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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Luce Oct 05. 2020

시루떡 나누기

수탉과 멍멍개

한국 음식은 나눔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 떡은 대표적인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는 명절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에 떡을 해서 마을 사람 전체에 돌렸다.


우리 마을에서도 나눔의 떡 문화가 있어 어린이들을 설레게 했다. 주로 푸짐한 시루떡을 했던 것 같다. 남의 집의 떡을 맛보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의 떡을 해서 나눌 때면 상황은 달랐다. 할머니는 항상 나에게 떡 배달 심부름을 시키셨다. 내가 예닐곱 살 즈음이었으니,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오빠나 아직 어린 동생들은 제외되었던 것 같다.    

   

떡을 들고 문간에 서서 있는 힘껏 목청을 다해 


 드세요~


라고 하면 어르신들이 나오셨다. 우리 마을은 집집마다 개나 닭과 같은 가축을 키웠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개들 때문이었는데, 조심조심 문에 다가섰다가 개가 짖으면 기겁을 해서다. 어른이 된 나의 목청이 크다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어릴 때부터 떡 이외에도 자주 음식 나누기 심부름을 다녔고, 그때마다 다른 집 문 앞에서 하도 소리를 질러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집은 여러 마리의 개들을 키웠는데, 셰퍼드같이 큰 견종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집 개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큰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밥을 주고, 함께 뛰어놀았다. 그러나 남의 집 개들은 작아도 “멍 멍” 하면, 나는 떡을 들고 집으로 다시 달려오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탉을 만났다. 나는 본시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자그마한 나를 노려보는 그 눈이 어찌나 살벌하던지 소름이 끼쳤다. 떡을 들고, 수탉과 눈을 마주하며 대치하고 있었다. 별안간 벼슬을 잔뜩 세운 녀석이 나에게 돌진해 왔다.


그 순간,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 집으로 달려왔다. 그 집에 떡을 드리지 않고 다시 가져왔다고, 할머니께 혼이 났다. 나는 죽어도 그 집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오빠에게 심부름시키시라고 항변했다. 그 후로도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수탉을 만날까 무서워서 재빠르게 달려서 지나쳤다.               

 

몇 주 전 상관 편백나무 숲에 갔는데, 마을 입구의 집에서 수탉을 발견했다. 노려보는 눈빛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울타리 안에 있었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야, 너 울타리가 있어서 어쩌지 못하겠지? 메롱!” 하고 내가 큰소리로 말했다. 수탉의 심기가 무척 불편해 보여서 나는 더 신이 났다. 이 닭과 그 닭이 다른데도, 복수심이 불타오르니 내가 말해놓고 어이없는 웃음이 툭 나왔다.                     


'함께 나누는 한식의 떡 문화’가 바뀌고 있다. 근래에 들어, 밥이나 떡에 비해서 빵이 주식과 간식으로 대치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 빵집도 많고, 그 모양새와 발효 등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지만 오븐만 있다면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또한, 한식에 비해 식탁이 아주 간소하다. 그런 의미에서 빵은 커피에 길들여진 바쁜 현대인들의 취향저격이다.


그러나  한식의 나눔 정신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아궁이에는 한국 여인네들의 아픔이 서렸다고 한다. 할머니의 가마솥의 누룽지와 시루떡이 그립다. 가마솥 위에 시루를 얹고, 그 이음새를 밀가루 반죽으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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