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었던 날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권하게 된 어느 아빠의 이야기

by 피터의펜

"이번 어린이날 선물은 안 주셔도 돼요.

대신에 피아노 학원은 그만 다니고 싶어요."


30여 년 전, 어느 봄날 아침이었다. 나는 식탁 위에 그 편지를 올려두고 학교로 향했다. 그날의 공기와 내 필체까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가족 모임에서 가끔 회자된다. 우리는 그때마다 웃지만, 사실 그날의 나는 정말 진지했다.


어린이날 선물은 1년에 단 한 번, 진심으로 나를 위해 고를 수 있는 선물이었다. 로봇 장난감일 수도 있고, 게임팩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귀한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저 피아노 학원을 그만 다니고 싶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때는 내겐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우리 집 형편은 넉넉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그럭저럭 사는 평범한 집이었다. 그런데 그런 형편 속에서도 부모님은 내게 피아노 학원을 보내주셨다. 다른 학원도 아니고, 왜 하필 피아노였을까. 그 이유를, 그땐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손가락이 짧고 두꺼워서 이쪽 도에서 저쪽 도를 누르는 것도 힘들었다. 안타깝지만 음악적 감각도 부족했다. 휘파람이나 겨우 불 정도였다. 그런 내가 체르니 100을 마치고 30으로 넘어가자 부모님은 "이제 시작이야. 워털루 전쟁도 금방 치겠구먼." 하셨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더는 못해요."


결국, 그 편지는 단번에 효력을 발휘했다. 어린이날을 만들어주신 방정환 선생님께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만큼 벅찼다.


정말로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내 진심을 받아들여주셨고,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피아노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땐 피아노 소곡집을 공부할 바엔 수학의 정석을 두어 장 더 푸는 게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날의 나는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된 지금, 나는 아이에게 또다시 피아노 학원을 권하는 부모가 되어 있었다. 그때의 나와 닮은 표정을 한 아이에게 말이다.


피아노를 배운다고 해서 꼭 음대를 가야 하는 것도, 대단한 연주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생의 어느 순간엔 음악이 마음을 붙잡아주는 날이 분명 찾아온다. 그때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려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부모의 마음이더라.


물론 꼭 피아노가 아니어도 좋다. 바이올린이어도 좋고, 기타여도 괜찮다.


나는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이해한다. 삶에는 이유 없이 지치는 날이 있고, 아무 말 없이 음악으로 위로받고 싶은 밤이 있다. 그럴 때 피아노 같은 악기 하나쯤은 인생에 있어야 좋다는 걸, 이제는 안다.


지금의 나는 피아노 대신 기타를 잡고 있다. 늦게 시작한 탓에 손끝엔 굳은살이 배겼고, 코드는 아직도 서툴다. 리듬감은 부족하고, 뒤늦게 집중하면 눈이 피로하고 목 뒤가 금방 뻐근해진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시작한 기타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엔 나를 위로한다.


그때 부모님이 바라셨던 것도,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첫째는 체르니 30이라는 통과의례를 마쳤지만, 둘째는 피아노를 그렇게나 싫어한다. 어쩌면 나보다 더하다. 체르니는커녕, 바이엘도 아직 다 못 뗐다.


"가기 싫어!"


울며불며 난리다.

결국 "그럼 잠깐 쉬자." 하고 넘어갔다.


피아노 학원을 가기 싫은 마음, 충분히 안다. 그 시절의 내가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굳이 강요하지 않는다. 언젠가 스스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을 날이 있을 거라 믿는다. 어떤 음악이든, 찾게 되는 날이 분명 올 거라 믿는다.


그때의 손끝이 다시 건반 위에 닿을 때,

그때의 마음도 함께 돌아올 거라 생각한다.



아빠의 부록 조언


강요보다 기다림이 더 큰 가르침이 될 때가 있다.

음악도, 아이의 마음도 결국

각자의 박자에 맞춰 흐르는 법이니까.

keyword
이전 10화질문 하나로 더 가까워진 우리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