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Jun 01. 2020

지적은 교육이 아니니까요

스스로 돌아보는 능력의 중요성

ㅣ초등학교 1학년이 정의한 생물과 무생물은

생물(Living things): 호흡(breathe), 성장(grow), 번식(reproduce)을 한다. 
무생물(Non-living things): 호흡이나 성장이나 번식을 하지 않는다.


미국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구글 클래스룸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그 중 과학 시간에는 생물과, 무생물, 더 나아가 동물과 식물, 더 나아가 동물의 종 분류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가장 처음 업로드되었던 영상이 아직도 인상에 남아 있다.


거실 벽을 배경으로 담임 선생님이 등장한다. 선생님의 뒤로는 생물과 무생물에 대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만드신 차트가 붙어 있다. 선생님은 '생물(Living things)'이라 적은 글씨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하신다.


"생물의 특징은 호흡, 성장, 번식을 한다는 거야. 번식이란 아기를 만든다는 뜻이란다."


개괄적인 설명이 끝난 후 화면이 전환되더니 이번엔 선생님의 다섯 살 난 아들이 차트 앞에 선다. 선생님은 목소리만 출연하여 설명을 이어가신다.


"농구공은 무생물이고,"


그러자 선생님의 아들이 농구공 그림을 가리킨다.


"피자도 무생물이고,"


이번엔 피자 조각 그림을 가리키고,


"병아리는 생물이고,"


이번엔 병아리 그림을 가리킨다.


영상 아래 댓글란에선 한 학부모가 선생님의 아들을 칭찬한다. 역시 댓글로 선생님께서 설명하시길, 남편이 출근하고 없어서 아들의 도움으로 영상을 촬영했다고 하신다. 선생님의 얼굴이 등장한 영상 초반은 아들이 내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고.


생물과 무생물 분류에 대한 과학 수업은 이후로 2주 동안 지속되었고, 그 기간동안 아이는 과제를 하며

'호흡하다(breathe),' '성장하다(grow),' '번식하다(reproduce)'라는 단어를 꽤 여러 차례 사용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breathe'의 스펠링을 헷갈려 했다. 마지막의 'e'를 자꾸만 빠뜨려서 동사형인 'breathe'가 아니라 명사형인 'breath'로 쓰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과제물을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면서 아이의 실수를 매번 지적하였다. 실수를 고쳐 줄 선생님이 없으므로 내가 대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런데 아이가 열심히 완성한 과제물을 앞에 놓고 실수를 꼬집을 때마다 무언가 기분이 싸하엿다.


"글씨도 열심히 썼고 그림도 예쁘네. 그런데 철자 하나가 틀렸네."


앞서 한 칭찬이 뒤따른 지적으로 무색해진다. 그래서 말의 형태를 바꾸어 보았다.


"글씨도 열심히 썼고 그림도 예쁘네. 근데 이 단어 좀 봐봐. 맞게 쓴 거 같애?"


질문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본질은 지적이다. 기분이 싸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엔 말의 순서를 바꾸어 보았다.


"철자가 하나 틀렸네. 그래도 글씨도 열심히 썼고 그림도 예쁘네."


병 주고 약 주는 기분이다.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지?



ㅣ지적은 교육이 아니니까


어릴 적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80년대에 맞벌이 부모님의 외동딸로 태어난 나는 이웃집에 맡겨지지 않는 날엔 하루 종일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평일에 가사 도우미가 출근하여도, 주말에 부모님이 일을 쉬어도, 당시에는 어른이 아이와 상호작용을 해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홀로 그림을 그리거나 텔레비전 앞에 방치된 채로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나는 어머니께 보여 드렸다. 어머니는 중학교 미술 교사셨다. 내가 그림을 내밀면 어머니는 질문을 하셨다.


"네 눈엔 토끼 귀가 이렇게 짧아 보이니?"

"네 눈엔 사람 입이 이렇게 새빨간 세모로 보이니?"

"네 눈엔 나뭇잎이 이렇게 전부 똑같은 녹색이니?"


그러고 보니 아닌 것 같아서, 아니라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답하면 어머니는 검지손가락으로 스케치북을 탁탁 내리찍으며 "보이는 대로 그리란 말야, 보이는 대로!" 하며 야단을 치셨다. 하루는 내가 그린 햇님을 보시고는 이렇게 물으셨다. 


"네 눈엔 태양이 이런 동그라미로 보이니?"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햇님은 동그라미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에. 그러자 어머니는 내 손목을 낚아채고 베란다고 데리고 가 나로 하여금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셨다. 


"자, 봐봐. 선이 보이니? 빛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선이 보여? 네가 그린 것처럼 선이 있는 동그라미야?"


아니라고 답하였다. 대략 동그라미 형태로 시작된 태양의 빛은 경계선 없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빨갛니? 네가 그린 것처럼 빨개? 저걸 어떻게 새빨갛게 그릴 수 있니?"


