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y to Head Above Water
안 그래도 우울감이 늘 기저에 깔려 있는 성격이었는데, 향상심과 성취욕이 강한 내가 직업 없이 타지에서 생활한다는 현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만약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었다면, 또 미국 생활이 처음이었다면 지금의 생활을 즐겁고 현명하게 잘 풀어갔을 텐데, 그때의 난 그러지 못했다. 이미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살아봤던 경험 때문인지, 미국생활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미국생활의 힘듦과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좋아해 시간이 나면 꼭 타인과 함께 보냈었는데, 이런 성향 또한 외로움을 키워 우울감에 큰 몫을 차지하게 만들었다. 시차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는 점점 연락이 뜸해졌고, 언제부턴가 연락 오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연락이 친하다는 친구들에게서도 오지 않았다. 현타가 왔다. 내가 친구들에게 이것밖에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 또 우울해지고 슬퍼지고 상처받았다. 그렇게 지독하게 고립이 되어보고서야, 그제야 내가 얼마나 의존적으로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늘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를 가득 안고 살아왔구나 싶었다. 친구들과 나의 우정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기에, 의존도가 높았던 나는 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나 남편에게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이 의지하고 의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엔 세상 우울해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 있다가 남편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기분의 갭 차이가 클 수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하루종일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살았고, 이런 내 모습이 분리불안이 심한 푸들처럼 느껴졌다. 옳지 못한 상태였다. 내 삶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없이 살아가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불쌍하게 보였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였다. 남편과 나를 위해서라도 혼자 지내는 시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고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거대한 우울의 항아리 밑둑이 깨져버리자마자 숨 쉴 틈도 없이 우물을 가득 채우고 있던 우울이 나에게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부정적 필터가 써지자마자 모든 것들이 비교대상으로 보였다. 나와 달리 남편과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자신들의 커리어를 쌓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승진을 한 친구, 이직을 한 친구, 집을 산 친구 등. 친구들의 소식을 간간히 들을 때마다 나만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은 커져갔다.
남편의 동료 중 나와 동갑인 배우자를 가진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나와 정반대의 선택을 하여 남편과 떨어진 채 한국에서 열심히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그만두었던 커리어와 매우 유사한 커리어에 종사하고 계신 분이었다. 남편을 따라온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나와 비교되는 환경에 자격지심과 질투심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자격지심으로 바뀐 결정적인 트리거가 된 것이다. 점점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인간상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설상가상, 오후 3시가 되면 새카맣게 캄캄해지는 겨울이 시작되어 버렸다. 처음 겪어보는 길어진 어둠의 나날들에 나의 성은 속수무책으로 우울감에게 함락되어 버렸다. 이런 나를 억지로라도 건져 올려 현실 속에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선 강제적으로 날 끌고 갈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때쯤 그림책 수업을 알게 된 것이었다. 수업을 받고, 과제를 하며 하루를 소파에서 온종일 누워 지내던 나날들이 조금씩은 줄어들었다. 이 수업으로 시간에 대한 개념도 바뀌며 조금씩 우울감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나의 삶에 대한 미련이 생기고,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그림책 수업도 겨울이 끝나기 전에 끝나버리고 말 것이었다. 기나긴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나를 건져줄 무언가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그 이후에도 더 있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그림책 수업이 끝나갈 무렵, 온라인으로 받는 그림 수업을 알게 되었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수업을 등록해 버렸다. 1:1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기에 가격이 부담이 되더라도, 시차로 새벽에 수업을 받게 되더라도 꼭 해내고 싶었다. 그림을 어떻게 혼자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절망적이었던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기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절박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매 수업에 임했다. 처음 배워보는 그림에 대한 기초 수업과 처음 써보는 재료를 배우는 과정은 너무도 소중하고 즐거웠다. 꼭꼭 씹어 삼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정으로 꾸준히 과제를 하고 수업을 들었다. 그러나 그림을 배우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수업은, 생각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고찰과 고뇌를 하게 만들었다.
