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Ⅱ. 죽음에 대하여 ⑧-1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인의 친구가 반려고양이의 마지막을 앞둔 듯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경험자의 조언을 구했다.
환묘는 미미와 같은 페르시안 계열의 고양이로 다낭성 신장질환(PKD)을 갖고 태어나 만성 신부전을 앓고 있었다. 나이도 비슷했는데 미미처럼 한두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이겨 낸 뒤 석 달쯤 투병하며 지냈다. 최근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한동안 입원하고 퇴원을 했는데, 며칠 만에 다시 악화돼 또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이의 종(種)과 이에 따른 유전질환, 질병력이 미미와 비슷해 조언을 구한 듯했다. 이번이 마지막 입원이 될 것 같은데 발길이 내키지 않는다면서 병원에 가기 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했다.
이럴 때 보호자는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야 할까. 마지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동물 가족을 보며 반려인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이다. 일단 병세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도 동물도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하지만 생의 말기에 있는, 죽음을 앞둔 동물이라면 병원에 가는 것이 당연한 선택일까. 환묘는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신장 바이오 마커가 높고, 기력이 없어 누워만 있다고 했다. 반려인에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순간이리라. 반려인들은 삶에서 가장 힘들고 낯선 순간 가장 어려운 질문에 부딪힌다.
역시 선택은 보호자의 몫이라고 얘기했다. 주치의와 충분히 소통해 아이의 질병에 대한 임상적인 판단과 그에 따른 기대 수명을 확인하되,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보호자가 최종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 무거운 선택은 오로지 반려인의 것이다. 동물과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언젠가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복잡한 저울 위에 여러 돌들을 올리고 꺼져가는 내 아이의 삶의 무게를 재는 것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다만 먼저 사랑하는 고양이를 보낸 경험으로 조언은 해줄 수 있었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먼저 병원행의 목적을 생각해 보라는 것. 치료를 위한 것인지(치료가 가능한 단계인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인지(관리 가능한 통증을 앓고 있으며 적절히 다스려주고 있는가),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인지(장기·내분비 기능이 어떤 수준인가), 현재의 상황과 가까운 미래를 차분하게 살펴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
말기에 이른 동물이라면 무조건 병원에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특히 급성이 아니라 만성질환, 진행성 불치병을 앓고 있다면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병원에는 신이 없다. 꺼져가는 생명 앞에 의사 선생님이든 누구든 우리가 의탁하고픈 신이 되어줄 존재는 없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것. 마지막 시간이 다가온다면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 아이에게 좋은 일일까, 혹은 덜 나쁜 일일까.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다면 어떤 부작용을 감내하더라도 적극적인 처치를 받고 싶을까. 익숙한 환경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까. 삶의 마지막을 앞둔 이 작은 아이는 보호자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고 있을까.
나라면 언제일지 모르지만 모든 사랑하는 이들, 가족과 인사 나눈 뒤 고양이별로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 것 같았다. 사랑과 환대 속에 조용하고 차분하게 인사를 나누고 나를 사랑한 이들이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나 넘치게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날들을 고요하게 돌아보며 감사할 것이다. 또한 얼마가 될지 모를 수명 연장을 위해 가족에게 너무 큰 경제적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