어머니 말씀대로 태양은 별로 빨갛지 않았다. 어머니가 일곱 시 언저리에 퇴근하셨더라면 아마도 붉은 태양이 맞았을 테지만, 어머니가 퇴근하여 나의 그림을 지적하는 시간은 다섯 시 전후였기에 태양은 아직 노란색에 가까웠다. 


그렇게 지적을 받으면서도 어머니가 퇴근을 하면 그림을 들고 달려 가거나,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자 마자 보실 수 있도록) 현관 앞 바닥에 그림을 전시해 놓기도 하였으니, 어린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무리 짓눌러도 자꾸만 튀어 오르는 작은 용수철과 같다. 


어머니의 지적은 나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덩달아 수위가 높아져 비난이 되었다.


"너무 못 그리네. 창피해 죽겠다."


자식이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이 그리도 싫으시고, 가르칠 줄도 모르시면 학원에라도 보내시지, 수학 학습지에 한자 학습지도 억지로 시키시고 피아노 학원에 종합 학원까지 억지로 보내시면서 미술 학원은 도통 보내주실 생각이 없으셨다. 한 번은 친구가 미술 학원에서 만들었다는 산타 모형을 집에서 혼자 상상해 가며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완성 후에 부모님께 보여 드리며 친구가 이런 것을 미술 학원에서 배웠다 했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미술 학원 선생들은 뭐 하던 사람들이냐고 어머니께 물으셨다. 그때 어머니가 무어라 대답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미술 학원을 얕잡으신 내용만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애들 모아 놓고 저런 만들기나 하는 곳이라고. 거기 가면 그런 거나 하다 오는 거라고. 


그런 거나 하다 오는 것을 아이들은 재미있어 했고, 아이들의 학습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사이자 부모이신 어머니는 모르셨나 보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미술 학원 강사들이 되려 유치하게 보이셨나 보다.




ㅣ지적에서 부정 행위까지


어머니의 손가락질로 그림은 재미가 없어졌지만 중학교에 입학할 때 나의 꿈은 디자이너였다. 그 중에서도 가구나 가전 제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는 그런 디자이너를 '산업 디자이너'라 부른다고 하셨다. 중학교 미술 수업의 첫 번째 과정은 소묘였다. 대상을 관찰하고 주로 연필로 묘사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소묘를 끔찍히도 못 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소묘를 가르쳐 주신 적은 있으나 어머니 혼자서 원통 모양을 스케치하시며 "빛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을 '하이라이트'라 부른다"는 식의 이론만 말씀하시고는 내가 원통 모양을 따라 그리자 "역시 제 자식은 못 가르치는 법"이라며 30분도 채 못 되어 그만두신 것이 전부였다. 


소묘를 못 하는 아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미술 선생님은 교과서에 있는 이론을 설명하시곤 다짜고짜 아그리파 석고상을 그리라고 하셨는데, 초등학교의 물감 놀이 수준에 익숙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아그리파를, 그것도 연필만으로 명암을 세세하게 관찰해 가며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묘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미술 학원에 다녔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미술 선생님은 잘 하는 아이들에겐 잘 한다고 칭찬을 하시고, 못 하는 아이들에겐 박한 점수를 주셨다. 못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하고 직접 도와 주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 당시는 학생이 먼저 질문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도움을 청하는 아이도 전혀 없었다. 선생님은 이론을 설명하신 뒤에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음악을 틀어 놓고 책을 읽으시다가 마지막에 점수를 매기시는 것이 전부셨다. 어머니의 직장 생활도 그러했을 것이다. 잘 하는 학생에겐 칭찬하고, 못 하는 학생에겐 감점을 주고.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도 가르치는 능력이 없으셨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으리라.


중학교 입학 이후로 학교에서 만난 모든 미술 교사들은 어머니의 지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나의 미술 과제를 놓고 "창피해 죽겠다"고 구박하는 일이 많아지셨다. 그리고 급기야는 내 수행 평가에 자꾸 손을 대셨다. 가령 수행 평가 과제로 부여 받은 정물화를 거실에서 그리다가 학원에 다녀와 보면 나도 모르게 그림이 완성되어 있기도 했고, 풍경화를 완성한 뒤 목욕을 하고 돌아와 보면 꽃밭에 디테일이 추가되어 있기도 했다. 왜 이렇게 해 놓았느냐고 내가 불평을 하면 "네가 하도 못 그리기 때문" "고마운 줄 알아야지" "해 줘도 지랄"이라며 언성을 높이셨다. 


