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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Oct 08. 2019

방송국으로 출근 안합니다.

방송작가 12년차지만 나는 방송국으로 출근한 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사람들은 방송작가가 되면 전부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과장 조금 보태서 절반 이상은 방송국으로 출근하지 않는다. 


방송작가의 근무지는 대략 세 군데다. 방송국, 외주제작사, 집. 

이것의 구분은 그저 일을 어디서 하느냐로 나뉘는 것이지 일의 중요도나 강도가 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먼저 방송국으로 출퇴근하는 경우는 프로그램 제작팀이 방송국 내 소속해있을 때다. 보통 이런 경우를 '본사제작'이라고 칭하는데 본사에 근무하는 피디와 작가, 촬영팀 등의 인원이 모두 방송국 소속일 때를 말한다. 그런데 말이 '소속'이지 '직원'이 아니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쓰면서 방송작가들도 직원으로 일을 하긴 하지만 여전히 방송작가들은 원천징수 세금을 떼고, 4대보험을 들어주지 않으며, 연월차가 없고, 병가도 없고, 정기 휴가도 없다. (험한 말) 본사라고 해서 일반 직장인들처럼 9 to 6의 고정된 근무시간으로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마다 다르겠지만)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퇴근시간은 정해져있지 않다. 일이 끝나야 퇴근을 하지. 그렇다고 야근수당, 주말근무 수당을 주느냐, 그것도 아니다. (험한말X2)


다음은 외주제작사로 출퇴근하는 경우. 아마 대부분의 방송작가들이 이 근무 형태를 띌 것이다. 외주제작사는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의뢰받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방송국(본사)는 갑이 되고 외주제작사는 을이 되고 제작진은 을에 속한 병,정 들이 되는 것이다. (더 밑일 수도 있다.) 외주제작사는 일반 사무실의 형태와 같다고 보면 되지만 여기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사무실에 내 자리가 하나 있다는 것 정도? 식대, 교통비 지원, 사무용품 제공 등 되는 회사도 있고 아닌 회사도 있다. 진짜 복불복이라서 작가들은 제작사를 옮길 때 마다 '그 제작사 어때?, 소문 어떤 지 아는 사람?'을 수소문 하고 다녀야 된다. 


마지막으로 집은 말 그대로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대부분 메인작가님들이나 출퇴근이 필요하지 않은 프로그램, 장기 프로젝트, 회의나 중요한 일정만 참여하면 되는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장점은 집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거지만 단점은 집이라서 일하기 싫다는 것과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페이가 적다. 일은 똑같이 하지만 출퇴근을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배려를 해준다는 명목으로 페이를 깎는 경우가 있다. (험한말 X3) 


그래서 사람들이 방송작가에게 '무슨 프로그램해요?'라고 말하면 방송사의 이름을 대지만 꼭 그 방송국으로 출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방송국이 아니라 외주제작사로 출근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뭔가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반응이나 아쉬움, 실망한 눈치를 드러내곤 하는데 그럼 참 당황스럽다. 방송국은 물론 거대한 대기업이고 그럴듯한 이름이 있지만 그곳도 그냥 '회사'다. 여러분들이 '삼성'에 다니던, 'LG'를 다니던, '중소기업'을 다니던, '가족기업'을 다니던  다 '회사'인거랑 똑같은거다. 


그러니 부디 방송작가들이 '방송국으로 출근 안하는데요'라는 말에 표정관리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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