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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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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유주 Jan 03. 2021

31.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의 차이

나는 여전히 따스한 사랑이 어색하고 두렵다

흔히 자신에게 하는 무수한 거짓말 중에 가장 흔하고 강력하고 파괴적인 것으로 "우리는 정말 아이들을 사랑합니다"와 "우리 부모는 참으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가 있다. 부모가 우리를 사랑했고 또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쓸데없이 오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자주 심리 치료를 가리켜 '진실 게임' 또는 '정직 게임'이라고 말한다. 심리 치료는 무엇보다도 거짓말과 대면하도록 환자를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신병의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내가 들어온 거짓말과 자신에게 해온 그런 거짓말이 서로 엉키는 것이다. 이런 원인은 오로지 철저히 정직한 분위기에서만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 p.80 - M.스캇 펙




친구와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커플이 반려견과 함께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다가 카페로 들어섰다.

남자는 음료를 주문하러 매장 안쪽으로 들어갔고 여자는 메고 있던 숄더백에서 예쁜 디자인의 애견용 물그릇과 500ml 생수병을 꺼내 물을 부어 강아지에게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건넸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요즘엔 개도 그렇게는 안키워! 애를 무슨 시골에서 똥개 키우듯 방치한다니까!"하고 갑자기 또 하레 엄마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도대체 언제 따라 둔 건지도 모를 물을 마시고, 멀건 육수용 인스턴트 사골 국물과 김만 먹고 늘 병을 달고 살았던 하레.


하레엄마는 만3세도 안된 하레가 장염에 걸려 계속 설사를 하는 와중에도 월급 타면 곱창 먹으러 가기로 하지 않았냐고 분노발작을 일으키며 밤 9시 반도 넘은 시간에 아이 기저귀 하나 안 챙겨 기어코 곱창을 먹으러 간 여자다.

아이가 옆에서 설사를 한 기저귀를 차고 아파서 기운이 있든 말든.

하레 아빠가 더이상 못참고 애가 아프니까 그만 집에 가자고 하자, 여전히 태연하게 앉아 곱창을 먹으며 오빠 친구 집이 이 근처니까 가서 기저귀 하나만 달라고 하면 안돼?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하레엄마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의 행동들에 관해 들을 때면 느껴지는 분노에 관해 생각하다가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하레엄마를 향한 감정만은 아닌 차마 나의 엄마를 향할 수 없었던 정당한 '나의' 분노가 함께 터져나오는 걸수도 있다고.

엄마가 주장하던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이제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이 오면 하레랑 하레아빠가 주말동안 먹을 거리를 준비해 두고 집에 다녀오는데, 하레아빠가 이번 주말엔 안해놓고 가도 된다고, 엄마가 오기로 했다고 했다.

카레를 해온다고 하기에 "맛있는거 해오라그래! 카레가 뭐야!"라고 했다.

"수박도 큰 거 한 통 사오라고 해, 하레가 좋아하니까."


그 주말에 엄마가 가져온 음식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뭐가 들었는지 모를 알록달록한 색소 범벅의 알 수 없는 수입 브랜드의 커다란 젤리 한 통(절대로 하레에게 먹이고 싶지 않은!!).

마트에서 할인 행사해서 사온 것 같은 '가장 싼 과일'인 바나나 한 송이.

작은 통에 감질나게 잘라서 담아온 수박.

가장 기가 막혔던 건 커다란 새송이도 아닌 자질구레한 미니 송이버섯을 양파, 피망과 함께 볶아서 가져온 것.

하레는 버섯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아서 아예 먹지도 않는다.

하레아빠는 야채라는 건 먹지도 않고.

그렇다면 이 집에서 이걸 먹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엄마는 내가 여기에서 하레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도대체 이 음식은 '누굴' 먹으라고 가져온거지?

누가봐도 집 냉장고에 남은 굴러 다니는 야채를 그저 모아 볶아서 마치 '개밥을 던져주듯' 받는 이의 식성과 취향 따위 무시하고 가져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마치 하레엄마가 하레를 대하던 그 태도들이 생각났다.


엄마가 가져온 음식들에서는 신기하게도 엄마의 고집스럽고, 제멋대로고, 툭하면 길길이 날뛸 것 같은, 좋지 않은 투박함이 풍겨 나왔다.

혹은, 굳이 좋게 생각해 보자면,  '야채를 좀 잘 챙겨먹어라'라는 엄마의 배려로도 볼 수 있겠지만...그러기에는 신선한 나물 종류도 아닌, 그러니까 한마디로 '생색내기'에 불과한 메뉴들이었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건강이나 영양 밸런스를 생각한 것도 아닌.

마트에서 가장 싼 것, 집에 굴러다니는 것들을 가져온.


