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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Dec 15. 2019

술 마신 다음 날

불안장애 환자의 일상

 불안이 줄어들면서 기분이 좋았던 탓이었을까? 며칠 전 불안을 경험하고 끊었던 술을 아내와 한 잔 마셨다. 왜 나는 불안 때문에 술을 끊어야만 했을까? 한동안 퇴근할 때마다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는 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시면서 푸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도 불안한 마음을 풀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불안에 대한 감정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생각난다 해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에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술을 마시는 동안 느끼지 못했던 불안을 포함해 더 큰 불안이 나에게 찾아왔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회복했다고 생각했던 지금의 나에게 술 한잔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다시 불안이라는 지옥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불안장애 때 경험했던 몸상태를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몸의 기억은 다시 불안을 떠오르게 하였고 불안이 심해졌다. 회복된 줄만 알았던 불안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동안 불안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방법들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오늘은 마음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하루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틀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정신과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매주 만나는 의사 선생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분명 지난주만 해도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나의 밝은 모습에 선생님도 좋아하셨는데 오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체 나에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나 : 요즘 12월이다 보니 송년회가 많이 있어서요. 조금 괜찮다 싶어서 술을 좀 마셨더니 다시 불안이 찾아와서 힘드네요.

선생님 : 사회생활을 하려면 송년회를 안 갈 수도 없고 말이죠 참... 또 가서 술을 안 먹을 수도 없고, 술을 먹다 보면 또 괜찮다 싶으니 더 마시게 되고 그렇죠?

나: 네 맞습니다. 저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직인가 봐요.. 좀 힘드네요.

선생님 : 그래도  xx 씨가 나아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요? 평소에는 그만큼의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전보다 아주 발전이 있다는 뜻입니다. xx 씨 처음 왔을 때 기억하세요? 눈물 흘리면서 정말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그때는 술 먹은 다음날뿐만 아니라 매일이 그랬었잖아요. 그렇지만 지금은 어때요? 술을 마신 다음날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예전에 xx 씨보다 얼굴 표정이 밝아요. 좋아졌다는 뜻이에요. 좀 더 치료하면 불안이라는 감정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감사합니다. 선생님 근데 혹시 왜 술을 먹으면 불안이 더 심해지는 것일까요?

선생님 : 보통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은 전반적으로 긴장되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근데 술을 마시게 되면 긴장감이 조금 풀리면서 불안이 줄어들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나 술은 뇌의 상태를 불안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회복하는 과정에서는 더 큰 불안을 느끼게 한다는 거죠. xx 씨 술 많이 먹은 다음날 새벽에 깼을 때 잠이 잘 안 오는 경우가 있었던 적 있나요?

나 : 아 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안 오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선생님 : 알코올이 신경계를 불안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잠을 못 자게 만들면서 불안감은 더 커지는 것이죠.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술을 마셔야 한다면 최대한 늦게까지 마셔요. 그럼 잠을 깬다 해도 아침이겠죠? 그럼 다시 자야 하는 불안감을 마주할 일은 없답니다(허허). 그러나 안 먹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 명심하세요!

나 : 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또 도움을 받고 갑니다. 늘 감사합니다.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채 오늘의 상담도 끝이 났다.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나에게 술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아니고 즐거움을 가져다는 존재도 아니고 이 상황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나에게 술 한잔은 또 다른 불안을 초래하는 것뿐이다. 지금은 말이다.

 불안함과 걱정을 술로 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불안함과 걱정을 일시적으로 잠재울 뿐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 불안과 걱정 속에 힘든 삶을 마주한다면 술을 마시기보다는 불안에 대해 인지 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좋다. 만약 혼자 인지하기가 어렵다면 책을 읽거나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불안장애를 경험하는 이들이 즐겁게 술 한잔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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