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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바다 Aug 02. 2021

1아우터 1츄르 (a.k.a.츄르인간)

2. #돌아온길냥이 #츄르우정 #길들여지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졌던 길냥이가 다시 나타났다. 2020년 11월 혹은 12월, 겨울의 초입이었다.


 그동안 계절이 바뀌어 나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아파트 뒤쪽 샛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상가 코너를 돌았을 때 무언가가 정자 벤치 위에 놓여 있었다. 밤길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이나 플라스틱 컵을 고양이로 착각했던 터라 당연히 이번에도 잘못 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솜뭉치가 맞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나는 일단 걸음을 멈추고 그 고양이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하얀 고양이는 분명히 그곳에 당연한 듯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마치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눈이 마주치자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너무 반가워 소리를 지를 뻔했던 것도 같고. 안녕, 소심하게 말을 걸면서 나는 손을 흔들어보았다. 그러자 나를 쳐다보던 고양이가 갑자기 벤치에서 내려와 나에게 다가왔다.

 내 다리 주위를 뱅뱅 도는 고양이의 한쪽 귀를 체크해보았다. 많이 잘려있었다. 털 색깔도 체크해보았다. 꼬질꼬질한 회색이 예전과 똑같았다. 정말 너구나!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등을 살짝 쓰다듬고는 스스로도 놀랐다.


 내가 길동물을 만지다니?


 놀라서 얼어 있는 사이에 고양이는 이내 나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정자로 가 자세를 잡고 있었다. 꽤나 쿨한데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 바로 손을 닦긴 했지만 생각보다 푹신푹신했던 그날의 감촉은 이미 또렷하게 기억에 남은 후였다.


 그리고 얼마 뒤 담배꽁초가 가득했던 그릇이 비워지고 새로운 사료가 채워졌다. 아마 그분도 나와 같은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꼈을 터였다.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궁금해졌다. 더 정확하게는,


어떤 사람일까?




 이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랜선 집사였다. 틈만 나면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을 보곤 했는데, 내가 돌아온 고양이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니까 나에게 '츄르'라는 간식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었다. (고양이들이 그렇게 환장한다고) 나는 처음에는 그 얘기를 그냥 흘러들었다. 길냥이에게 주려고 간식을 산다는 게 뭔가 부끄럽고 남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인간도 맨날 쌀만 먹으면 질리는데 쟤도 맨날 사료만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결국 겨울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 츄르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많이는 말고 한 개만. 딱 한 개만 사서 고양이가 먹는지 안 먹는지만 확인해볼 심산이었다. 그 다짐도 두세 번은 번복되었다. 나는 원래 길고양이는 손을 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려다가도 고양이의 얼굴을 떠올리면 몸이 움직였다.

 대용량 사료들만 가득했던 동네 마트에서 두 번이나 퇴짜를 맞고도, 혹시나 하고 들어간 편의점에서 츄르 사기를 성공했다. 편의점에 반려동물 코너가 따로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새삼 대한민국의 반려 인구에 대해 생각해보았었다. (언뜻 듣기로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라고 했다.) 어쨌든 나는 여러 가지의 브랜드 중에서 고민하다가 가장 유명하다는 츄르 네 봉지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생각했다.


‘지금 있을까? 없을까? 있으면 바로 주면 되는데 없으면 언제 주지?’


 원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없으면 나중에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왕 산 김에 바로 주자는 이상한 오기가 생겨버렸다. 힘들게 샀는데 억울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좋아할지 말지가 꽤나 궁금했던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나는 그날 집과 정자를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두 번의 허탕 끝에 세 번째에 드디어 그 애를 만났다. 그때의 후련함과 뿌듯함이란!


 고양이의 반응은 말 그대로 '환장'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츄르를 꺼내 코 끝에 대주자마자 냄새를 맡고 거의 달려들다시피 했던 것이다. 고양이는 츄르를 촵촵 촤르르촵 핥아먹으면서 행복한지 눈을 세모 모양으로 만들면서 웃었다. 흔히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나오는 '고양이 웃는 눈.' 가까이에서 보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고양이를 만졌다. 이번에는 등 쪽을 오랫동안, 천천히, 충분한 의지를 가지고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츄르에 정신이 팔려 가만히 앉아 계속 촵촵거렸다. (너무 맛있게 먹어서 나까지 먹고 싶어질 정도로) 다 먹고 나서는 내 주위를 돌며 냐옹 거리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예쁘던지, 나는 처음으로 동물을 '귀엽다'라고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2020년 겨울, 하얀 고양이의 츄르촵촵


 그 뒤로 나는 주머니에 츄르를 넣고 다니며 그 고양이와 마주칠 때마다 꺼내 주었다. 네 봉지를 다 주고는 또 샀고, 그 뒤에는 여러 가지 맛을 넉넉하게 사서 가지고 있는 모든 외투 주머니에 츄르를 하나씩 꽂아 넣었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그냥 오래 봤더니 정이 들었나 보다 했다. 게다가 이렇게 추운 날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다니면 어떻게 겨울을 버틸까 싶기도 했고 말이다. (*참고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길냥이들은 깨끗한 물을 마실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대부분 탈수 증상을 겪는다. 따라서 밥을 줄 때 염분이 많은 츄르 간식보다 수분이 많은 습식 캔이 더 좋다고 한다.*)




그 뒤로 내 아우터 주머니는 1일 1츄르 보관함이 되었다. 나는 걸어 다니는 츄르인간이 되었고 말이다.


