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89
매일 아침, 잠을 자느라 헝클어진 아기의 머리카락을 슥슥 빗어주고 한쪽씩 양갈래로 뿅- 묶어준다.
길고 길었던 여름이 이제 겨우 지나갔지만, 한여름에는 집안이 아무리 시원해도 조금만 활동하면 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곤 했기에 머리 묶기는 필수였다.
지금보다 더 아가 시절에는 자라나는 머리가 마치 잔디인형처럼 솟아나서, 대체 어디까지 솟아오르나 궁금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머리카락들이 위에서 버티기 무거웠는지 옆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아기의 귀여움을 한 스푼 더해주기 위해 머리 중앙에 꽁지를 하나 만들어 묶어주었다. 양갈래로 하기엔 머리카락 길이가 역부족했기에 하나로 묶는 것이 최선이었던 시절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머리카락에 어느덧 양갈래가 가능한 길이가 되면서부터, 줄곧 아기는 말괄량이 삐삐처럼 양갈래 머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전보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나다 보니 삐삐머리를 하면 머리카락들이 불꽃놀이를 하듯 한가득 사방으로 퍼진다.
양쪽으로 솟아난 머리카락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가끔 아래쪽으로 묶어줄 때도 있는데, 그러면 윗부분에 아직 덜 자란 머리카락들이 쉽게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아직은 한가득 솟아난 삐삐머리를 고집하는 중이다.
우리도 헤어스타일에 따라 이미지가 변하듯, 아기도 마찬가지이다.
양갈래 머리를 한 아기는 장난꾸러기 어린이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남편이 장난을 친다고 머리를 감기다가 거품으로 머리를 김무스처럼 만들어놓으면, 그냥 정말 김무스가 따로 없다.
막 씻고 나와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머리를 한 아기를 보면 아주 아기 같기도 때론 청순해 보이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난 아기는 부스스한 머리 덕에 순박한 시골 아기로 변신해있다.
그렇다, 우리에게만 있는 줄 알았던 머리빨이 아기에게도 있었다!
이렇게 아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미지 변신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 변신을 돕는 것은 바로 나!
아기의 전담 헤어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매일 곁에서 머리를 수정하고 또 수정해 준다.
무보수로 일하고 있지만, 아기가 너무 귀여우니 그즈음은 눈감아주는 중이다.
내가 아기의 헤어아티스트로서 해고되는 날은 언제일까?
그날이 올 때까지 귀여운 우리 딸의 곁에서 오래오래 열심히 일해봐야지!
오늘은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여든아홉 번째 날이다.
오늘은 모처럼 아기의 머리를 묶지 않은 날이다. 대신 눈을 찌르는 머리를 살짝 올려 핀을 꼽아주는 걸로 스타일을 마무리하였다.
아기의 머리를 빗겨주다 보니, 문득 어릴 적 내 모습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이었을까-
엄마가 양갈래로 머리를 묶어주셔서 잘 되었는지 거울을 딱 봤는데 대칭이 맞지 않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한쪽 머리를 풀러 거울 앞에서 내가 다시 대칭을 맞춰 묶어주었다.
아마 그때부터 내 전담 헤어 아티스트였던 엄마의 입지는 조금씩 조금씩 좁아졌을 것이다.
딸이 스스로 할 줄 알게 된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셨을까- 혹은 이제 머리를 스스로 묶으려는 아이의 모습에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드셨을까-!
아마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떤 감정이 들지는 훗날 내가 직접 경험해 봐야 정확히 알 것 같다.
’ 우리 아기는 언제부터 혼자 머리를 묶게 될까?‘
아직 한참 먼 그날을 상상해 보며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아기의 작디작은 머리끈을 모아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