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긁히고 쓰는, 마을 기록 쓰기 팁
새 책이 나왔다. 홍보를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름 열심히 인스타에 들어간다. 그런데 정작 홍보는 안/못하고 습관처럼 검색을 한다. 내 책 제목, 내 이름을 띄어쓰기나 따옴표까지 바꿔가며 한참을 검색한다. 부끄럽다는 감정도 잠깐,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기 합리화를 한다. 궁금하다. 알고 싶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굳게 믿는다. 창작자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일 것이다(맞죠? 맞죠!).
금요일 <반달서림>에서 북토크를 했다. <반달서림> 화요일 서점원인 '새싹보리'님과 책 속에 나온 인터뷰이인 혜승 님이 만들어주신 영상만 올리고 제대로 된 리뷰를 못했다. 웃음과 감동, 응원과 눈물이 가득한(진부한 표현에 죄송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북토크라 더 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올려야지 하고 인스타를 들어갔다가, 먼저 검색부터 했다. 새로운 리뷰들이 몇 개 있었다. 반가웠다. 그러나 그중 한 리뷰를 읽다 마음이 뾰족해졌다.
“우연히 읽었다. 책은 좋았지만,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응원도 계급이 있어야 받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노력을 비하하는 건 아니다.”
- (리뷰 그대로 정확한 문장은 아니다. 더 길고 좋았으나 나의 능력이 부족해 이런 뉘앙스 정도로 기억된다)
맞다. 나 역시 서문에서 스스로 밝힌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쩐지,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살짝 긁힌다. '추천하고 싶지 않다!!!'라는 문장에 꽂혀, 혼잣말로 계속 투덜거렸다.
“아니... 이 사람들 대단한 계급 아닙니다(TT). 그냥 우리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누구나 걷는 길 대신, 그냥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이라고요. 꼭 계급적 양극단에 있거나, 거창하고 비극적이어야만 자기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오오오?”
포효하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부끄럽다. 읽고, 사진 찍고 이렇게 리뷰까지 달아줬는데 고마운 일이다. 해석은 당연하게도 독자의 몫이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이미 그 한계를 언급해 놓고, 누가 딱 집어 말하니, 발끈하는 나 자신... 참 쿨하지 못하다. 내 글이 그분에게 오롯이 가닿지 못한 거고, 그건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독서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나 역시 그런 독자다. 그래도 ‘책은 좋았다’고 하셨으니까, 그 말에 마음을 기댄다. 받아들인다(어차피 안 받아들일 방법도 없다만. 허허허).
이 구질한 마음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마을 기록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 활동을 하다 보면, 직간접적으로 듣게 되는 말(혹은 눈빛, 혹은 이미지)이 있다.
"그런 거 하는 사람들은... 다 여유 있어서 하는 거 아닌가요?"
맞다. 당장 생계가 위태롭거나, 마음이나 몸이 괴롭다면 당연히 마을 도서관이나 회의실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다. 그건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도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맴돈다.
‘근데, 여유가 있다고 다 그렇게 사는 건 아니잖아요? 다들 자기 챙기고, 자식 학원 알아보기 바쁜데 여기 와서 도서관 활동하시는 분들이니까요, 삶의 지향점이 다른 거죠.’
최근 북토크들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왜 그런 활동을 하세요?” “공동체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때 나는 공동체가 ‘믿을 구석’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을 의식하게 된다. 나에게 공동체란, 내가 믿고 싶은, 내가 닮고 싶은 사회의 모습이자 남들이다. 사실 '남들'은 추상적 개념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스케줄 대신, 공동체의 느긋한 논리를 따라가는 '남들'과 살고 싶은 것뿐이다.
그러나 이 말을 글로 써놓으면 오히려 추상적이고 공허해 보일 수 있다. 안 와닿는다. 그래서 기록에는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마을 기록 쓰기 팁 1. 구체적 쓰기
<마을에 행사가 있다. 안내한다. 쓴다.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힌다.>
전형적이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뭐랄까. 궁금하지 않다. 공동체 행사라는 것이 늘 계획한 대로 척척 되지 않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행사라도 누가 어떻게 진행하고, 참여하는 가에 너무 다르다. 그 다름을 최대한 자세히 기록하는 것이 좋다.
물론 초고는 편하게 쓴다. 그러나 퇴고할 때 한번 생각해 보자.