아 물론, 엄마가 아들 집에 올 때마다 '비싸고 맛있는 걸' 챙겨올 순 없다.

하지만 그래봤자 한 달에 한 번 아닌가??

의문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 그저 생각하기를 '중지'하기로 했다.




수년 동안 연구를 거듭하면서 모녀관계에 대한 책을 수도 없이 읽었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애착, 친밀감, 엄마의 향수에 대한 추억, 엄마 피부의 감촉, 요리를 하며 부르는 엄마의 노랫소리, 나를 흔들어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그 따스한 위로의 느낌,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며 느끼는 기쁨과 지적인 자극에 대한 기억 따위는 내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가 물론 비정상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내 경험을 설명해주는 책을 지금까지 한 권도 보지 못했다. 내가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엄마와의 추억이 별로 없는 불쌍한 경우인지 간절히 알고 싶었다.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이 느낌이 무엇 때문인지, 우리 엄마처럼 자식을 돌보지 않는 엄마가 진짜 있는지에 관해 쓰여진 책은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엄마를 향한 갈등, 언제나 부족한 사랑, 심지어 때때로 느껴지는 분노를 다루는 책 역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엄마와 있었던 좋지 않은 경험들을 털어놓는 사람은 없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는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신성시되기에 부정적인 얘기는 나올 수가 없었다. 더구나 착한 딸이 엄마를 나쁘게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니 당연한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모성애 없는 엄마로 인해 성장기의 어린 소녀들부터 성인이 된 여성들까지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치 엄청난 금기 사항을 어긴 것 같았다.


<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 Will I ever be good enough?> p.6 - 캐릴 맥브라이드




엄마는 하레네 집 팬트리에 자기가 쓰다가 필요 없어진 자질구레한 물건을 갖다 두곤 했다.

홈쇼핑에서 충동구매 했지만 관리하기 귀찮아진 녹즙기,

예뻐서 샀지만 용량이 작고 쓰기 불편한 사기 소재의 전기포트,

커다란 주전자는 파손되고 미니 사이즈의 통들만 남은 믹서기,

김치물이 배어 아무리 설거지를 해도 마늘 냄새가 풀풀 나는 낡은 타파웨어 용기들. 

하레아빠가 우리집이 쓰레기장이냐고!!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나서야 내가 이사하던 날, 엄마가 우리집에 갖다놓고 갔던 물건들이 새삼 새롭게 보였다.


원래 선명한 빨간색이었을테지만 햇빛에 바래고 낡아 거의 베이비 핑크색이 되어버린 플라스틱 대야(심지어 나는 대야를 쓰지 않는다!), 

엄마가 오븐 겸용으로 바꾸기 전 쓰던 낡은 전자레인지, 

냄비 세트에 들어있던 자기가 안 쓸 것 같은 라면 하나 끓이기도 터무니없이 작은 냄비, 

1인 가구니까 반찬을 담으라며 가져온 통은 전부 락앤락 소스통이었다.

내가 무슨 햄스터도 아니고.

내가 중학생때부터 우리집에 있던 손잡이 부분에 까맣게 물 때가 낀 과도와 식가위도 전부 우리집에 갖다 두었다.

엄마는 새 걸로 장만하고.

그런데도 나는 전혀 몰랐다. 

부엌 살림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한터라 엄마가 갖다준 걸 쓰면서 그저 물건을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엄마의 알뜰함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후 언젠가 친구가 이사를 하던 날,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 엄마가 피곤하다고 그 날 저녁 몸져 누울 정도로 '딸 집엔 예쁜 물건만' 채워줘야 한다며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이런 거 한개쯤은 있어야지!"하며 말은 늘 그럴듯하게 했지만 결국 자기가 안쓰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을 갖다주고는 생색을 내 왔다는 걸.


반면 엄마가 우리집에 올 때면 내가 샤워하는 동안 온 집안을 서랍 속까지 탈탙 다 뒤져서 자기가 가져가고 싶은 물건들을 방 가운데 모아놓고 왜 그걸 가져가야 하는지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곤 했다.

내가 아끼는 물건이어서 거절할 때면 '냉정하다' '못됐다'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하는 비난이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집에 올때마다 탈탈 털어간 물건들은 막상 또 누군가에게 나눠주거나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 집에 갈때마다 내가 입고간 옷이나 신발, 가방, 화장품 중 꼭 몇 개는 엄마가 '가져야' 성에 찼다.

그땐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말도 안되는 일들이었네.


나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상한 사람'인 엄마에게 잘 길들여져서 그 후로도 정말 말도 안되는 온갖 이상한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이 원래 '다' 그렇고 인간관계란 원래 이렇게 숨 막히고 피곤한 것이며 내가 이기적이고 못돼 먹어서 남들에게 베푸는 걸 인색해하는 사람인줄만 알았다. 




