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살고 싶어 했다

by 김뭉치

스스로 죽음을 결심하기 직전의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생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30여 년에 걸쳐 지속된 엄마의 우울을 떠올려 보면 사뭇 놀랄 정도로 엄마는 살고 싶어 했다. 아주 잘, 건강히 지내고 싶어 했다.


극심한 병증이 엄마의 온몸을 덮치자 엄마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필요 이외의 말을 할 때,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원래 형태가 뚜렷하지 않던 그녀의 말들은 아예 형체를 잃어버렸다. 꼭 낡은 미래를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구라도 그런 류의 말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거대한 젤리들이 내 머리 위로 쿵, 하고 떨어져 버리고 그것이 이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기분. 어찌할 수 없고 손 쓸 새도 없이 나는 불쾌한 슬픔에 젖어 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해를 바랐고 여전히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매일이었다. 엄마와 나는 각기 다른 밤의 장막 뒤에 숨어 있었다. 우리는 그저 하릴없이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그렇게 밤을 떠나보냈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새벽을 맞는 건 우리 모녀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엄마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쓸려 내려가고 있는 동안, 엄마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헤아릴 수 없었던 철부지 큰딸은 어린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곤 했다. 동그랗고 작은 어깨, 선이 고운 콧날, 얇은 입술. 가느다란 눈매가 돋보였던, 외면과 내면 모두 건강했던 엄마를.


다른 친구들의 엄마보다도 훨씬 젊어 보이고 아름다운 엄마가, 참 좋았다. 어린아이들은 잘도 그런 것을 캐치할 줄 알았다. 반 친구들 중 막둥이로 태어난 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엄마를 할머니, 라고 놀리는 통에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반면 나의 엄마는 나서기를 싫어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되도록 바깥출입을 삼가는 편이었지만, 어쩌다 한 번 아이들의 눈에 띌라치면 나 자신도 모르는 새 우쭐할 수 있었다.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아름다운 엄마를 둬서 참 좋겠다, 는 아이들의 동경 어린 시선을 나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러나 내 곁에 누워 함께 눈을 부릅뜬 채 밤을 지새우던 현실 속 엄마는 내가 자란 만큼이나 세월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상태였다. 피부는 생기를 잃었으며 오랜 불면으로 몸은 더욱 야위었다. 곱던 머리칼은 푸석거리고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모발들이 한 움큼씩 빠지기 일쑤였다. 엄마는 매일 더 깊어지는 주름에 어찌할 바 몰랐다. 그런 엄마의 머리통은 아주 조그마했다. 놀라울 정도로 작아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의 봄.

엄마의 여름.

엄마의 가을.

엄마의 겨울.

엄마의 사계절.


엄마에게 들러붙은 시간.

시간의 더께들.


그 혹독하고 진득한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온몸이 차가워졌다. 오소소 소름이 돋고 냉동창고에 막 들어선 사람처럼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때마다 나는 갑자기 나에게로 밀려든 전 생애의 무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나는, 태어나서는 안 됐다.

어쩌면 나의 출생이, 엄마의 전 생애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 건지도 몰랐다.

1987년 3월 26일, 무표정하게 서 있는 엄마의 결혼사진 속에 자리한, 그로부터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태어난 나란 아가는.


그래서 나는, 그녀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웃게 만들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용서했을까.

언젠간 엄마가 나를 용서하는 날이 올까.

용서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나를 먼저 두고 떠난 엄마를 용서하는 것을 용서한다. 나는 엄마에게 상처 입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겐 너무나도 무거워서 엄마를 용서했다고, 나는 엄마를 모두 이해한다고, 아니 적어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삶이었다고, 착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이제 더 이상은, 용서를 위해 애쓰지 않기로 한다. 나는 엄마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 노력은 위선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엄마의 삶이 있다. 그러나 내겐 나의 아이가 없으므로 나는 끝내 엄마로서의 엄마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018년 5월 25일. 그 시릴 만큼 뜨겁던 봄날 이후 모든 게 어떻게 달라졌던가. 사물의 위치는 어떻게 옮겨졌는가.


내가 아무리 무수히 많은 글을 쓴다 하더라도 결코 그것만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은 늘 삶의 뒤편에 있고 삶은 언제나 죽음의 양면이다.

그러니 나는 매일매일 아주아주 씩씩하게, 아주아주 훌륭하게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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