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호미 Jun 15. 2024

퇴사하며 대표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힘들게 깨우친 교훈 한 가지에 대해 써라





아마도 내가 가장 힘들게 깨우친 교훈은 세상에 좋은 대표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좋은 직원, 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리 인내심 있는 직원으로 살아오지 못했다. 첫 번째 직장은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웃긴 일이지만, 나 정도면 꽤 오래 버틴 편이었다. 과도한 업무량과 낮은 연봉으로 부산에서 악명이 높았던 그곳은 옆자리에 앉은 팀원과 말 한마디 나눌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하는 곳이었다. 어차피 일주일마다 한 번씩 옆자리가 바뀌었으므로, 친해질 필요도 없었다.


나처럼 최소 3개월 이상 버텨서 서로 친해진 직원들은 대표실에 불려 가 쓸데없는 충고를 듣곤 했다. 직원들을 앉혀놓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그는 어느 날 '직원들이 야근하길 원치 않는다'라고 했다. 직원에게 야근 수당도 주지 않는 대표가 야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노동법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야근하라는 지시 대신, 각 직원에게 매일 과도한 업무량을 배정했다. 당시 노동법상 야근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을 받으려면, 야근에 대한 지시가 있어야 했다.


나는 당시 몹시 화가 났다. 치기 어린 성격이었던 나는 다른 직원들이 있건 말건 그를 향해 따지기 시작했다. '업무량을 줄여준다면, 야근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사장은 본인의 실력이 좋지 않아, 작업 속도가 느린 걸 회사 탓을 하면 안 된다며 예전에는 직원들이 다 칼퇴근을 했다고 했다. 나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답했다. 매월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는데 예전 직원과 비교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게다가 예전 직원이란 사람들은 진작 회사를 그만두고 떠났던 것이었다. 나와 대표는 잠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했지만, 결국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대표실을 나오자 동료들은 내게 방금 멋있었다며, 대단하다고 말했다. 난 내가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바뀌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결국 6개월 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나는 대표가 바뀌지 않아서 그만뒀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지켜본 친한 동료의 증언은 달랐다.


야근 수당이 없었던 그 회사는 저녁 식대를 제공했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저녁 9시까지 일해야, 7시에 저녁 식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원은 몇 천 원의 식대를 받는 것보다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는 것을 선택했다. 매월 말이 특히나 업무량이 많았는데, 가끔씩 늦은 시간에 대표가 떡볶이와 순대를 사와서 야근하는 직원들을 불러 먹이곤 했다.


그날도 대표가 사들고 온건 비닐 봉다리에 담아주는 시장 떡볶이였다. 떡볶이는 죄가 없었지만, 나는 그의 위선적인 호의를 받기 싫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했고, 내 옆자리에 있던 친한 동료 또한 마찬가지였다. 떡볶이를 먹으며 1시간 정도 대표의 일장연설을 듣느니, 빨리 일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는 동료의 팔을 억지로 잡아 끌었다. 아마 내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기에, 내 팔을 끌고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대표님, ㅇㅇ씨가 싫다잖아요!'라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그 외침이 대표실로 끌려 들어가던 동료를 구해줄 순 없었다. 다른 동료의 말로는, 그러고 다음날 내가 사직서를 썼다고 했다. 마치 나이트의 웨이터처럼 내 동료를 끌고 가던 대표의 모습은, 내가 첫 사직서를 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었다. 나는 그 대표가 정말 싫었다.




다음으로 취직한 곳에서 나는 대표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와의 면접은 꽤 길었는데, 나는 나를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자신이 사업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사회 환원에 있다는 그 말을 나는 굳게 믿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일했다. 너무 열심인 나머지 새벽 1시까지 일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마케팅을 해서 매출을 일으킬까 고민했다. 하지만 대표는 직원인 나보다도 매출에 관심이 없었다. 최대한 정상적인 회사로 보이면서도 돈을 적게 쓸 궁리만 하는 것 같았다.


