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에 대하여
주렁주렁 열린 은행알들이 노랗게 된 어느 날 아빠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큼 지막하고 튼튼한 비닐을 들고 오셨다.
우리 형제자매 넷이 귀퉁이를 잡고 있으라는 것이다. 코끝을 감싸 쥐어야만 할 지독한 은행알의 냄새를 견디며 비닐의 끝자락을 받히고 서 있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팔은 또 얼마나 아프던지…….
아빠가 위로 올라가서 털면 한 번에 비닐 위로 떨어진다. 이는 아빠의 논리였다. 실상은 우리들 키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이쪽저쪽으로 난리가 났다.
전체적으로는 가운데로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은행들을 모아서 포대 자루에 넣고 거의 한 달을 묵혔다. 그 후에 포대째 주무른 후 낱알들을 씻어 건조했다. 그 과정에 나는 고약한 냄새로 인해 은행포대가 있는 수돗가 근처를 지날 때면 늘 코를 막고 다녔다.
우리 식구들은 호흡기가 약한 편이다. 은행을 먹으면 몸에 좋으니 매일 다섯 알씩 먹으라고 말씀하시면서 거의 매일같이 은행을 구워 펜치로 하나씩 까 주셨다. 고약한 과정과는 달리 맛은 고소했다.
길바닥에 밟히는 고약한 은행 냄새를 맡을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환절기에는 알레르기 비염이 특히 나를 괴롭힌다. 걸핏하면 심해져서 기관지염이 된다. 은행알을 까 주시면서 "먹어봐." 하시던 아빠가 자동반사적으로 떠 올려진다.
이제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신 후, 동생이 집을 정비했다. 은행나무와 그 밖의 유실수들이 대부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