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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리 Mar 20. 2018

1화  섭식장애의 시작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섭식장애를 다룬 책이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보면 섭식장애를 처음 자각하는 것.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들 한다. 나 역시 정신질환으로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첫째, 타인과의 교류에서가 아닌 혼자 만의 공간에서 남들 모르게 행해지는 행동들이기에 굳이 밝히지 않으면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믿었다. 둘째, 내가 자괴감에 힘들어하는 것일 뿐이지 큰 문제는 아닐 거라고 회피하고 싶었고 셋째, 섭식장애라는 타이틀 자체가 수치스러워 인정할 수 없었다. 


 내 인생에서 섭식장애의 시작은 여전히 모호하다. 어느 순간부터, 어떤 나이부터 갑자기 발병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진행됐고 하나씩 행동화됐으며 점차적으로 그 농도가 진해졌다. 그럼에도 내가 더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은 있다. 그것은 대학시절로 두 분의 교수님과 몇몇의 학생들과 함께한 식사자리였다. 저녁식사였고 메뉴는 국수였다. 나는 개인별로 분배돼서 나오는 음식을 윗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이미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비빔국수는 얼마나 먹었는지 너무 잘 드러날 터이기에 잔치국수를 시켰다. 나는 먹기 전에 옆자리의 남 학생에게 몇 젓가락을 덜어준 뒤 국물을 겨우 마셨는데 그것도 견디기 어려워 결국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했다. 이 사건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던 교수님과의 식사자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교수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그 모든 욕구보다 음식을 섭취했다는 역겨움이 우선됐다는 것이 두고두고 충격이었다. 심지어 그 국숫집 화장실은 남녀 공동 화장실로 파리가 들끓던 비위생적인 환경이었다. 

 이 경험은 섭식장애를 부정하고 싶었던 첫 번째 이유가 틀렸다는 걸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사실은 사회생활에 지장을 느낀 지 오래되었고 주변에 숨길 수 없는 이상행동들임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사건 이전부터 이미, 나는 먹는 양을 줄여가며 칼로리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살이 찌면 안 된다는 강박에 과자나 인스턴트식품은 처다도 보지 않았고 밥은 반 공기에서 반의 반 공기로, 열 숟가락에서 다섯 숟가락으로 줄어들었다. 더 이상 밥을 씹어 삼키기 싫어지자  쌀 몇 숟가락을 물에 끓여 탱탱 불린 멀건 죽을 하루 종일 나눠먹었다. 사람들이랑 함께 식사를 할 땐 내가 어느 정도를 먹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전골이나 탕을 먹으러 가곤 했다. 고깃집에라도 가게 되면 무조건 내가 고기를 구워서 먹는 기회를 줄였고 조금이라도 배가 부르다 싶으면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결국엔 쌀을 완전히 끊어내고 그 외의 탄수화물 섭취도 극단적으로 절제하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어느 날 위산이 배를 난도질하는 고통에 자취방에서 혼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 개통 사은품으로 받은 육개장 사발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헐레벌떡 포장을 뜯고 생라면을 입으로 쑤셔 넣었다. 다른 컵라면에 비해 면이 얇은 육개장 사발면이 뽀각 뽀각 소리를 내며 씹혔다. 한참 생라면을 먹다가, 튀긴 밀가루를 먹어 버렸다는 사실에 경악한 나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방 한가운데서 구토를 했다. 부서져 있으나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조각난 라면들이 침과 함께 방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이때 내가 한 생각이 무엇이었느지 아는가?  나는 더러워진 방을 걱정하지 않았다. 겨우 섭취한 음식을 토했다는 자괴감이 든 것도 아니었고 내 위와 식도의 건강을 염려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음료 없이 생라면을 먹으면 토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또 내가 생라면이나 이런 유의 딱딱하고 마른 음식을 먹게 된다면 꼭 물이랑 같이 먹어 더 쉽게 토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조각난 라면의 뾰족한 단면들이 식도를 긁어 토해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토한 후에는 먹은 만큼 다 토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집 밖으로 나가 한 시간 가량을 뛰어다니며 열량을 소모했다. 

 비단 자괴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들은 내게 치명적인 문제가 되어있었다. 위염과 식도염이 생기고 머리카락과 근육들이 빠져나갔다. 화장실에 왜 그렇게 오래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더 이상 변명할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불행했다. 나는 너무 고통스럽게 살을 빼고 유지하는데 날씬한 내 모습이 예쁘다는 피드백이 나를 가장 슬프게 했다. 먹는 것에 대한 강박과 집착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신체적 건강과 정신사회적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내가 대학생 때 집착했던 숫자는 43. 

