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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바다 Aug 05. 2021

이 애는 얼마인가요?

3. #펫샵 #분양 #생명의가격



 하얀이를 데려오기 위해 동생과 여러 번 회의를 했지만 바로 데리고 올 결심이 서지는 않았다. 일단 어떻게 잡는 지를 몰랐고, 나는 혼자 살고 있었으니까. 동생은 박력 터지는 말을 하고서는 곧바로 자기 집으로 가버린 뒤였다. 줌과 카톡으로 랜선 지시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걸 나 혼자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는 고양이에 대해 무지했다. 하얀이를 만지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고 츄르를 사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던 내가 과연 혼자서 길냥이를 구조할 수 있을까?


 도대체 아는 게 있어야 뭘 하든지 하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벼락치기하듯이 유튜브 영상을 수십 개씩 봐도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간격은 너무 컸다. 게다가 하얀이는 계속 길거리 생활을 해온 상황이었고, 그 생활이 나름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괜히 집으로 데려왔다가 감옥처럼 느끼면 어떻게 하지 싶었다. 그건 어쩌면 자유를 빼앗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괜찮다고 해도 내가 괜찮지가 않았다. 그들도 하얀이에게 직접 물어본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상황을 고려해서 동생과 나는 '잡아야' 되는 하얀이 대신 갈 곳이 없는 새끼를 데려오기로 타협을 보았다. 이왕 고양이에게 내 방을 내어주기로 다짐했으니, 하얀이가 그 수혜를 받지 못하더라도 갈 곳 없는 다른 고양이가 받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의 타깃은 집에서 키우다가 예상치 못한 어미 고양이의 임신으로 갈 곳을 찾게 된 새끼 고양이들이었다. (그때는 구조한 고양이들을 입양 보내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때마침 친구의 친구가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분양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그 집에는 여러 마리의 성묘가 있어서 새끼들까지 다 키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려 다섯 마리나 낳았으니 그럴 만도 해 보였다. 나는 그래서 당연히, 갈 곳 없는 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친구의 친구는 나의 작은 관심에도 적극적으로 사진을 보내주었다. 귀찮을 법도 한데 최대한 잘 나온 사진을 보내주려고 열심이었다. 나는 조금은 감동까지 했다. 새끼 고양이들을 좋은 곳으로 입양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보고 싶으면 언제든 집으로 보러 오라고 했다. 나는 거의 날짜까지 잡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분양'이란, 새끼들을 50만 원에 보내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당황했다. 첫 번째로 고양이를 왜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원래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두 번째로 그 '액수'에 놀랐다. 그것도 싸게 주는 거라면서, 펫샵에서는 더 비싸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전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도 의아했다. 펫샵은 사업이지만 개인 분양은 다른 게 아니었나? 그러면 개인이 자신의 반려 동물을 통해 사업을 하는 건가? 개인 분양을 소개해준 친구도 랜선 집사 2년 차의 동물 애호가였는데, 자신의 친구가 새끼 고양이를 거래를 한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내가 반려 동물 쪽을 잘 모르니까, 원래 다들 이렇나 보다 했다. 일종의 책임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돈을 기꺼이 그만큼 내겠다는 것은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헌신할 것이라는 각오를 보여주는 방편일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들어보니 품종묘 새끼는 '예쁘기 때문에' 비싸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혼란스러웠다. 갈 곳 없는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었지 '예쁜'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나는 일단 액수가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새끼들을 포기했다.


 며칠 뒤 그 고양이들이 다 분양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어쩌다 그 분양자 친구와 만나게 되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그때까지도 돈을 받고 키우던 새끼를 분양 보낸다는 걸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었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는 암수 세 마리를 함께 키운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상치 못하게 그 세 마리 사이에서 암컷이 임신을 해 새끼들을 키우지 못한 상황에 처했던 걸까 싶었다. 그러나 물어보니 아니었다. 일부러 동물 병원에 가서 돈을 내고 교배를 시켰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를 넘어, 의아했다.


어째서 키우지 못할 새끼를 임신시켰을까?


 나의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평소에 가는 동물 병원 원장님이 고양이를 진찰하면서, 이왕 암컷으로 태어났으니 한 번쯤은 임신시켜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농담처럼 덧붙였다.


 분양이 나름 쏠쏠한 수입이 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조용한 멘붕이 왔다. 나의 의문은 단 하나였다.


그것은 고양이들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50만 원짜리 새끼가 다섯 마리였으니 250만 원이었다. 정말 나름 '쏠쏠한 수입'이었을 것이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뭔가 계속 찜찜했다. 이번이 두 번째 임신이라고 했다. 임신을 할 때마다 고양이가 늙는 게 보이니 마음이 아파서 더 이상 임신을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애정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사랑일까? 개인 분양과 동물 공장의 애매한 경계선에서 나는 연달아 멘붕을 경험하고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애정이 아예 없는 사람들은 더 잔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양이 돈이 되니까 공장이 생기는 거구나. 어째서 #사지말고입양하세요가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생명에 가격표가 달리는 순간 동물의 행복보다 중요해지는 것은 그 '가격'일 테니까.


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사고팔 수 있다.


 그것은 비단 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기도 했다. 살아있는 생명이 상품으로 취급당할 때 생기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곳곳에서 행해지는 인신매매와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지만 그것을 동물로 연장시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수요로 인해 개체수가 인위적으로 늘어나고, 수요가 없고 갈 곳도 없어지면 안락사당하는 동물들.


 생명에 가격이 붙고 가치가 저울질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은 과연 그 동물들만의 존엄성일까?


 예쁜 새끼를 키우고 싶다는 욕망과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이 만나는 곳에서 분양이라는 이름의 당당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얘는 얼마인가요?'

 하얀이가 생각났다. 정자에 앉아 있는 하얀이의 모습이.

 '너는 얼마였을까?'


정자 위 하얀이. 말이 조금 많은 편이다.


 누군가는 하얀이를 분양받은 뒤, (잃어)버렸다. 만약에 버려진 거라면 하얀이는 그 '누군가'가 기대한 값어치의 생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과연 스스로를 얼마짜리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사람도 자신이 정해진 가치 값을 하지 못할 때, 버려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은 '인간'이기 때문에 '동물'과는 다른 존재라고 안심하고 있을까?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인간에게는 얼마짜리 꼬리표가 붙을 수 없는 걸까?


이렇게나 '얼마짜리 생명'이라는 질문은 위험한 것이다. 결국엔 끝이 나지 않을 테니까.




 하얀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고양이가 있네.' 그냥 그 정도의 인식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하얀 고양이에 대해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나는 하얀이의 분양가가 아니라 '이야기'가 알고 싶었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디서 태어났고,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들. 아마도 평생 알 수 없을 그런 것들이 나는 궁금했다. 그리고 그런 의문들이 하얀이를 다른 고양이로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한 '반려' 동물을 원한다면 그들의 가격이 아니라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사실을 자각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반드시 하얀이여야 한다.


 더 이상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상황의 탓도 하지 않고, 나는 곧바로 하얀이를 데려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필요한 것, 해야 할 것, 사다 놓아야 할 것을 따로따로 메모하고 구조할 때의 유의점도 달달달 외웠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수십 번 돌렸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불안감은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벌써 2021년의 첫 째 달이었다. 서서히 한파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나는 서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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