밥콕 (aerospace firm Babcock)을 보유하고 있다고 CNBC는 전했습니다.
이 회사들은 유럽 각국에 지사를 두고 있고, 이미 무기를 팔아왔기 때문에 EU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지출할 때 우선적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이런 유럽 회사들이 많이 포함된 미국의 한 ETF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 패싱'과 뮌헨 안보회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열린 미국-러시아 회담 등이 진행되는 동안 주가가 많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3)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무기를 팔 차례?
JP 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유럽 각국의 국방비 지출이 0.5% 포인트 변할 때마다 1,150억 달러의 재정적 차이가 발생한다"라면서 수혜를 볼 수 있는 미국 기업들을 꼽았습니다.
미국의 방산 대기업인 록히드 마틴과 RTX 계열사인 레이시온을 꼽았는데, 이유는 "두 회사 모두 유럽 매출 비중이 이미 11%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런 전망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구매 압박'을 전제로 한 분석입니다.
JP 모건은 "미국은 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유럽이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있으며, 무기 판매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유럽을 한껏 몰아붙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실제로 JP 모건의 분석대로, 곧 미국 무기 세일즈를 시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