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런던에서 온 얼그레이 홍차, 겨자색과 빨간 통에 예쁘게 담긴 싱가폴의 대표 홍차 TWG, 여러 타발론(TAVALON) 티 중에 눈에 띄는 뉴욕의 아침(NYC BREAKFAST), 그 외에도 네모 빨간 통 중국 차(무슨 차인지 잘 모르지만 맛은 아주 좋다) 등등을 펼쳐 본다. 내가 준비한 차 중에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에서 산 홍차도 있다. 초콜릿 향이 섞인 홍차인데 아마 그곳을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다들 한 봉지는 사 들고 나올 수밖에 없을 맛 좋은 다양한 홍차로 가득한 곳이다.
마들렌이 구워지는 향기가 작업실에 산들바람 부는 듯 퍼지면서 땡 하는 오븐의 알람이 울린다. 여러 가지 차를 펼쳐서 무엇을 마셔볼까 궁리한다. 오늘 나의 선택은 마들렌과 함께 영국 얼그레이 홍차와 고딕지구 초콜릿 맛 홍차이다.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어본다. 마들렌의 레몬 맛이 홍차의 맛을 돋워 주며 부드럽고도 향긋한 향이 퍼진다. 마들렌에는 버터도 들어가므로 초콜릿 맛이 나는 홍차보다는 영국의 얼그레이가 훨씬 부드럽고 담백하게 느껴진다. 나머지 마들렌은 얼그레이 홍차와 먹는다.
오늘 홍차에 담근 마들렌을 먹게 된 계기는 요 며칠 읽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 덕분이다. 몇 년 전에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을 본 후에 꼭 읽어 보고 싶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최근에야 읽게 되었다. 다음은 전에 썼던 나의 영화 리뷰다.
당신의 기억은 어떤가요?
실뱅 쇼메 감독의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을 두 번이나 봤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구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마치 단편 소설 한 권을 읽는 기분이다. 33살의 청년 주인공 폴은 말을 잃은 채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두 이모와 살고 있다. 어느 날 폴은 심리 상담을 해 주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 조각 베어 물자, 잊고 살던 과거 기억의 단편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그녀의 비밀정원은 아파트의 한쪽을 불법으로 개조한 형태이다. 공원에서 나이 든 커다란 나무 옆 벤치에서 자유로이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마담 프루스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관객을 과거에서 현재로 음악과 함께 환상적인 세계로 이끈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분노를 억제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감춘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꿈을 통해 무의식을 표현한다고 했고, 라캉은 언어를 통해 무의식이 나타난다고 했다. 물론 모두 변형되고 왜곡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것을 알아채기란 쉽지가 않다.
굳이 불행한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폴은 말을 하지 못하는 채로 무표정하게 살아간다.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는 것. 아마도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때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감정을 지닌 인간적인 삶으로 이끌어줄 인생의 멘토가 필요한 것 같다. 마담 프루스트는 폴에게 멘토의 역할을 하게 된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 조각 먹으면 잠들게 된다. 그 꿈의 무의식에서 폴은 과거의 상처를 알게 되고 치유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꿈과 라캉의 언어가 존재하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그곳에서 폴의 새로운 인생이 열리기 시작한다.
나쁜 기억은 행복한 기억의 홍수 아래로 다 가라앉는 법이지
살면서 좋은 기억을 몇 개 가지고 있다면 살맛 날 것이다. 나쁜 기억일랑은 다 쓸어내 버리고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으로 채우고 살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슬픔, 고통도 사랑의 그림자이자 패키지다. 만약 상처가 싫어서 경험을 두려워한다면, 사람들과 단절된 삶을 사는 수밖엔 없다.
아틸라 마르셀(원제이자 폴 아버지 이름)과 마담 프루스트(비밀정원 쥔장)가 작가 이름 마르셀 프루스트에서 따온 것이고,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다가 과거의 기억 속에 빠지는 것도 그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따온 것이라는 데, 책을 읽지 않은 탓에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 지식 제로인 상태였다. 나도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마들렌 한 조각 먹고 싶다. 자꾸만 우쿨렐레를 배우고 싶다. 전주 독립 영화관에서 이번 달 말까지 상영하며 일층 전시관에서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일층에 비밀 정원이 있다. 비밀스럽지 않게...
