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사랑이란 뭘까?"
며칠 전 애인과 어느 유명인 커플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됐다.
"글쎄. 그들이 사랑을 뭐라고 정의하고 있을는지. 그전에, 사랑이 존재하긴 할는지. 근데, 자기에게 사랑은 뭔데?"
예상치 못하게 본인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대답하게 된 애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워낙 생각이 많아, 생각이 정리된 후 얘기해보라고 하면 더 정리되거나 더 철학적인 정의를 내렸을 수도 있을 사람이지만.
#사랑은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의 힘이다
"때로는 친하고, 때로는 야하고, 같이 있으면 힘이 많이 되는 사람. 내게 사랑은 그래"
대화도 잘 통하고 같이 있으면 즐겁고 힘이 많이 되는 거, 친한 친구도 그렇잖아,라고 했더니. 친한 친구에겐 성애적 감정을 느낄 일이 없다는 애인. 아마도 그에게 애인이란 성적 매력이 크게 작동해야 하는 부분이라, 성적 매력이 있으면서도 친한 친구 같은 이와 나누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듯했다. 다만 지금보다 젊을 때는 이끌림이 크면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도 사랑이라 여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끌림의 강도가 약해도 대화가 잘 통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고. 요즘 함께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가며 내가 더 소중해졌다고 고백하는 애인이었다. 안 그래도 의미 있는 우리의 시간이 더욱 유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
함께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
함께 느끼는 마음의 애틋함,
그 모든 게 어우러진 무한한 상태를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덕분에 사랑하는 사이에는 몸으로 나눈 스킨십조차도 마음에까지 설렘과 안정감을 선사하는 메커니즘을 이루게 되는 거겠지.
요즘 우리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고 별 거 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생활이 지루해져 버린 이 코로나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몇 시간씩 통화해도 지루하지 않고, 학생 시절 배운 지식을 다 까먹어 업무 외적으로는 멍청해져 버린 나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그러면서도 본인은 신난 채로 설명해준다. 자기의 별 것도 아닌 농담에 까르르 넘어가는 나를 보며 뭐가 그리 재밌냐고 신기해하고 좋아하다가도, 혼자 있을 때 가끔 내 웃음소리를 생각하며 웃는다는 애인(내 웃음소리가 좀 독특하고 웃기긴 하지만ㅋㅋ). 대화가 잘 통하는 걸 넘어서서 개그코드도 잘 맞는 우리. 덕분에 그 무엇에도 쉽게 싫증을 잘 느끼는 두 사람이 만났으나, 다행히 서로에게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있다.
#사랑은 애정에너지에서 발현된 노력의 힘이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만큼은
끝도 없이 지기도 하고 그런 것
2008년에 방영됐던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일도 사랑도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남유희라는 캐릭터가 사랑에 대해 정의한 말이었다. 원작도 드라마도 워낙 좋아했던 터라 최근에 그냥 틀어놓고 딴짓도 하면서 보곤 하는데, 저 대사가 귀에 꽂혔다.
내게 사랑이란 서로에게 닿는 과정 그 자체다. 예전엔 노력이 필요 없을 만큼 마음이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가족 친구 연인 등 내 주변 소중한 모든 관계에 얼마나 진득한 노력이 필요한지, 그 노력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원천 자체가 애정 에너지라는 사실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곁에 있을 때나 떨어져 있을 때나 서로를 아끼고 표현하는 그 모든 마음이 노력의 범주 안에 있다. 그 노력들은 서로의 정서적 안정감으로 이어진다.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좋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엔 허전하거나 불안하다는 커플들도 생각보다 많다.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그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정서적 안정감. 누군가는 불안이, 사랑이나 흥분 또는 설렘의 감정과 비례한다고 얘기하지만, 내겐 이제 '노력'과 '정서적 안정감' 이 두 가지가 없는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핵심이다.
#사랑은 또다른 나를 발견하게 하는 변화의 힘이다
나를 환하게도 어둡게도 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웃게도 울게도 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좋은 사람으로도 초라한 사람으로도 만드는 사람
하지만 결국엔
언제나 좋고
언제나 아름다우며
언제나 충만한
맛있는 걸 먹을 때도
좋은 곳에 갔을 때도
재밌는 걸 봤을 때도
언제나 생각나고 다음엔 함께하고 싶은 사람
내 곁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내 삶에 늘 머무는 사람
생각해보면 지금의 애인은 이런 사람이다.
예전엔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사람과 나누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이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연애를 해볼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존경(은 무슨... 위인도 아니고)보다는 그저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좋고, 격한 감정보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좋다. 마냥 좋기만 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이 좋은 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균형감있게 이뤄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여름 태풍이나 태양같은 강렬한 감정보다 평온한 산들바람이나 따스한 햇살 속 기분을 훨씬 잘 느끼게 되고 원하게 되는 것처럼.
40대의 연애에서는 그동안의 나와 많이 달라지긴 했다. 간단한 예들만 얘기해보자면...
양치하지 않은 상태론 뽀뽀조차 꺼렸던 내가 (청결함의 문제에 있어서 업무 할 때만큼이나 까다롭다) 밥 먹고 난 직후에도 거리끼는 마음 없이 입맞춤을 잘 나눈다. 연인과는 서로 방귀도 트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던 내가, 방귀 뀌는 그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실제로 그는 내가 이런 성격인 걸 알고 조심해주는 표현 중 하나로, 저 멀리에서 나를 보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스를 해결하고 온다. 그 모습을 엄청 귀여워하는데, 그의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절레절레하더라...) 물론 나는 아직 트지 않았다. 전의 연애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해하고 있는 나를 보기도 한다. 나이 든 만큼 내 아량이나 포용력이 더 넓고 깊어졌을 수도, 가치관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니까,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니까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 것이다.
물론 그도 많이 변했다. 잦은 스킨십은 좋아하지 않던 그가, 껌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나를 귀여워한다. 꽃이나 목걸이를 선물하지 않는 그가 그런 선물도 할 줄 안다. 밥 먹고 카페 가는 문화에 익숙지 않은 데다 커피도 즐기지 않는 그가 이제는 달라졌다. 그의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되었을 많은 일들을 나니까 이해하며 입장 차를 좁혀볼 때가 많다. 그가 일부러 티 내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나와 같은 마음일 테니까.
서로에게 맞춰져 가며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 40여 년 이상을 다르게 살아온 우리가 만나 서로에게 딱 맞는 사이가 되어가는 과정. 서로에게는 어설펐을 우리가 완벽해져 가는 순간. 완벽해지지 않는다 해도 이 나날들을 사랑한다. 이 순간의 우리를 애정 한다. 우리끼리 내려보는 사랑의 정의는 먼 훗날 또 달라질 것이다. 먼 훗날에도 이런 시덥잖은 얘기들을 나눌 우리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