 43킬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그토록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아무것 안 해도 밝게 빛났을 나이. 나는 저울에 표시되는 43을 위해 포기하고 잃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느새 나는 서른을 넘었고 그 사이 내 몸은 63킬로와 36킬로를 경험하였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대체 내가 무슨 장애인지 헷갈릴 것이다. 토하는 걸 보면 폭식증 같기도 한데 식사를 절제하며 마른 몸을 가졌다고 하니 거식증 같기도 할 것이다. 혹은 거식증과 폭식증을 모두 진단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63킬로였던 적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섭식장애란 음식을 섭취하는 것에 현저한 장애를 가진 모든 정신질환을 포함한다. 현재 미국 정신 의학회 APA가 분류한 진단기준에 의하면 정확한 명칭은 급식 및 섭식장애 (Feeding and Eating Disorder )이다. 급식 및 섭식장애 안에 신경성 식욕부진증 (Anorexia nervosa), 신경성 폭식증 (Bulimia nervosa), 폭식증 (Binge Eating Disorder) 이 있다. 


 신경성 식욕부진이 익히 알고 있는 거식증이다. 거식증은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체중감소와 유지를 위해 음식을 거부하며 영양섭취를 하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 여기까지는 쉬운데, 신경성 폭식증과 폭식증. 비슷한 이름의 진단명이 두 가지다. 이 둘의 차이는 폭식을 한 뒤 보상 행동을 하느냐 아니냐이다. 신경성 폭식증은 과식에 대한 불안으로 설사 제등의 약물을 사용하거나 구토를 하는 제거 행위를 할 때 진단된다. 그러나 폭식증은 상습적인 과식으로 자괴감과 불안을 느끼지만 보상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살이 찔 것이 두려워 식사를 거르거나 최소화하면서 신경성 대식증처럼 섭취한 음식을 제거하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 사이 심하게 살이 찐 경험도 있다. 

 나의 정확한 진단명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다. 거식증은 다음의 핵심적인 세 가지를 증상을 보인다. 

지속적인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며 현저한 저체중을 유발.

체중 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한 지속적인 행동. 이러한 행동은 저체중일 때도 이어진다.

본인의 체중과 신체상의 왜곡.


 나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한다. 모두가 징그러울 만큼 말랐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허벅지와 뱃살이 보인다.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뱃살을 체크한다. 살이 찌지 않기 위해 어지러움을 견뎌가며 운동하고, 다이어트 약을 복용한다. 곤약이나 사과를 먹고도 배부르다 싶으면 토한다. 현재 나의 BMI는 '15'로 식욕부진증의 심각도는 고도이다. 15 이하로 떨어지면 최고 단계인 극도로 돌입하게 되고 입원이 필요하게 된다. 


 다른 섭식장애 관련 서적이나 포스팅을 읽어보면 식욕을 참지 못한 거식증 환자들의 많은 수가 폭식증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거식증에도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이다. 제한형과 폭식/제거형이 그것이다. 제한형은 단식 및 운동으로 저체중을 유지하는 것이고 폭식/제거형은 나처럼 스스로 구토를 유발하거나 하제, 이뇨제 등을 오용하는 부류이다. 그리고 폭식/제거형의 일부는 폭식이 아닌 소량의 음식 섭취 시에도 규칙적으로 제거 행동을 보인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은 5년 안에 증상이 일시적이거나 완전히 나아지는 현상(관해寬解)을 경험한다. 나 역시 이 시기에 살이 토실토실 쪘었던 거다. 관해에도 부분 관해와 완전 관해,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후에 더 언급할 것이다. 


 거식증에 대한 일반적 오해에 대해 바로잡고 싶은 것 중 하나는 거식증과 신경성 폭식증이 동시에 진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통되는 많은 정신적, 행동적 증상에도 불구하고 각 진단명의 임상적 경과, 결과, 치료 필요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섭식장애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부끄러운 일인데 나처럼 폭식/제거형을 보이는 환자들은 더 심한 수치심을 느낀다. 음식을 거부하는 수많은 이유와 원인을 살펴보면 그 수치심의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더불어 자기관리가 잘 된 사람에게는 찬사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비난이 쏟아진다. 날씬한 몸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질투를 유발하는 사회분위기에서 폭식과 구토는 '그럼 그렇지. 저렇게 까지는 아니야. 내 그럴 줄 알았어.' 등의 비난으로 이어지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절제형의 거식증 환자에게는 나름의 동정과 대단하게 보는(부러워하는! 이게 말이되는가? 하지만 거식증에 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들을 지칭하는 '프로아나Pro-Ana'라는 단어까지 존재한다!!) 시선이 가지만 신경성 폭식증이나 폭식/제거형 거식증 환자에게는 더 많은 질타가 가는 것이다. 


  오늘 이 수치심을 안고 고백하건데,

나는 폭식/제거형의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며 관해를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만성화된 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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