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과 멍멍개
한국 음식은 나눔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 떡은 대표적인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는 명절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에 떡을 해서 마을 사람 전체에 돌렸다.
우리 마을에서도 나눔의 떡 문화가 있어 어린이들을 설레게 했다. 주로 푸짐한 시루떡을 했던 것 같다. 남의 집의 떡을 맛보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의 떡을 해서 나눌 때면 상황은 달랐다. 할머니는 항상 나에게 떡 배달 심부름을 시키셨다. 내가 예닐곱 살 즈음이었으니,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오빠나 아직 어린 동생들은 제외되었던 것 같다.
떡을 들고 문간에 서서 있는 힘껏 목청을 다해
떡 드세요~
라고 하면 어르신들이 나오셨다. 우리 마을은 집집마다 개나 닭과 같은 가축을 키웠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개들 때문이었는데, 조심조심 문에 다가섰다가 개가 짖으면 기겁을 해서다. 어른이 된 나의 목청이 크다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어릴 때부터 떡 이외에도 자주 음식 나누기 심부름을 다녔고, 그때마다 다른 집 문 앞에서 하도 소리를 질러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집은 여러 마리의 개들을 키웠는데, 셰퍼드같이 큰 견종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집 개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큰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밥을 주고, 함께 뛰어놀았다. 그러나 남의 집 개들은 작아도 “멍 멍” 하면, 나는 떡을 들고 집으로 다시 달려오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탉을 만났다. 나는 본시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자그마한 나를 노려보는 그 눈이 어찌나 살벌하던지 소름이 끼쳤다. 떡을 들고, 수탉과 눈을 마주하며 대치하고 있었다. 별안간 벼슬을 잔뜩 세운 녀석이 나에게 돌진해 왔다.
그 순간,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 집으로 달려왔다. 그 집에 떡을 드리지 않고 다시 가져왔다고, 할머니께 혼이 났다. 나는 죽어도 그 집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오빠에게 심부름시키시라고 항변했다. 그 후로도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수탉을 만날까 무서워서 재빠르게 달려서 지나쳤다.
몇 주 전 상관 편백나무 숲에 갔는데, 마을 입구의 집에서 수탉을 발견했다. 노려보는 눈빛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울타리 안에 있었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야, 너 울타리가 있어서 어쩌지 못하겠지? 메롱!” 하고 내가 큰소리로 말했다. 수탉의 심기가 무척 불편해 보여서 나는 더 신이 났다. 이 닭과 그 닭이 다른데도, 복수심이 불타오르니 내가 말해놓고 어이없는 웃음이 툭 나왔다.
'함께 나누는 한식의 떡 문화’가 바뀌고 있다. 근래에 들어, 밥이나 떡에 비해서 빵이 주식과 간식으로 대치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 빵집도 많고, 그 모양새와 발효 등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지만 오븐만 있다면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또한, 한식에 비해 식탁이 아주 간소하다. 그런 의미에서 빵은 커피에 길들여진 바쁜 현대인들의 취향저격이다.
그러나 한식의 나눔 정신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