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도시, 베를린
-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
독일어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SNS로 유럽 여행 중인 친구가 지금 베를린으로 여행 간다는 메시지가 왔다. 같은 독일인 데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잉골 슈타트는 베를린에서 버스로 5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마 침 베를린 가는 버스도 3시간 뒤에 있었고, 내일 모레까지 수업이 없어서 수업이 끝난 뒤 자전거를 몰아 당장 짐을 싸서 베를린으로 출발했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지만, 독일에서 최고로 부자인 지역은 아니다. 오히려 뮌헨으로 대표되는 독일 남부의 1인당 GDP가 월 등히 높다. 그 이유는 역시 독일 분단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독 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고, 베를린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베를린은 동독의 중앙에 위치했기 때문에 서베를린만 동독 속의 섬처럼 남게 되었고 베를린에 있던 많은 기 업의 본사가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독일 남부(바바리아주)로 이동했다. 그때 이동한 기업들이 유명한, BMW, 아우디, 알리안 츠 등 독일 경제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대기업들이다.
- 예술의 도시, 베를린
기업이 빠져나가니, 자연스레 인구가 감소했고 서베를린은 심 각한 인구 유출을 맛보았다고 한다. 서베를린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티, 음악 등 젊은 층들이 좋아할 만한 유흥 거리의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이를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흘러들어와 살기 시작 했다. 이 사람들은 인구 유출로 빈집도 많아서 그냥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살고, 그래피티로 여기저기 낙서를 해서 분위기를 자유 롭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베를린은 통일이 되고 예술가들은 많 이 떠낫지만, 지금도 그래피티들은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다. 동 독 쪽 벽은 깨끗하고, 서독 쪽 벽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한, 베를린 장벽(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도 각종 그림과 낙서들이 즐비해 있 다. 게다가 유물로 가득한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박물관 섬도 있 고,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전용 공연장도 있으니 베 를린을 예술과 자유의 도시라 부르기 충분하다.
- 게이 호스텔
처음 호텔 예약 앱에서 이 이름을 봤을 때 'Gay'는 흥겨운이라 는 뜻도 갖고 있어, 그냥 평범한 호스텔 이름인 줄 알았다. 심지어 저렴한 가격에 방을 제공하고 있어서 의심할 여지없이 이곳에 묶 을 뻔했다. 혹시나 해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니 큰일 날 뻔했 다. 이곳은 말 그대로 동성애자 여행자들이 만남을 위해 묶는 호스텔이다. 사람을 만나서 좋았다는 후기가 많은데 내가 만날 사람 은 이곳에 없는 듯하다. 한 한국 부부의 후기를 보니 로비 직원이 남편에게 음흉한 미소를 보냈다는 후기가 있어 더욱이나 예약 안 하길 잘했다. 아침에 남자가 침대에서 조식을 먹여주는 서비스도 있다는데, 당최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베를린에서도 평범 하게 손을 잡고 걷는 게이 커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남여 커플과 다를 것이 없다.
- 가장 독일적이지 않은 도시
내가 살았던 독일은 좋게 보면 깔끔하고 효율적인 곳이지만, 다 르게 말하면 좀 심심하고 지루한 곳이다. 하지만 베를린은 달랐 다. 베를린을 보면 파란색, 분홍색 수도 파이프가 육교처럼 공중 에 떠 있다. 원래 늪지대 였던 베를린이 침수되지 않게 지하수를 퍼 올리는 역할을 하는데 예술품 처럼 보일 정도로 베를린은 아 름답다. 라인강 강가에서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거리의 음악가 가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고 강가에 마련된 무도회장에 서는 중장 년 층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강 주변에서 술을 마시는 건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지 한강 공원과 비슷하게 된 강 옆 공원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다.
- 기억하는 도시, 베를린
베를린에 뜬금없이 한국적인 정자가 하나 위치해 있다. 독일 통 일 25주년과 한국 광복 70년을 기념에 만든 통일정이다. 지나다 니는 사람 가득한 도심 한복판에 있어 상당히 뜬금없음을 자랑한 다. 몇 십년 전 한국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지켜보고 우리도 저렇 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그 길은 머나멀게 느껴진 다. 독일 통일 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잔해인 콘크리트 조각을 기념품으로 팔고, 검문소였던 Checkpoint Chalie는 돈 받고 사 진 찍어주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한국의 DMZ도 관광지로 인기지 만 베를린 장벽 처럼 그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 란다. 판문점에서 남한 헌병과 북한 헌병 사이에서 인증샷을 찍고 철거된 DMZ의 철조망을 기념품으로 파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