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3
우리 공주~
엄마의 엄마가 부르던 호칭이 이제 내가 너를 부르는 호칭이 되었네.
네가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는구나.
잠들기 직전까지 ‘무서워서 학교 가기 싫어.’라고 말하는 너에게 어떤 격려를 보내야 할지 몰라서 두서없이 편지를 쓴다.
엄마가 너만 했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입학할 그 무렵(물론 엄마는 입학‘은’ 국민학교로 했지만) 이사를 했단다. 그전까지 병설유치원을 다녔는데, 유치원 졸업을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앞두고 꽤 멀다 싶은 동네로 이사를 했지. 새 유치원을 가기엔 어중간한 시기라 그 겨울을 그대로 새 집에서 맨탕맨탕 놀면서 지냈어. 그때 처음 침대와 책상이 생겼다. 물론 이모와 함께 써야 했지만 말이야. 검정색 머릿장에 서랍이 있고, 양쪽으로 거울이 달린 침대였어. 그 서랍에 엄마의 보물들을 넣어놨었는데, 할머니가 볼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걸 생각하면, 공주 네 보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물건들이었을 거야. 책상은 갈색이었는데 서랍이 네 개나 있었지. 이모랑 서랍도 반으로 나누고, 침대 자리도 정하고 너무 신났던 기억이야. 당연히 이모와 둘이서 자기 시작했어.
새로 이사를 와서 다른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으니 엄마는 입학식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지금이야 한 반에 스무 명 남짓이지만, 그땐 쉰 명 가까이 돼서 입학식 날엔 우리 반 친구들 이름은커녕 얼굴도 다 못 보고 돌아왔어. 게다가 입학 다음날부터 한 달 가까이 짝도 오지 않았으니(아까 저녁에 이야기해 줬지? 엄마 짝지가 입학식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다쳐서 입원했다고)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매일매일이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이사오기 전에는 골목대장이었는데, 이사 오고 나니 골목대장짓도 못하지. 처음 본 친구들은 이미 서로 다 아는 사이라 인사 한 번 하는데도 쭈뼛쭈뼛 어색하지.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도 참 나빴지? 어떻게 그렇게 학교 보낼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몇 주 지나고부터는 새 친구들이 생겼어. ‘진휘’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첫 친구였는데 엄마 뒷자리 앉은 친구였거든. 그 친구가 화장실도 같이 가주고, 체육시간에 운동장에도 같이 나가주고 그랬어. 그 뒤로는 진휘의 친구들과 친구가 되고, 엄마도 골목대장 기질을 발휘해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지. 그러니까 학교 가는 게 기다려졌어.
공주야.
학창 시절 내내 엄마는 3월이 힘들었어.
낯선 사람과 잘 어울리고, 낯선 곳에도 잘 다니는 (물론 길치라 길은 잃는단다 ㅋㅋ) 엄마도 3월은 싫었어.
교실에 앉은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감, 누구랑 친하게 지낼까 하는 탐색전. 그런 게 정말 피곤했거든. 그래서 나는 너의 3월이 걱정된단다.
같은 어린이집을 5녀 내내 다녔지만 3월마다 눈물 바람이었잖아.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가기 싫다고 울고 불고 하던 그 기간과 그 강도는 해마다 조금씩 줄었어.
더 넓은 세계에 던져진 너는 또 힘들겠지만, 또 금방 적응할 거야. 이번엔 너의 절친도 같은 반이잖아. 새 학교, 새 학년, 새 교실, 새 친구, 모든 새것들 속에서 너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함께라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울지. 엄마는 정말 많이 부럽다.
그러니 이번에도 천천히 적응해 나가 보자.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 생각보다 많을 거란다.
엄마의 학창 시절이 그러했듯이, 너의 학창 시절도 결국엔 ‘좋았어~’로 끝날 거야.
내일 아침에 웃으며 만나자. 그럼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