이 수업을 받으면서 내가 완벽주의 성격인 걸 깨달았던 것 같다. 수업을 들을수록, 피드백을 받을수록 내 그림이 너무도 형편없고 초라한지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숙제를 하면서도 내 그림이 참 귀엽게만 보였다. 그러나 점점 명암이 무엇인지, 원근법이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 등을 알게 될수록, 그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내 그림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허점 투성이인 어설픈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연필을 잡는 것이, 백지를 채우는 것이 자신이 없어졌고 숙제를 할 때마다 매번 주눅이 들었다. 기대만큼 그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 사실이 너무 싫었다.
선생님께선 아는 것이 조금씩 많아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에 내가 부족함을 더 잘 느끼게 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게 보인다는 것 자체로도 그림을 보는 눈이 생긴 것이고, 충분히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주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그게 보이면, 그걸 고치고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미숙하더라도 계속해야 느는 것인데. 분명 알고 있는 진실임에도, 나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내가 아닌 남이 그걸 느꼈다면 나도 그렇게 응원하고 격려해 줬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왜 나 자신에게는 행해지지 못할까? 나에게는 응원과 격려보다 평가와 비난만 하게 되었다.
그걸 깨부수기 위해,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대해지기 위해 선생님도 나도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나도 잘 몰랐던 내 모습에 대해 알게 되기도 했다.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못하겠는 것, 스스로에 대한 너무나도 높은 기준과 기대치를 ‘처음임에도’ 가지고 있다는 것,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박하다는 것 (자기 만족도가 매우 낮다는 것), 그리고 너무나도 폐쇄적인 성향이라는 것이었다. 비전공자만의 장점, 성장형 그림작가라는 키워드로 나를 바라보면 어떻겠냐는 선생님의 권유에도 나의 부족한 면만 보이기만 했다. 어설픈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도 어려워했다. 당연히 부족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데, 아는대도 이러는 내 모습에 나도 너무 답답했고,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로 이것저것 찾아보다 완벽주의에 대한 영상을 몇 개 보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아, 나 완벽주의구나.
알면 알수록 정말 별로인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하기 위해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꾸준히 형편없는 실력이라도 그려내며 경험치를 쌓아야 하는 것이 맞는데,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내 형편없는 실력이 창피하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두려워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태도란 말인가. 짜증이 치솟는 나날들이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인간상이 내가 되고 있었다. 자기혐오는 기저에 늘 깔려있던 우울감과 유사한 성질을 가졌는지, 서로를 끌어당기며 금세 뒤섞여버렸다.
무엇보다 나와 정반대의 도전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의 선생님으로 인해 반대되는 내 성향이 더욱 비교되었던 것 같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을 선호하고, 조심스러운 성향의 나와 달리, 단계대로 나아가기보다 이것저것 우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것, 도전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선호하는 선생님의 성향에 종종 의견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성향이 다르다는 것,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100% 이해는 하지 못하기에 서로에게서 실망하고 답답해하는 일이 잦아졌다.
완벽주의의 모습을 깨버리고 싶었기에 나 또한 변화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 속도는 선생님의 기대치만큼 따라가진 못했던 것 같다. 수업 중반쯤, 내가 이런 마음으로 힘들어하자 선생님이 먼저 잠깐의 휴식을 갖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고 나도 오케이를 했다. 이런 학생들이 많았다며 잠깐 쉬고 나면 괜찮을 거라는 위로를 받았음에도 나는 이 답답함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며 씁쓸히 웃을 뿐이었다.
그저 그림을 배우고 싶었을 뿐인데..
나를 송두리째 개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 같았다.
참...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 것 같다.
p.s. 이러한 시간이 다 지난 지금에서야 모두 나에게 필요했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비가 몰아치는 폭우 속에 있던 그땐 그 모든 시간이 참으로 춥고 아팠다.
그래도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독립적이고 단단해진 내가 되었던 것 같아,
그때를 잘 버텨준 나에게 참으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