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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조이 라이프 Sep 09. 2024

하프 마라톤을 기어코 완주하고 얻은 것

7년 연애의 이별을 극복할 수 있게 한 유산소 운동썰 풉니다

이 글은 올 3월,

7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후 작성되었어요.


독학 헬스 일지와 약간은 맞지 않는 글일 수도 있지만

제 신체적 한계를 시험해 본 소중한 경험이기도 해서 꼭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제 모습이 한편으론 안쓰럽고, 한편으론 자랑스럽고 애틋하고,, 그러네요.


서투른 글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는 독자님들,

연인과의 이별로 불안을 겪고 있는 독자님들께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지금은 그분과 다시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지난 토요일, 몇 년 간 일종의 목표처럼 지녀오던 ‘하프 마라톤 완주’에 성공했다.

사랑하는 딸내미가 마라톤을 뛰다 심장마비로 죽어버리진 않을까 걱정하며 ‘도대체 왜 뛰냐’고 묻던 울 아빠.

젊은 나이에 무릎 다 상하니 무리 말라며 걱정해 주시던 직장 선배분들.

'설마 재가 하프를 뛰겠어?' 하며 반신반의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던 사람들은

내가 정말로 완주를 하고 나자 대단하다며 연신 감탄의 말을 전해왔다.

결과적으로는 무수한 감탄의 말보다 몇 곱절은 더 값지고 뿌듯한 무언가가 내게 왔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난 왜 이걸 ‘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전에 10KM 마라톤 대회를 세 번 뛰었는데,

마지막 대회는 정말 1도 준비를 안 하고 뛰어서 무릎, 고관절 등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심지어 걷기도 했다. 기록도 제일 최악.


첫 10KM를 완주한 후, 언젠간 하프 코스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마지막 대회 땐 이미 ‘에이,,, 난 하프는 무리겠다’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다이어리 속에는 ‘하프 마라톤 완주’가 한 해의 목표 중 하나로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난 못 뛸 거라’라는 목소리가 공명했다.


사실 이 세 번의 대회 모두 나와 7년을 함께 해준 전남자친구와 뛰었었다.

당시의 나는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없었다면 10KM를 혼자 뛰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 난 늘 긍정적이고 뭐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겠지만

내가 보는 난 지독한 회의주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작년 2월쯤부터 혼자 주 4회 정도는 꾸준히, 그리고 나름 열심히 헬스를 해오고 있었는데

네 달전쯤 그와 헤어지고 난 후로는 더욱더 헬스에 미쳐 살았다.

그리고 두 달 전쯤 한창 복잡 미묘한 생각과 감정들로 고통받고 있던 어느 평범한 날,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3월 9일 자 하프 마라톤을 신청했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찬바람이 쌩쌩 불었던 날, 목표 12KM를 러닝앱에 찍고 달리기 시작했다.

5-7KM 정도의 야외러닝을 주로 하다 12KM를 뛰려니 살짝 겁이 났다.
아니, 았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다. (쫄? ㅇㅇ 쫄..)


‘에이 설마 뛸 수 있겠어? 이 추운날? 굳이 사서 고생을? 몰라! 일단 뛰어보자!’


1KM 정도 뛰었을까, 콧물이 인중을 타고 줄줄- 흐르길래

그대로 집으로 돌아 들어오려다 조금만 더 열을 내 보자 하고 뛰던 게 결국 12KM를 채웠다.

앱에서 ‘12KM를 달성하셨어요!’라며 명랑한 목소리로 알려주는데 그 순간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길 한복판에서 ‘와! 해냈어!’를 외치며 연신 만세를 불렀다.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냈구나.

때하나 묻지 않은 순수한 성취감을 이렇게까지 느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때,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야! 안된다고? 거봐! 되잖아!’하며 절대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스스로의 뒤통수를 갈겨버리고 싶었다.

겁쟁이처럼 아서 나아가지 못하는 나에게 닥치고 눈앞의 한 발에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샌가 피니시라인을 넘고 있을 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없어도 나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난 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이 모든 과정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은 단 1mg도 없었다.


오로지 나를 위한 달리기, 나를 위한 치유의 시간.


대회 당일, 테이핑과 파우더, 우비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갔지만 난 나의 페이스를 지키려 노력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한강을 따라 달리니 뛰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연신 들었다.

황금 같은 일요일 아침, 졸린 눈 비비며 일어나 굳이 굳이 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나.

저 아저씨는 왜 뛰는 걸까? 저 친구는 왜 뛰는 걸까? 다른 사람의 사정을 궁금해하기도 했고,

피니시라인을 웃으며 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런 생각들에 너무 많은 주의를 빼앗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오로지 내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 또 집중.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한층 단단해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상상했던 그대로,  나는 해맑게 웃으며 피니시라인을 넘었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기록은 2시간 24분.

혼자 하프는 안될 거라며 스스로 한계와 벽을 만들어냈던 과거의 나에게는 빅엿(Big )을 날렸고,

동시에 완주해 낸 현재의 나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포옹을 아끼지 않았다.


‘잘했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앞으로도 이렇게 한 걸음씩 해나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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