모든 사악한 사디스트와 마찬가지로 프리츨은 평생 사랑과 친밀함을 통제와 권력과 폭력으로 혼동했다. 감옥에서조차 프리츨은 어떤 기자를 상대로 24년 동안 지하실에 감금해뒀던 딸과 그녀를 강간해 낳은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정도였다. 그의 상상속에서 이는 모순이 아니다. 그에게 사랑이란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을 철저히 억압하고 완전히 소유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프리츨은 자신의 '작은 가족'과 함께 엘리자베트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며 비디오를 함께 봤으며, 이따금 선물도 가져다주고 심지어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도 세워줬다. 그동안 엘리자베트에게는 꽃다발을 안겨주거나 심지어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사하기도 했다. 마치 상상의 세계에서 소중히 아끼는 사랑하는 아내를 대하는 바로 그대로! 그렇지만 뭔가 비위가 상하거나 짜증이 나면 그는 전기도 끊어버리고 며칠씩 식료품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프리츨은 '지하 가족'에게 '위 가족'의 사진과 비디오를 가져다 보여주며 마치 작은 가족이 놓치는 인생이 사진 관람으로 보상되는 것인 양 굴었다. 발각되었을 당시 언론 기사를 보면 '위'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아래' 가족에게는 '굴욕의 정점'이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나 프리츨은 아마도 거의 틀림없이 이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으리라. 그가 지하실에 구축한 판타지 세계에서 작은 가족에게 위의 인생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그저 간단하게 정상이었을 따름이다. 아무래도 그는 이게 자신이 지하실 가족에게 베푸는 친절이라고 믿었을 게 분명하다.


<신은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 p.235 - 마르크 베네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엄마가 말한 '사랑'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 자신에게 분명 어떤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엄마가 가진 성격장애와 반사회적 성향, 엄마의 '민낯'을 알면 알수록 정신적으로 점점 자유로워지는 한 편 슬픔도 같이 커졌다.

나는 단 한 번도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구나.

심지어 친 엄마로부터도.


자신의 친 딸을 24년동안 지하실에 감금해 놓고 자기 자식이자 손자를 6명이나 낳게 한 요제프 프리츨이 잡히고나서 태연하게 딸을 '사랑했다'라고 말했던 게 늘 의아하고 소름이 돋았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철저한 억압, 완전한 소유'라니 그제서야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지속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무력을 써서라도 차지하는 것.

그래서 '사랑한다'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거라고.

내가 늘 '엄마가 나를 조금만 '덜'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게 엄마가 나에게 준 사랑의 정체였으니까.




아이들은 가장 불행한 상태에서도 스스로를 맞출 수 있다. 그들은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에게서 여전히 사랑을 보고 곰팡이가 핀 집에서 보금자리를 발견한다.

<3096일> p.91 - 나타샤 캄푸쉬 


2008년 12월 요제프 프리츨의 넷째딸(사디스트였던 요제프 프리츨은 자신의 '노예'로 고분고분한 성향의 사람은 재미가 없으니, 가장 반항적이고 길들이기 어려웠던 넷째를 골랐다고 한다) 엘리자베트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어 6명의 자녀와 새로운 신분으로 오스트리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인생의 24년을 갇혀있다가 자유의 몸이 된지 이제 겨우 10년이 조금 넘은 거잖아,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트라우마는 잘 극복했을까, 일상의 행복을, 정서적 건강을, 마음의 안정을,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되찾았을까?

마음속으로 그들이 잘 지내길 기원하며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또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10살 때 납치, 감금되어 18살이 되던 해 탈출한 오스트리아의 소녀, 나타샤 캄푸쉬와 11살에 납치되어 무려 18년동안이나 감금되어 자유를 빼앗긴 미국 소녀 제이시 두가드.

그들이 자유를 잃고 지하감옥에 오랜 기간 감금된 채 유년기, 청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는 것에 나는 엄청난 심리적 동질감을 느꼈다.

마치 내가 엄마로부터 '온전한 나 자신'이 될 기회와 자유를 박탈당하고 아주 오랫동안 엄마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왜곡된 심리도식 속에 갇혀 세상을 전혀 엉뚱한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나 역시도 오랜 기간 지하감옥에 갇혀 지낸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시 두가드가 경찰서에 가서 자신의 납치범이 지어준 이름이 아닌 자신의 원래 이름을 말하는 그 순간, 마치 '악마의 주문이 깨진 것 같았다'라는 기분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타샤 캄푸쉬는 사람들은 가해자가 '괴물'이기를 바라고, 그래서 흑과 백처럼 자신들의 삶과 잔혹한 범죄자의 삶으로 반듯하게 선을 긋길 바라고, 그 괴물에게 당한 무력한 피해자는 평생 망가진채로 있기를 원한다는 말을 했다.

