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천절, 한글날, 추석이 이어져 하루 휴가만 쓰면 10일을 연속으로 쉴 수 있는 직장인에게는 최고의 연휴를 맞이했다. 그러나 나의 기억에는 인생 최악의 휴가로 남았다. 그 이유는 바로 나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찜찜한 일이 생기면 편하게 쉬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나의 성격 탓일까. 아니면 소심한 탓일까.
나의 업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일이 존재했다. 관리자에게 이 사실을 보고 했지만 나와는 다르게 치명적이지 않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치명적인데도 말이다. 문제가 있는 것을 뻔히 아는 나에게 일 생각하지 말고 푹 쉬고 오라는 관리자의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맘 편한 이야기였다. 책임은 관리자에게 넘어갔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선배들의 조언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책임은 관리자가 지겠지만 문제 해결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일을 뒤로한 채 나의 연휴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10일이라는 긴 휴가기간 동안 나의 마음은 단 1분도 휴가를 간 적이 없었다. 장애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계속 스마트폰을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벨소리의 음량을 최대로 바꾸어 놓아도 계속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것 같이 환청이 들렸다. 혹시나 장애 전화를 못 받을까 하는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의 사장이 나인 것처럼 책임이라는 책임은 다 갖고 회사생활을 한 것 같다)
내가 말한 시한폭탄 같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예를 들면, 만약 카카오톡이 1시간 정도 중지된다면 어떠한 일이 발생하겠는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카카오톡을 받지 못함으로써 많은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근을 해야 될 테고 10일이라는 긴 연휴 내내 온갖 질책을 받으며 보내게 될 것이다. 남들에게는 황금연휴겠지만 나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연휴가 될 것이 싫었고 두려웠다. 또한 회사 근처에 내가 있었더라면 그만큼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출근하면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추석이기 때문에 시골인 강원도로 가야 했고 문제가 터지면 바로 출근해야 하는 나로서는 거리상으로도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고 미칠 것만 같았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심장이 뛰고 호흡이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식은땀도 나고 점점 체력소모가 심해졌다. 그렇게 내가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잠을 자는 방법밖에 없었다. 잠에 들게 되면 아무것도 모르고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20시간은 잠을 청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자다가 눈을 뜰 때면 가장 먼저 전화기를 확인했다. 혹시나 부재중 통화가 있을지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났을까. 전화 한 통 연락 오지 않았지만 나의 머릿속은 아직도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고 있다.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는 현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수레바퀴처럼 계속 내 머릿속은 같은 생각으로 반복하며 떠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즐거운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렇게 나의 황금 같은 연휴 10일을 불안 속에서 보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쉬지도 못하고 불안 속에서 걱정한 것이 너무 억울해 미칠 것만 같았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변한 것은 없지만 나의 마음은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갔다는 것이다.
불안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은 99%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문제가 생기면 큰일 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지금 나에게 다시 일어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불안장애를 경험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나는 불안을 인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큰일 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나에게 공포감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먼저 인지하고 그 문제가 미래가 아닌 지금 발생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첫 번째로 생각의 시점을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그 문제가 발생하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리해 보라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2017년 연휴에 경험했던 일을 예로 들어보겠다.
지금 나에게 문제가 생기고 장애가 발생했다고 전화가 왔다. 그럼 나는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출근을 해야 될 것이다. 그럼 출근하면 된다. 그리고 나 이외에 팀원도 같이 나와서 문제를 파악할 것이다. 그렇게 파악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문제가 풀릴 수도 있고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큰 회사에 나의 시스템을 담당하고 아는 게 나뿐이라는 것이 가장 큰 불안감이었다.(나의 업무를 담당하는 선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못하면 회사에서 전문가를 찾아서 구해올 것이고 그렇게 해결될 것이다. 그럼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나에게 질책이 심한가? 이미 관리자에게 보고했기 때문에 나에게 큰 질책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그렇지만 출근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짜증과 두려움이 연휴기간 동안 나를 불안이라는 감정 속에서 생활을 하게 만든 것이다. 애초에 업무상 당연하게 해야 될 일이라고 받아들였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불안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문제에 대해서 해결하지 않고 계속 회피하도록 나를 만든다. 그렇게 되면 불안은 멈추지 않고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고 나는 무기력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인지해보기도 하고 시점을 바꿔보도 보고 어떠한 결과가 생길지에 대해 정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한 번에 좋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번에 좋아지면 다행이겠지만 꾸준히 위와 같은 방법으로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떠한 걱정과 불안이 온다 해도 해결될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