(그 당시 전주 독립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었다. 영화를 본 후 당장 악기를 사고 우쿨렐레를 조금 배웠으며, 마들렌을 사 먹으려 했으나 못 찾아서 마들렌 구이 용기를 사서 굽기 시작했다.)
다음은 요즈음 읽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스완네 집 쪽으로]의 한 부분이다.
우리의 과거도 그와 마찬가지다. 과거의 환기는 억지로 그것을 구하려고 해도 헛수고요, 지성의 온갖 노력도 소용없다.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이 물질적인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 안에) 숨어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우연에 달려 있다.(51)
나는, 마들렌의 한 조각이 부드럽게 되어 가고 있는 차를 한 숟가락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외따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그 쾌감은 사랑의 작용과 같은 투로, 귀중한 정수로 나를 채우고, 그 즉시 나로 하여금 삶의 무상을 아랑곳하지 않게 하고, 삶의 재앙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하였다. 아니, 차라리 그 정수는 내 몸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범용한, 우연한,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존재라고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디서 이 힘찬 기쁨이 나에게 올 수 있었는가? 기쁨이 차와 과자의 맛과 이어져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런 것을 한없이 초월하고 있어서 도저히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닌 듯싶었다. 어디서 이 기쁨이 왔는가?(52)
그리하여, 나는 자기에게 다시 묻기 시작한다. 도대체 그 미지의 상태는 무엇이었나, 아무런 논리적인 표시를 가져다 주지 않았지만, 그 명백한 행복감과 실존감으로 다른 온갖 잡념을 소멸시켰던 그 미지의 상태는 무엇이었냐고, 나는 그 상태를 다시 출현시키려고 애쓴다(53)
내가 레오니 고모의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 고모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꽃을 달인 물에 담근 후 내게 주던 그 마들렌의 작은 조각의 맛이었다. 여태까지 프티트 마들렌을 보고도, 실제로 맛보았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회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략... 사물의 형태 또한-근엄하면서도 숫저운 스커트 주름에 싸여 그토록 풍만하고 육감적인, 과자의 작은 조가비 같은 모양도 –없어지거나 잠들어 버리거나 하여, 의식에 또다시 결부될 만한 팽창력을 잃고 만 것이다. 그러나 옛 과거에서, 인간의 사망 후, 사물의 파멸 후,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에도, 홀로 냄새와 맛만은 보다 연약하게, 그만큼 보다 뿌리 깊게, 무형으로, 집요하게, 충실하게, ㅇ랫동안 변함없이 넋처럼 남아 있어, 추억의 거대한 건축을, 다른 온갖 것의 폐허 위에, 환기하며, 기대하며, 희망하며, 거의 촉지되지 않는 냄새와 맛의 이슬 방울 위에 꿋꿋이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레오니 고모가 나에게 준, 보리수꽃을 달인 더운물에 담근 한 조각 마들렌이 맛임을 깨닫자, 즉시 거리에 면한, 고모의 방이 있는...(54-55)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지 않기로 한다. 충분히 글이 길어졌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기가 막힌 문장에 기가 눌린 점도 있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을 읽는 재미를 줄이기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책에 나온 마들렌과 차로 인해 프루스트 효과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는데, 위의 글을 읽으면 이해가 될 듯하다. 프루스트 효과란 특정 냄새를 맡으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기억이 소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은 냄새와 맛이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글과 그림과 사물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재밌게 전해주는 경험담이 자극을 주기는 하지만 나의 후각을 통해 느끼고, 그곳의 것들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묘미다. 그래서 나는 여행 갈 때면 가능한 한 여행지의 음식을 선호한다. 그 맛이 아무리 이상하다 해도 바로 여행지에서 맛보는 재미이기 때문에.
‘나의 식탁’에 차려진 차의 향기를 맡으며,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로 여행을 떠난다. 종교적인 문제로 사귀던 사람과 헤어져 나에게 조언을 구하며 울던, 런던에서 구한 홍차를 선물한 지인을 떠 올린다. 지금은 자신의 짝을 만나 그야말로 알콩 달콩 살아가고 있으니, 역시 모두 제 짝꿍이 있나 보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를 보고, 내가 바닷가를 뛰어다니던 폴의 누나와 닮았다면서 깔깔거리던 30년 지기 오랜 친구들도 보고 싶다. 일 년에 두 번씩 만나 수다로 밤을 지새우는 데, 올 해는 코로나 때문에 모임을 취소했다.
그나마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코로나로 인해 우울한 마음이 조금은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