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던 일에 대해 써라
"아기 낳으면, 제 몸이 망가지잖아요."
6년 전, 아이 생각이 없냐는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그때 나는 결혼 3년 차였고 임신 계획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출산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반려인과 나는 해외로 이민을 갈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한국 출국 전 혼인 신고를 했다. 그러나 2년 뒤,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한국 귀국을 결심했다. 그리고 나에겐 모든 게 새로웠던 도시, 반려인의 고향인 부산에서 몇 년 간 살게 되었다.
나는 부산이 좋았다. 바다의 짠내음은 끝내 적응하지 못했지만, 나는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을 좋아했다. 내가 만난 부산 사람들은 대체로 직접적이고 가까운 관계를 지향했다. 처음엔 내 바운더리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그들이 당황스러웠지만, 친해지고 보면 정 많고 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도 나는 새롭게 친해진 언니들과 차를 타고 교외를 갔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차 안에는 나와 싱글이었던 언니,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언니가 둘 있었다. 기혼인 언니 중 한 사람은 아들이 둘 있었고, 다른 한 사람 J 언니는 딸과 곧 출산을 앞둔 아들이 뱃속에 있었다. 그렇다 보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육아에 대한 주제로 흘러갔다.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게 누군가 아이 계획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딱 잘라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가질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출산 후 겪어야 할 몸의 변화들이 두렵다고. 그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언니들은 다시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당시 출산에 대한 공포는 내게 직접적인 것이었다. 나는 해외에 있을 때 2주에 한 번씩 앓아누웠을 정도로 몸이 약해졌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자주 아팠다. 시어머니는 그런 나를 삐약이라고 불렀고, 한의원에 보내 보약을 지어 먹였다.
한의사 선생님은 긴 상담 끝에 내 맥을 짚어보더니, 노인이나 다름없는 몸이라고 말했다. 함께 온 반려인을 보며, 만약 출산이라도 한다면 몸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이 한약을 지어 먹이기 위한 상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아플 때마다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부산을 떠나 서울에 살게 된 지 3년 정도가 지나고, 나는 아이가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이가 내 몸에 내게 될 흉터보다, 흉터 가득한 내 삶에 아이가 불어넣어줄 생명력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생긴다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결심이 들자 갑자기, 5년 전 부산으로 돌아가던 차 안에 있던 만삭의 J 언니가 떠올랐다.
그날이 있고 얼마 후, J 언니는 아주 귀엽고 우람한 아들을 낳았다. 나는 언니 부부가 힘들어 보일 때 자주 그 아이를 안아 들었다. 오랫동안 안아주기엔 내게 무거운 아이였지만, 그 녀석의 살 냄새와 온기를 포함한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언니들 덕에 그런 아이들을 많이 봐서, 아이를 가질 용기를 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기는 나오면서 엄마의 몸을 망가뜨린다'라고 했던 그날. J언니는 선천적 질환으로 어린 나이에 큰 수술을 해야 했던 딸의 엄마이자, 열 달간 품속에 안고 있던 아들의 엄마였다. 그런 사람 앞에서 나는 ‘아기는 엄마를 망가뜨리는 존재’라고 말한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그날 했던 말이 얼마나 무례한 말이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안고 하루 이틀 끙끙거렸다. 그리고 결국 부산을 떠난 이후 연락한 적이 없었던 J언니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언니는 때가 많이 지나버린 내 사과를 받아주었다. 오히려 잊고 지나가면 될 일을 용기 내 사과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언니의 따뜻한 말에 힘입어, 결혼 7년 차에 이르러서야 임신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언니는 기뻐하며 임신, 출산, 육아가 혼란스럽고 어려운 만큼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주변의 도움과 사랑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작은 용기를 냈다가 큰 용기를 되려 돌려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