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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Aug 22. 2024

전세제도와 티메프 미정산 사태

전세보증금이라 쓰고 그림자금융이라 읽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주택 시가총액은 6,839조 원이다. 그리고 통계(KOSIS,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2,126조 원이다. 따라서 국내주택 시가총액은 국내증시 시가총액의 3.2배에 달한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주택 시총은 6839조 212억 원으로 전년(6957조 3929억 원) 대비 118조 3717억 원(-1.7%) 줄었다. 주택 시총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배율도 3.0에서 2.8로 하락했다. 주택 시총은 국내 모든 주거용 건물 가액과 해당 건물의 부속토지 시가를 더한 가격을 영구재고법으로 추계한 결과다. 주택시총은 2년 연속 감소세다. 주택 시총은 지난 2021년 7243조 7057억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했다. 이후 2022년에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 286조 원 3128억 원(-4.0%) 줄었다. 2021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말 주택 시총은 2년 동안 무려 404조 6935억 원(5.6%) 감소했다. - 주택시총 404조 증발, 집값 바닥론 고개, 2024.7.22, 머니투데이
부동산 비중 및 주택시가총액, 한국은행
상장주식시가총액, KOSIS


이 거대한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데는 두 가지 힘이 있다. 바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제도이다. 먼저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살펴보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24.3월 기준 주택담보대출은 860조 원 수준이다. 영끌이라 불리는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도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실제 용도를 구분할 수 없어 논의에서 제외한다.

한국은행이 오늘(13일) 발표한 '2월 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2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00조 3,000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2조 원 늘었습니다.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1,100조 원을 넘긴 것은 2021년 2월 1,000조 원을 돌파한 이후 3년 만으로, 11개월 연속 불어나는 추세입니다. 종류별로 보면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이 860조 원으로 한 달 전보다 4조 7,000억 원 증가했습니다. - 지난달 은행 주담대 4.7조↑…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축소, 2014.3.13, KBS뉴스

한편,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정확한 집계가 어렵지만 2023년 하이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1,058.3조 원으로 추정했다.

박상현·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8일 발표한 ‘빚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보고서를 통해 기존 가계부채 국제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35.3%로 추산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말 전세보증금을 합친 전체 가계부채 규모 2925조 3000억 원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여기엔 가계부채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전세보증금 1058조 3000억 원이 포함돼 있다. - 통계 안 잡히는 전세보증금, 가계대출에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지원의 BOK리포트], 2023.8.30, 서울경제


개인 간 거래인 전세보증금은 국내 특유의 사적 금융제도로 주식시장 시가총액(2023년 기준)의 약 50%에 달하는 규모로만 따져 볼 때 그림자금융*이라고 불릴만하다. 그런데 이는 개인 간 거래로 가계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국제결제은행(BIS)을 통해 공개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2년 4분기 기준 105.0%다. 우리나라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30%대로 높아진다면 현재 3위에서 1위 스위스(128.3%), 2위 호주(111.8%)를 제치고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선다.

* shadow banking, 은행이 아니거나 비슷한 역할을 하는 투자은행, 헤지 펀드, 사모 펀드, 구조화 투자회사(SIV), 특수 목적 법인 등의 금융회사 또는 그들이 취급하는 거래 및 자금


임차인이 전세보증금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한 전세대출이 있다. 이는 2023년 10월 기준 161.4조 원에 달한다. 전세대출은 전세보증금 시가총액의 15.3%를 차지하며 전세시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커다란 원동력이 된다.  

2008~2023.10까지 정권별로 국내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 현황을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 임기초에는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0.3조였는데, 임기말에는 6.1조가 늘어 6.4조가 됐다. 박근혜 정부 동안에는 29.6조가 늘어 36조가 됐으며, 문재인 정부 때 126조가 늘어 162조가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2년경 전세자금대출은 170.5조까지 늘어났는데 2023년 10월까지 줄어들어 161.4조가 됐다. - 전세자금대출 실태 분석결과 발표 기자회견, 2024.3.20, 경실련
정권별 평균 주택 매매/전세가격, 전세대출 현황, 경실련


정리해 보자. 2023년 기준 국내 주택 시가총액 6,839조 원 중 15.5%를 차지하는 1,058.3조 원은 전세보증금이다. 이 안에는 161.4조 원의 금융기관 대출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주택담보대출은 860조 원이다. 그림자금융인 전세보증금(금융기관 전세대출 포함)에 주택담보대출을 더하면 1918.3조 원으로 전체 주택 시가총액의 28%에 달한다. 바꿔 말하면, 국내 주택시장은 자기 자본(equity)은 72% 수준이고 28%는 타인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타인자본의 46.8%(금융기관 전세대출 포함 시 55.2%)는 전세보증금, 바로 그림자금융이다.