그가 기분이 좋았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다. 자신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것이지만, 직원들에겐 편하게 아무 음료나 고르라고 말했다. 나는 아메리카노보다 500원 정도 비싼 음료를 말한 후 대표의 표정을 살폈다.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표정이었다. 그는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표정이나 행동까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나는 3개월 만에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


작은 회사라 사직서를 낼 필요는 없었다. 대표와 단 둘이 있을 때, 사직 의사를 밝혔다. 대표는 울면서 매달렸다. 자신의 슬픈 과거까지 내게 말하며, 자신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말했다. 나는 그때 정말 이상하게도, 감정이 동요하지 않았다. '대표님의 아픔에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생각이 바뀌진 않는다'는 내 말에 그는 곧바로 정색했다. 방금 전까지도 눈물을 글썽이던 사람이었다. 난 이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라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던 마지막 날, 나는 그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내가 왜 이 회사를 그만두는지, 지금 회사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대표인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구절절 담은 편지였다. 나는 이때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에게 일침을 놔야 한다고.


내가 그만둔 이후로 대표는 새로 들어오는 직원 모두에게 내 욕을 했다. 직원들은 처음엔 함께 내 욕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도 모두 그 회사를 떠났다. 이건 그 회사에 끝까지 남아있던 동료를 통해 들은 이야기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다니던 회사를 또 그만두었다. 나는 사실 그 대표를 사람으로서 좋아했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4대 보험을 들어준다는 계약을 지키지 않아도, 월급이 3개월씩 밀려도 참았다. 그러나 결국 그 대표의 약점은 내가 직원으로서 보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독한 회피형 인간이었던 그 대표는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래처의 연락을 고의적으로 받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은 대표를 찾는 사람들이 회사의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그들은 모두 화가 나있었고, 그들은 모두 그저 대화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더 꼭꼭 숨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이 점이 결국 나를 미치게 했다. 내게 많은 것들을 맡기고 여러 문제로부터 도피 중이던 그에게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유를 물었지만,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표에겐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 퇴사 그 이상의 의미인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자신을 떠난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늦은 밤에 술에 취해 내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도대체 그만두는 이유가 뭐냐고 한 시간을 물어도, 나는 끝내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이란 말 뿐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몇 년 전 다른 대표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가, 몇 년이고 뒷담화 대상이 되어버린 일을 후회하고 있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선을 넘는 행동이긴 했다. 아마 내 말에 상처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난 상처를 주려고 그 편지를 썼는지도 모른다. 회사에 남은 직원들과 대표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옳은 일이라고 믿었던 그 행동은 그저 그에게 훈계하고 싶은 오만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 대표를 솔직히 좋아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연락할 정도로 동료들과는 친했지만, 그에게는 내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지독한 회피형의 대표를 아끼고 있었다. 그만두는 이유를 말해봤자 쉽사리 바뀔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나는 그때 끝까지 이유를 말하지 않았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좋은 대표는 아니었지만, 내가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로 지내며,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니곤 했다. 프리랜서가 된다는 것은 직원보다 대표가 되는 일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가진 기술을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도록 유도해야 하고, 내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대표가 돼야 한다. 그리고 사업을 책임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처리할 것이 많고 피곤한 일이었다. 왜 지금껏 그들이 사소한 것이라도 돈을 아끼려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게 정당한 일이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프리랜서와 계약직으로 지내며 많은 사업가들과 만났다. 다양한 유형의 대표들을 만나며 조금씩 그들을 이해하고, 나와 그들 사이의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해는 머리가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조금씩 양보할 때 우리는 합의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조금 더 다정해진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 기대가 되고, 실제로도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때 이 말을 하는 나도, 듣는 대표님들도 조금은 뾰족했던 마음이 수그러진다. 물론 다정하게 말하기 위해, 나는 뾰족하게 말하고 나서 후회하는 날들을 거쳤다. 그렇게 나는 힘들게 배웠다. 세상에 좋은 대표, 좋은 직원은 없지만 모든 사람은 약간의 다정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전 02화 출산하면 제 몸이 망가지잖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