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2023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2월 말. 새벽 운동을 나서며 미리 시동을 걸어 데워둔 차의 문을 열자 파사삭 금이 가며 얇게 덮여있던 성에가 문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약하디 약한 살얼음이 마치 나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엔진 소리를 들으며 차 안에서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여느 때처럼 똑같은 나날들이지만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나의 마음은 유독 요동쳤다. 이직한 이후, 나이가 차버린 회사의 막내로서 잘 적응하는 척하기도 쉽지 않았고, 오랜만에 마음속에 들어온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들어간 방송대 생활도 예상했던 만큼, 혹은 마음먹은 만큼 쉽게 흘러가지 않았고 어렵게 결심한 글쓰기도 몇 문장을 끄적이다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 모든 일들의 중심에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아빠의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다. 추운 날씨에 아빠는 씻거나 밖으로 쉽게 나가려 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스스로 굳어버린 몸을 느끼며 자괴감에 빠졌다. 엄마와 함께 동네를 걷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정기적으로 산책을 가면서 바깥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고 있지만 싸늘한 바람에 몸을 한껏 움츠리며 걸은 탓인지 더욱 쇠약해진 탓인지 아빠의 피로도는 더욱 높아지고 짜증도 많아졌다. 해가 높이 떠서 화창한 날씨에는 증상이 그나마 덜했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면 아빠의 기분은 더욱 나빠져 공상과 망상, 집착에 시달렸다. 엄마와 나는 열심히 아빠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노력해 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아빠의 상태는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최근 엄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매일 저녁 나는 회사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엄마와 바통터치를 해서 아빠를 홀로 돌보아야 했고, 엄마가 돌아오는 9시 반까지 아빠의 손을 잡으며 아빠의 마음을 읽어보려 하면서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고단한 저녁을 보내야 했다. 드물긴 하지만 어떤 날은 감사하게도 스포츠 중계에 빠져 수월하게 시간이 흘러갔지만, 대부분 아빠는 꼭 한 번씩 망상과 우울감을 토로했다. 수십 수백 번씩 반복되는 같은 질문에 답하고, 몇십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을 마치 새로운 사실인 양 받아들이며 오열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안쓰럽고 측은하다 가도 명치끝이 답답해진다. 그러다가 꾹꾹 눌러 담은 나의 감정이 새어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면 아빠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당신을 홀대하는 아들, 혹은 청년(나를 아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졌다)에게 잔뜩 짜증을 내곤 한다. 더 이상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피하거나 입을 다물면 그건 그거대로 아빠의 마음을 긁어버릴 뿐이다.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아빠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가족으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 그럴까라는 의미 없는 질문을 생각하지도, 묻지도 않으려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왜 그렇게 갑자기 집착하는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이 생겼는지 속이 터져 나간다. 나의 감정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러한 충동과 의문이 더욱 커진다. 무던히 노력하지만 아직 나는 아빠의 병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던 중 나의 인내심은 12월 30일 터져버렸다. 엄마는 2월 수술을 앞두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수술할 부위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나의 마음도 같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빠를 혼자 둘 수 없으니 내가 간호를 할 수도 없다.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있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엄마에게 스트레스일 것 같아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날 저녁 아빠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올라 엄마가 수술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아빠는 망상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물론 아빠가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없으면 극도의 불안증상을 보이며 수백 번 엄마를 찾는다. 가끔 엄마의 손을 잡고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는 말도 한다. 다 잘 알고 있지만, 곁에 있지도 않은 할머니만 찾으며 정작 당장 수술을 앞둔 엄마를 홀대하는 그날의 상황 속에서 나의 감정은 폭발했다. 엄마가 이 상황을 가장 힘들어할 것을 알기에 삐져나오는 나쁜 생각과 말을 안간힘을 써서 붙잡으려 했지만, 공격적인 말투는 약하디 약한 서릿장을 쪼개버리고 터져 나왔다.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치기 전에 얼른 자리를 피해 내 방으로 들어갔지만 뛰는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30분 뒤 아빠를 토닥거리며 상황을 이해시킨 엄마로부터 아빠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렇게 아빠 때문에 마음에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했는데, 그 문자를 받고 나니 그 가시들이 쓱 녹아 사라졌다. 이성적으로만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면, 사실 이러한 안도감도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적인 시각에서는 애초에 이런 감정적 소모도 없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아들인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감사하게도 감정적인 상처는 이성적인 합리화보다 감정적인 위로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감정을 이성의 무게로 억누르다 보면 그거 자체로 더 큰 부담과 스트레스로 변해버린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아빠와 함께하며 더 가다듬어야 하는 부분은 이성적인 합리화보다는 나의 감정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위로하는 방법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병을 알게 된 지 벌써 6년 차에 접어든다. 나아지리란 희망이 없이 더 나빠져 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하루하루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더 나 자신의 얕은 얼음장 같은 마음을 녹여낼 수 있는 온기를 기르는 것. 올해를 살아갈 나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