타인자본 중 전세보증금은 단순히 정기예금 등 기타 자산의 투자를 위해 활용될 수도 있지만, 상당수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위한 소위 갭(gap) 투자를 위해 활용된다. 한국부동산원(부동산테크)에 따르면 '24.7월 전국 전세가율(매매가격에 대한 전세가격의 비율)은 67%, 연립/다세대주택은 70%를 상회한다. 바꿔 말해 갭투자의 레버리지 비율은 대략 3배(아파트)~3.3배(연립/다세대) 임을 의미한다.


24.7월 전세가율, 부동산테크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임차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부동산 경기와 밀접한 음(-)의 상관관계가 있다. 임차보증금반환보증 기관(HUG)의 대위변제(임대인을 대신하여 임차인에게 임차보증금을 반환)한 금액은 2022년 매매가격지수가 100 아래로 추세전환하면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보증사고율*은 8%에 11.7조 원에 달했다. 문제는 사고금액 역시 반환보증 가입을 한 물건만 해당되므로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건들을 고려하면 그 이상일 것이다.

* 임대인이 계약해지 후 임차인에게 임대보증금을 미반환한 비율

매매가격지수 2018.12~2024.7, 한국부동산원


결국 2023년 HUG의 대위변제금액은 3.5조억 원에 달하게 되어 자본잠식 위기에 빠졌다. 앞으로 해당 공공기관에 세금이 충당되어야 할 지경에 놓인 것이다.

주택전세 보증보험 대위 변제 추이, HUG


전세사기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부동산 사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임대인, 임차인(전세대출인 경우) 중 일부 또는 전부 기망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 만일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기한 내 임차보증금을 반납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처음부터 갭투자 목적이었다면 이는 전세사기인가? 법원은 무자본 갭투자를 하면 사기대출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런데 (대규모 분양사기가 아닌) 개인 임대인이 자기 자본 30%에 불과한 갭투자이거나 혹은 다주택자로서 다른 주택의 타인 임차보증금을 이용해 100% 무자본 갭투자를 했다면 충분히 사기죄 성립 여지가 있다.  

서울 강서구와 관악구 일대에서 무자본 갭투자 수법으로 800억 원 규모의 보증금을 가로챈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 김 아무개 씨가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았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2017년부터 두딸 명의로 수도권 빌라 500여채를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로 세입자 355명으로부터 80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세 모녀 전세사기는 무자본 갭투자를 이용한 전세사기의 심각성을 처음 알린 사건이다. 김씨와 분양대행업체는 빌라 건축주에게 지급할 집값(실매매가)에 자신들이 챙길 리베이트를 더해 분양가를 책정한 뒤, 중저가 주거공간이 필요한 20·30세대 신혼부부 등에게 분양가와 동일한 금액의 전세 보증금을 받고 임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피해자들의 보증금으로 건축주에게 집값을 지불하고 빌라 소유권을 취득했고, 분양대행업체는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챙기는 방식이다. 집값이 전세 보증금보다 낮은 ‘깡통전세’가 발생하다 보니 계약 기간이 끝나도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 ‘세 모녀 전세사기’ 모친 징역 15년…법정 최고형, 2024.6.12, 한겨레


전세보증금 시가총액 1,058.3조 원 중 사고금액 11.7조 원은 1.1%에 불과하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만일 국내 주택시장이 블랙스완처럼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 혹은 피터 드러커가 말한 이미 일어난 미래(저출산)에 따라 침체기에 접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은행의 법정 지급준비율은 7%이다. 예를 들어 100억 원 중 7억 원만 은행이 수중에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1억 원을 초과한) 8억 원을 고객이 일시에 인출한다면 뱅크런이라고 불린다. 국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중앙은행과 예금자보호법(예금채권자 일시인출 방지 효과가 있음)이 있다. 그런데 천문학적 수치인 1천 조원*의 그림자금융인 전세보증금은 임대인의 EOD(기한이익상실) 혹은 파산에 대해 반환보증 외 별다른 보호장치가 없다. 반환보증 기관 역시 대위변제 금액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파산 상태로 정상지급이 어려울 수 있다.