'꼭 시간 순서대로 써야 할까? 참여자분의 소감 중 어떤 말이 너무 울컥했는데? 나는 사실 이 점이 너무 힘들었는데?'
즐겁기만, 고생하기만, 행복하기만, 바르기만 한 공동체는 없다. 이 입체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결국, 쓰는 사람의 관점이 살아있는 구체적 쓰기를 해야 한다.
누가 봐도 ‘마을 기록’인데, 정작 기록자가 왜 이걸 쓰는지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누가 써도 똑같은 행사 보고서는 매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의 감정, 생각, 그늘, 숨소리, 딴지…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모든 걸 한 편에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 기록은 모자이크다. 오늘의 행사, 어제의 회의, 두 달 전의 청소가 쌓여야 맥락이 생긴다. 그 맥락 위에 구체적 이야기가 올라가면, 다른 힘이 생긴다. 막연히 좋은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공동체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렇게 독자와 기록 사이에 작은 연결선이 생긴다. 그래서 또 중요한 것이 무조건적으로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는 것이다.
마을 기록 쓰기 팁 2. 미화하지 않기
앞서도 한 이야기인데 기록이 늘 ‘좋은 이야기’어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불편했던 순간, 애매한 실패, 내 안의 모순이 훨씬 진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들의 문장은 엉성할 수 있다. 그러나 궁금하다. 묘하게 신뢰도 간다. 읽는 사람은 언제나 안다. 이 글이 지나치게 예쁘게 포장됐는지, 아니면 살아 있는 말인지. 단적으로 실패담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설득이 될 때도 있다. 웃기고, 쑥스럽고, 내내 찜찜했던 날의 기록들이 쌓이면, 그 공동체는 점점 더 ‘사람 사는 곳’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가만히, 멀리, 잔잔하게 대충 보아서는 안 된다. 취재가 필요하다.
마을 기록 쓰기 팁 3. 취재 & 자료조사하기
기록은 ‘혼자 쓰는 일기’가 아니다. 함께 읽히는 글이다. 다른 사람의 말, 자료, 오래된 사진 한 장만 곁들여도 글의 결이 달라진다. 꼭 녹음기를 들이대지 않아도 된다. 김밥 나눠 먹으면서 주고받은 대화, 행사 끝나고 남은 수다 한 토막, 심지어 오래전 사진첩 속 한 장면도 훌륭한 ‘취재’가 된다.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쓸 때도 자료조사를 할 수 있다. 마을의 역사나 행사 기록도 좋고, 보도 자료 등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취재는 글에 직접적으로 인용이 되기도 하지만, 글에 녹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논리가 탄탄해지고, 설득할 수 있는 글이 된다. 일기와 공적인 글(에세이)의 차이다.
사실 기록은 객관적인 이라기보다 상당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일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읽는 이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설득하고, 공감시켜야 한다.
결국 주제를 정하고, 소재를 찾고, 쓰는 건 나다. 나만의 시선으로 캐치하고, 이를 탄탄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 보자.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그 수혜자는 그 누구도 아닌, 글을 쓰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속 쓰기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긁힌 내가 있었다. 그러나 쓰다 보니, 치유가 됐다(사실 잊혔다). 마을 기록도 그렇다.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자료조사를 해가며 탄탄하게 쓰면, '추상적인 마을'이 아니라 내 삶 속 진짜 마을이 온다. 그 마을 기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에게도 살아있는 마을을 선사한다. 나는 그렇게 정말 내가 원하는 '믿을 구석'인 사회의 실체를 만들어간다. 그 실체를 믿고 살아가는 나를 다른 삶으로 이끈다. 정말이다.
결국 마을 기록 글쓰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다. 그러니, 계속 쓰자. 일단 쓰자. (비록 상처받더라도) 지치지 말고 쓰자. 못 쓰더라도 마음에 안 들더라도 쓰자. 쓰면 쌓이고, 기록이 쌓이면 힘이 된다.
추신) 그렇다고 나도 척척척 저렇게 쓰느냐 묻는다면? 그럴리가 없잖아요. 허허허. 그러나 노력한다. 저렇게 해보려고. 저 중에 하나라고 하려고.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계속 쓰기'다. 그런 차원에서 나도 지금 이 못 쓰고, 마음에 안 드는 글을 올린다.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