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헐렁하게 삽시다.
"나이가 들면 자신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때로는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작년 2022년은 난이도 극상의 해였다.
연초에 5년 남짓 다닌 첫 회사를 퇴사하고 대기업으로 이직에 성공했지만, 이직 후 한 달 만에 결혼 생각까지 했던 남자친구와 불현듯 헤어졌다.
그래도 삶은 어떻게 흘러갔고, 안정을 찾는가 싶더니 연말에 구조조정과 동시에 무지성 청약에 당첨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불안정했다.
이러다 '탈모가 오는게 아닐까' 라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의 걱정을 달고 살았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해 올 때, 일기장을 꺼내서 머리 속을 맴도는 복잡한 생각들을 펼쳐 놓았다.
생각은 생각만으로 끝나버린다. 그래서 내가 도대체 뭘 걱정하는 지 그 실체가 뭔지 꺼내 적어 보았다.
집 : 더 넓고 아늑한 공간에 살고 싶어 이사를 결심했으나, 높아지는 대출 금리로 생각보다 더 부담스러워진 주거 비용을 어떡하나. 요즘 전세 사기가 많다는데, 부동산 중개인과 집주인도 그런 게 아닐까. (둘은 지인 사이였다.) 가구를 새로 사야하는데, 언제 다 알아보지.
일 : 구조조정으로 초상집 분위기와 다름 없는 사무실을 언제 벗어날 수 있나. 퇴직금 받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데. 가고 싶은 직장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뭐 해먹고 사나.
연애 : 서른 초반에는 결혼이 하고 싶은데, 일단 연애는 어떻게 시작하지. 내가 호감이 있는 저 사람은 왜 날 안좋아하나. ㅁㅊ 설마 얘는 날 좋아하나.
불안과 걱정과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상상했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스스로 답하고 적어 보며 정신을 차렸다.
(참고) 곽새미 작가님의 [퇴사 전보다 불안 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던 중에 작성했습니다. 감사해요 작가님.
예를 들어,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직장에서의 갑작스런 해고라면,
“위로금 등 최대로 받고,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회사와 협상하며 향후 계획을 세울 것이다.”
“잠시 쉴 수 있도록 여행을 가거나, 혹은 곧바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구직 사이트와 네트워크를 활용하겠지.”
그런데, 해고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퇴사라면? (여기서 핵심은 "내가 선택한" 이다.)
“지친 마음이 회복할 수 있도록 잠시 쉬면서 인생의 방향성과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쉬는 동안의 여유 자금을 마련해두고, 작은 아르바이트라도 시작해야겠지."
그러니깐, 이게 외부 상황이 아니라 내 선택이라면,
‘여유’를 가지고 뭐가 필요한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 지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퇴사 하려면?
주거비용만이라도 충당할 수 있는 월급 소스 마련 해야 함.
생활비는 아르바이트, 외주, 재취업 등으로 충당할 수 있어야 함.
그동안 모아온 돈의 여유분 있어야 함.
그래서 필요한 건?
월 - 만원 수익 파이프라인 클래스, 파트타임, 컨설팅
일을 구할 수 있는 네트워크
비상금 여유분
그래서 어떻게 해야해?
전문 자격증 취득 - 요가 강사, 스포츠 지도사 등
나만의 컨텐츠 만들기 - 직무 멘토링, 클래스
와인바, 이자카야, 카페 등 F&B 경험
직무 관련 모임과 직장 네트워크
소비 줄이기 + 저축
나를 힘들 게 하는 건 내 자신이라고, 불안의 실체는 내 안의 부정적인 나였다.
부정적인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 주니 불안이 사라졌다.
길을 잃는 것도 찾아 가는 것도 내 몫이다. 하루하루 온전히 경험하며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 갈 것.
지치지 않게 마음이 따듯하고 싶을 때 꺼내 먹는 문장이 있다.
갓 오븐에서 꺼낸 따뜻한 애플파이, 진한 레몬밤티, 딸기가 그렁그렁한 생크림 케이크, 그리고 선암사의 조용한 뜨락, 파초잎을 스치는 바람과 연보랏빛 작약 꽃다발, 토란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조금은 헐렁한 마음으로 상냥함을 잃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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