어쨌든 자기는 유년기를 함께한 유일한 사람이 '범인'이었기에, 그와의 인간적인 교류를 했고, 그가 불쌍한 사람, 그러니까 보통 사람이랑 마찬가지로 온정과 사랑,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이었으나 다만 그걸 삐뚤어진 방식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간혹 그와 보낸 시간을 그리워할 때도 있고, 그의 죽음에 대해 슬퍼질 때도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단지 '스톡홀롬 신드롬'이라고 부르면서 자기에게 그럴 감정을 허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유감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또 한 번 피해자로 만든다고.

엄마에 대해 느끼는 나의 양가감정도 정확히 나타샤 캄푸쉬가 설명한 것과 일치한다.


오랜 감금 상황에서도 끝끝내 살아남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강인함'이었다고 한다.

나도 더이상 엄마의 유년기 정서적 학대의 피해자가 아닌 강인하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어 이 보이지 않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지하 감옥에서 끝끝내 빠져 나가 자유로워 져야지,하고 굳게 다짐했다. 




진정으로 사랑받는 아이들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무시당했다 주장하고 억지를 부릴지라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차린다. 이러한 인식은 황금보다도 가치가 있다. 자신이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 다시 말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느낀다면,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며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그것은 부모가 주는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믿음은 어린시절에 획득되어야 한다. 성인이 돼서 그것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역으로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은 어른이 되어 시련을 겪더라도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가야할 길> p32 - M.스캇 펙


아무리 강인하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자,고 결심을 한들 나를 낳아준 부모로부터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도대체 무슨 수로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당성과 탄탄한 자존감을 획득할 수 있지? 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때도 있었다.

내가 하레에게 느끼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퐁퐁 솟아나는 따스한 이 감정들이 '내가 받았어야 마땅했던 사랑'이라는 걸 그저 막연하게나마 역산해서 머릿속으로 헤아려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레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잖아.

나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니어서 엄마가 싫어했었던 걸수도 있잖아.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도 노력해 보기로 했다.

단지 고독과 쓸쓸함을 피하기 위해 내 곁을 이상한 사람들로 채우고 심지어 친부모로부터도 하잘 것 없는 대접을 받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들이 던져주는 한낱 부스러기같은 작은 애정과 관심에도 몸둘바를 몰라 하고 지나치게 감동하던 나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사랑'을 주고 받을 능력이 있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없다.  


    내가 과연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 주어져도 '받는 법'을 모른다.  


먼저 내 주변의 이상한 사람들을 다 끊어내고 정리했다.

범인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그들이 정신없이 만들어내는 문제와 드라마에 휘말려 몰두하므로써 내 실존적인 문제들을 잊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사실은 내 쪽에서 혼자되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너무 강렬해서 그들에게 매달리고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외에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모른다는 것도.

인간은 원래 모두가 혼자라는 사실, 고독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좋은 사람들을 알아보기 위한 눈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언젠가 한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클라이언트와 관심사도 비슷하고 나이도 같아 친구가 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서 난생 처음 매우 익숙한 비웃음과 비난, 에너지 갈취가 아닌 진정 '애정어린 존중과 감사'를 받는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이 얼마나 포근하고 아름다웠던지 실제로 가슴 한 가운데서 따스한 어떤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몸을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주었던 그 느낌을 마치 배스킨 라빈스에서 시식용으로 먹어 본 아이스크림 한 티스푼의 맛처럼 가슴속에 품고 소중하게 간직했다.

앞으론 나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는거야! 하고.


그런 지난한 노력들이 요즘들어 결실을 맺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나는 내 주변을 점점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들로 채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미소짓게 만드는 배려의 말 한 마디, 내 의견에 대한 공감, 칭찬과 존중, 감사, 애정 같은 것들이 낯설고 어색하고 자꾸만 불안해져 그들의 안색을 살피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때도 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자기 안에 홀로 갇혀 있다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던 무렵의 하레를 떠올린다.

내가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칭찬해주고 예뻐해주면 어쩔 줄을 몰라하며 어색해하던 하레.

지금은 사랑받는 걸 즐기고 타인에게도 다정하게 베풀 줄 아는 아이가 된 하레를 보며 나도 '사랑을 받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킨다.


또 한 가지 요즘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보이는 애정어린 태도는 그들이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내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은 내가 부모로부터도 받지 못했던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자, 과연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인걸까? 늘 궁금하던 것이었다.

이런 따스한 사랑은 여전히 나에게 낯설고 솔직히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이 따스한 '진짜 사랑'을 향해 나를 활짝 열어 두려고 한다.




"나와 함께하든 그렇지 않든,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최상의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사랑은 진정한 것이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The Enabler, When helping hurts the ones you love> p.115  - 앤절린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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