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연찮게도 걔의 이름도 최준이었다.
우연찮게도 걔의 이름도 최준이었다.
코로나 19만 끝나면 아프리카 여행을 갈 거라고 했다.
“광활한 들풀이 있는 초원에서 키 큰 기린 사이로 노을이 뉘엿뉘엿 지는 걸 보고 싶어.”
철없는 그 말까지, 영락없는 최준이었다.
한 가지 다른 게 있었다면 걔는 잘생겼고, 또 슬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걔를 줄곧 사랑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잘생긴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하영아 여기 봐야지.”
돌 사진을 찍을 때도 나는 등기 우편을 전해주러 왔던 잘생긴 우체국 아저씨를 빤히 바라보곤 했다고 엄마가 말해 줬다.
그때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사 아저씨가 웃으면서 보였던 누런 치아 사이에 껴있던 고춧가루가 거슬려서 쳐다보기도 힘들었던 느낌이 배꼽에서부터 전해져 온다.
유치원 때의 힘찬이도,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민성이도, 중학교 1학년 때의 도운이도,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강준이도 모두 모두 빠짐없이 잘생겼었다.
당연하다. 모두 다 우리 오빠들이었으니까. 현실 세계에는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잘생기고 슬림한 사람을 좋아했던 나는 여지없이 빠순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 오빠들은 너무나도 잘생겼었고, 나는 늘상 사랑이 넘쳤다.
용돈을 모아 앨범을 열 장 넘게 사서 공방을 뛰고, 포토카드를 교환했고, 팬사인회 선물을 샀다.
우리 오빠들 머리에 내가 준 귀여운 토끼 머리띠가 꽂혀 있으면 그렇게 짜릿할 수도 없었다.
물론 대학교 남자들은 중고등학교 남자애들보다 훨씬 나았다.
코트를 입을 줄 알았고, 향수를 뿌릴 줄 알았으며, 머리를 만질 줄 알았다.
스테이플러 심처럼 박혀 있던 수염도 제대로 깎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오빠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었다.
여드름 자국들은 여드름 자국이지 사춘기의 열꽃으로 포장이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가려도 우리 오빠들처럼 그렇게 도자기 같이 매끈한 하얀 피부에 직각 어깨에 호리호리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 그들을 싫어했다기보다는 우리 오빠들을 좋아했던 거다.
뭐 나도 걔들이 좋아하는 나연 언니처럼 예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게는 남자인 친구들이 꽤 있었고 서로에게 못생겼다고 말하곤 했다.
화장으로 가려도 어렴풋이 보이는 여드름 자국을 갖고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됐다.
아주 공평했고, 우리는 서로에게 혐오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살아가기보다는, 무관심으로 일관함으로써 보다 사랑할 수 있었다.
외모지상주의는 나쁘다고 하지만, 내가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질타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연의 순리였고 모두의 본능 속에서 나는 좀 더 솔직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학교를 와서도 경영학과면서도 미학을 복수 전공했다.
아름다움이라는 진리를 탐구하면서 더더욱이 덕질은 나의 길임을 깨달았다.
이런 내가 그 최준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