나는 별로 고맙지 않은데 고마운 줄 알라고 하시니 내가 배은망덕한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가 오만하신 것 같기도 하고, 도저히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더 나쁘냐, 내가 더 나쁘냐'의 문제는 중학교 1학년이 판단하기에 너무 심오하고 어두운 문제다. 그래서 판단하기를 곧바로 포기했다. 다만 어머니가 완성해 주신 그림을 미술 시간에 제출하려 하면 항상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그 가책을 덜기 위해 나는 친구들에게 진실을 털어 놓았다. 어머니가 대신 그려 주었다고, 때로는 그림의 절반, 때로는 절반의 반, 때로는 아주 작은 디테일이라도 "이건 엄마가 그려준 건데 정말 싫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친구들이 아니라 미술 선생님께 털어 놓았어야 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미술 교사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망신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이기적인 우려로 선생님 대신 친구들에게 비밀을 털어 놓고 죄책감을 달래었다. 친구 중 누군가가 선생님께 일러 주면 좋겠다는 일말의 바람도 있었으나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 아이들도 나의 불편한 감정을 전가 받고 몹시 불편했을 테다. 엄마가 멋대로 과제를 해 주어 매번 A를 받으면서도 그것이 너무 싫다고 울상인 이 아이를 비난해야 하나, 동정해야 하나, 그 애들도 판단이 서지 않았을 테고 이후엔 판단을 포기했을 테다. 



ㅣ어쩌면 교육이란 내가 나에게


학교 미술 수업은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다. 2학년이 되고 교과 과정에 더 이상 미술 과목이 없음을 확인하였을 때에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었다.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감. 당시 나는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고 디자이너라는 꿈도 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새로이 붙든 것은 영어였다. 영어 학원은 어머니가 강제로 보내지 않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다닌 유일한 학원이었고 어머니는 영어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으셔서 조금도 참견을 하지 못하셨다. 내가 서툴게 소리 내어 원서를 읽어도 어머니는 나의 발음을 지적할 지식이 없으셨고, 중학교 3학년 때에 처음 치러 630점을 맞은 토익 점수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인지 낮은 점수인지 가늠을 하지 못하셔서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렇게 영어를 붙든 지 십여 년 후, 나는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통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입학하였다. 성장기를 외국에서 보낸 해외파도 아니고 언어에 특출난 재능이 있지도 않아 수업 내내 교수님의 시범 통역을 노트에 받아 적어 달달 외우고, 뛰어난 동기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옥 같은 표현을 내 입에도 붙여 보려 두 해 동안 애를 쓰다가 간신히 제 때에 졸업하였다. 이후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을 통역해 보고 다양한 기업의 다양한 문서를 번역해 보았지만 현업에 있은 지 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나의 통역이나 번역엔 언제나 개선점이 있다. 별 재능 없는 내가 이 직업을 여태도 붙들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말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저렇게 썼더라면 더 좋았을걸.'


더 나은 표현을 위해 자꾸만 혼자를 돌아보는 이 일은 외롭고 지난하면서도 나를 능동적으로 만든다. 오역을 저지르지 않고서야 고객은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으므로 나의 문장들에서 개선점을 찾는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오로지 나의 몫이기에 이 일이 즐겁다. 누군가가 옆에서 일일이 지적한다면 재능 없는 이 일이 즐거울 리 만무하다.



ㅣ네가 너를 가르치도록


생물은 호흡하고 성장하고 번식하는 존재. 미국 초등학교 1학년 교과 과정에서 내린 그 정의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어떤 사람이 보인다. 


매 순간, 호흡할 때마다 실수하고
실수가 또 다른 실수로 번식되고
그런 실수로 성장하는 사람


그런데 이 공식이 성립하려면 실수와 성장 사이에 '성찰'이 추가되어야 한다.


매 순간, 호흡할 때마다 실수하고
실수가 또 다른 실수로 번식되고
그런 실수를 '성찰'하며 성장하는 사람


이제 원격 수업 과제물에서 아이의 실수를 더 이상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는 과제를 마치고 한참을 놀다가 저녁 식사 전에 스스로 과제물을 검토하고 교정한다. 물론 아이가 검토 후에도 발견하지 못하여 고치지 못하는 실수가 있다. 그런 실수조차 이제는 지적하지 않는다. 이따금 아이와 함께 책이나 프린트물을 뒤적일 뿐, 'breath'가 아니라 'breathe'라고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두 달 정도가 지나고 나니 이젠 마지막 'e'를 기억해낼 때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언젠가는 헷갈릴 여지도 없이 두 단어를 정확히 구분 지을 것이다. 무수한 실수와 무수한 자기 교정을 거쳐서, 부모가 일일이 지적하고 고쳐 주었을 때보다도 훨씬 더 즐겁게, 그래서 훨씬 더 선명하게.


덧. 어머니께서 교원 연수 과제로 풍경화를 그리는 모습을 성인이 되고 나서 본 적이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호수인지 강인지 수면이 펼쳐져 있고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어머니는 수면에 비친 신록을 그럴싸하게 나타내려고 애를 쓰다가 내게 물으셨다.


"진짜 같아 보이니?"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진짜 같지 않았다. 수면 위의 풍경은 커녕 수면조차도 전혀 물 같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그리라고 스케치북을 내리 찍던 어머니도 사실은 보이는 대로 그릴 줄 모르는 분이셨다. 


자신의 그림이 어떠한지 아셨더라면 자식의 그림이 그리 수치스럽지는 않으셨을 텐데.


성찰의 결여는 곧 불행이다.

이전 03화 은혜는 무슨, 그냥 일이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