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86
어느덧 성큼 가을 속으로 들어왔다.
문화센터를 다녀와서 아기 밥을 먹이고 한숨 재운 뒤, 춥지 않게 단단히 채비를 한 뒤 아기와 함께 집을 나섰다.
초록에서 알록달록한 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하는 나무들을 보여주며 가을이 어떤 모습인지 자세히 알려주고 싶어 말이다.
엄마랑 밖으로 나가서 놀자~ 하고 이야기해 주며 나선 집. 나뭇잎들이 여전히 초록인 경우가 더 많았지만 곳곳에 빨갛게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나무도 있어서 오히려 변한 색상이 눈에 더 잘 띄었다.
원래 산책을 할 때의 속도가 1배속이라면, 오늘의 산책 컨셉은 <가을을 온전히 느끼기>이기 때문에 0.7배속으로 걸음을 걸으며 아기의 시선을 옮겨주었다.
유모차에 탄 아기는 검지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눈앞에 펼쳐진 가을을 온전히 맛보기 시작했다. 예쁜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빨간색 꽃들이 보이는 곳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기가 꽃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예쁜 꽃들을 만지고 싶어서 손을 뻗는 아기에게, 눈으로만 보자고 이야기해 주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또 옮겨보았다.
길을 걷다 보니 빨갛게 열린 남천 열매가 탐스러워서, 동글동글 빨간 열매라고 말해주며 열매가 흔들리도록 손으로 톡 쳐보며 아기의 관심도 끌었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갈색 등 다양한 자연의 색을 만날 수 있었던 오늘의 가을 산책은 무려 40분이나 소요되었다. 평소의 속도로, 그냥 산책을 위한 산책을 했다면 20-25분 정도로 끝났을 짧은 산책 코스였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아기가 지겨워하지 않고 두 눈을 반짝이며 가을을 눈과 마음에 담아둔 것 같아서, 나 역시도 몹시 행복했던 가을 산책이었다.
산책길에 만난 강아지들도, 내가 싫어하지만 지나가는 길에 있으면 아기에게는 꼭 보여주는 비둘기도, 나무 위에서 짹짹거렸던 얼굴을 알 수 없는 새들도 모두 아기의 마음속에 담겼겠지!
아참, 그보다도 엄마와 함께 한 가을 탐험 그 자체가 아기에게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자연 관찰을 아기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기에 말이다.
앞으로 아기가 조금씩 커가면, 같이 쭈그려 앉아서 개미도 관찰하고 풀도 만져보고 흙놀이도 하고 그래야겠다.
아기 덕분에 동심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계절을 함께 즐기며, 행복한 기억을 차곡차곡 모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그런 밤이다.
오늘은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여든여섯 번째 날이다.
아기와 가을 산책을 하며,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내게 가져다주는 모습. 영차영차 기어가고 있는 개미를 관찰하는 모습. 내가 잡지 못하게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모습.
아직 걷지 못하는 우리 아기이기에, 아기가 걷게 되면 얼마나 더 귀여울지 감히 상상이 되질 않는다.
문화센터에서 걷기를 시작한 아기들을 보면 엄마들이 아기를 잡으러 다니기 바빠 보이던데, 그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되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을 보면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그 모습을 나도 조만간 볼 수 있다니!
엉금엉금 기어서 이동하는 지금 이 모습이 추억이 되는 날이 조만간 온다는 생각을 하니, 살짝 아쉬워지기도 한다. 걷게 된다는 건, 그만큼 아기가 훌쩍 성장했다는 방증이니 말이다.
눕고, 엎드리고, 기고, 걷고.
이제 마지막 단계인 직립보행만을 남겨둔 우리 아기.
아기의 성장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음에 문득 행복해지는 이 순간이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아기의 모습을 눈에 많이 담아두어야겠다.
훗날 그리워할 이 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