 하루는 츄르 한 봉지를 다 주었는데도 부족한지 고양이가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았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집에 있는 여분을 떠올렸다. 하지만 자리를 뜨기가 애매했다. 내가 가면 그 애도 정자를 떠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함께 가자는 의미로 고양이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걸었다. 걷다, 뒤돌아 기다리다, 걷다를 반복했다. 설마 따라올까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따라왔다. 따라오다, 한눈팔다, 다시 쫄래쫄래 따라오기를 반복하다 고양이와 나는 아파트 두 동을 지나 우리 집 앞까지 다다랐다.


그바다를 따라오는 하얀 고양이


 나름 똑똑한가 보다고 생각하며 나는 고양이에게 기다려, 말한 다음 집으로 뛰어올라갔다. 3층을 진짜 숨 한번 쉬지 않고 뛰어올라갔던 것 같다.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는 쏜살같이 츄르 하나를 더 가지고 나왔다. 운동화를 다시 신는 시간도 아까워서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혹시나 그 사이에 다른 곳에 가버리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고양이는 현관 앞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숨을 고르며 현관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쩌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애는 바로 옆 동 근처 풀밭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 불러보았다. (당시에는 이름이 없었으므로) 하얀색 엉덩이가 멈칫, 하더니 그 너머에 있던 하얀색 눈코입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다시 한번 "츄르 먹자, 츄르~" 말해보았다. 다가가면 도망갈까 봐 제자리에 서서 말이다. 설마 나에게 올까? 싶으면서도 올 것 같기도 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던 고양이의 얼굴이 내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의 감격이란!


 그날 다시 내 앞으로 온 하얀 고양이는 츄르를 하나 더 먹고는 유유히 사라졌고, 이후로 나는 정자에 갈 때마다 매번 주머니 속에 든 츄르를 만지작거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앗... 나 길들여져버렸다!


 마치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같이, 상가 코너를 돌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정자를 마주하기 전까지 마음이 요동친다.


있을까? 없을까? ... 있으면 좋겠는데, 역시나 없겠지? ... 어? 있는 건가? 아, 잘못 봤네 ... 아니네, 진짜 있네!


 외출을 할 때마다 같은 기대와 좌절 혹은 즐거움이 반복된다. 그리고 착각인지, 이상하게도 이 고양이가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루는 정자가 아니라 정자 너머 밭 저 멀리에 있어서 '고양이~'하고 불러보았더니 밭을 파다 말고 내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달려왔다! 너무나 반갑게 점프 점프를 하며 나에게 달려오고 있어서 나는 순간 그 애가 개인 줄 알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결정타가 아니었을까 한다.


 하얀 고양이는 그 순간 나에게로 와서 '하얀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상해졌다.


 나갈 일이 없는데도 어디를 가는 척하면서 정자 쪽으로 나가 자꾸만 그 고양이를 찾게 되고, 다른 사람들한테 가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하얀 엉덩이를 보게 되면 이상하게 섭섭해졌다. 강아지처럼 달려오던 그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 곧 겨울이 깊어지고 눈이 자주 내리면 추위 속에서 그 애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직접 데리고 와 키울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도 없었고, 딱히 키우고 싶었던 적도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계속 걱정이 되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심지어 부르면 다가오기까지 하는 예쁜 애인데 왜 아무도 데려가지 않을까? 물론 혼자서도 신나게 흙바닥에서 뒹굴고, 바람에 움직이는 낙엽으로도 잘 노는 것 같지만... 그래도 옆에 누가 있으면 그 애를 더 잘 챙겨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좋아하니까 사람과 함께 살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사람을(혹은 나를...?!) 좋아하는 하얀이. 부르면 대답까지 하면서 온다.


 당시 나는 혼자서 투룸에 거주하고 있었다. 방 두 개가 모두 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양이에게 큰 방을 내어 줄 의향은 있었다. 같이 놀아주고, 밥 먹을 때 눈치 보지 않게 해 주고,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달아날 필요가 없는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망설였던 이유는 어떻게 잡을지 몰라서도 있었지만 고양이가 밖을 더 좋아하면 어쩌나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인간과 함께 사는 게 고양이에게는 더 안전할지 몰라도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다만 인간의 관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잠시 집에 놀러 왔던 동생이 그런 나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뭔 소리야? 추워 죽겠는데 데려와야지.
병원비 반은 내가 낼 테니까 빨리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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