 * 전 세계 기업 시총 10위, 2024.8.22, TSMC, 1,032조 원, 7,725억 달러, top.hibuz.com




우리는 비슷한 사례를 최근 목격했다. 전자상거래 (엑시트) 성공신화 G마켓의 창업자인 구영배의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과 그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이다. 그는 미정산 사태를 일으켜 최대 1.3조 원의 피해를 일으켰다. 이후 전자상거래 전반에 불신이 커져가면서 뱅크런과 유사한 조짐들이 나타났다. 장르만 다르지 임차인 혹은 셀러의 자금을 별도 구분관리하지 않고 자금유용을 통해 미지급(미정산)을 일으킨 것이 동일하다.


현재 정부는 19일까지의 티메프 관련 판매금 미정산액이 약 8188억 원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정산 기한이 남은 판매금을 감안하면 이 금액은 앞으로 5000억 원 가까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최종 미정산액은 1조 3000억 원 내외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티메프’ 미정산액, 1.3조 예상…정부, 구제 자금 1.6조로 확대, 2024.8.21, 동아일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국회에서는 셀러 자금을 별도 관리하는 티메프 방지법 입법이 활발하다. 그러나 티메프 사태는 1.3조원의 피해를 입혔지만 이미 전세보증 사고금액은 10배 가까이 크다.


구속된 빌라왕 전세사기범,  평범해 보이는 임대인 A 씨가 일으킨 전세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가격을 상승 혹은 최소한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개인자산 70% 이상이 편중된 부동산시장에서 취득세, 양도세, 상속세, 종합부동산세 다양한 방식으로 세금을 조달해 왔다. 따라서 부동산시장은 레토릭으로는 가격을 올려서는 안 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다. 2022년 부동산시장 조정이 일어나자 2023년 특례보금자리론, 2024년 신생아대출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조장하고 기준금리 인하(피벗) 시점에 다다르자 위선적으로 가계부채 총량관리와 같은 관치금융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계대출 총량은 결코 줄일 수 없다. 주택가격 안정화의 최선책인 신규주택 공급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주택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신규 개발 및 건설은 집값 변동을 줄여준다. 주택 신규 공급 능력이 수요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이 제한되면 가격 폭등이 더욱 심해진다. 더 크고 파괴적인 주택 가격 거품은 내부자들의 신규 주택 건설을 억제하는 데서 비롯된 또 다른 부작용이다. - 도시의 생존, 에드워드 글레이저


그러나 앞서 말한 블랙스완이 온다면 단순히 재정정책(정부)과 통화정책(중앙은행)으로 주택가격 하락을 바로 되돌릴 수 없다. 정책의 효과는 즉시 나타나지 않기에 이전의 금융위기 상황처럼 이미 시장은 피바다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임차보증금을 제대로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도 경매 낙찰가율은 70~80%이다(경매로 회수하더라도 20~30% 손실을 보고 있다).

 

따라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졌다는 전세제도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임대인이 임차인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도록 아래와 같은 강제수단이 있어야 한다.


1. 에스크로(escrow)* 제도를 전세계약에 강제해야 한다.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제삼자가 만기까지 보관하고 계약에 의해 그 이자만 임대인이 수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 판매자와 구매자의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중립적인 제삼자가 중개하여 금전 또는 물품을 거래를 하도록 하는 것, 또는 그러한 서비스를 말한다.


2. 부동산 표준임대차계약서에 위약금 부과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통상 상업부동산 임대차계약은 임차보증금 만기일 이후 미반환 시 연 10% 이상 위약금 이자율이 명시되어 있다.


3. 전세사기에 가담함 임대인과 임차인(전세대출인 경우), 공인중개사 정보가 금융기관에 공유되어야 한다. 전세대출의 보증기관은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울보증보험(SGI)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으므로 사기범죄 형사처벌 이력은 해당 보증기관과 금융기관 간 전산 시스템으로 정보공유를 구현하여 시스템 상 재범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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