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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Aug 20. 2019

빛 좋은 개살구, 열정 페이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고 첫 월급날이 왔다.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서 회사에서 받는 첫 월급이다 보니 나름 기대가 컸다. 월급이 들어왔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확인한 통장에는 78만 원가량이 찍혀있었다. 그렇다 취재작가 시절 나의 첫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80만 원에서도 원천징수 세금으로 3.3%를 떼고 들어온 것이다. 솔직히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는 한 달에 200만 원도 거뜬히 벌었던 나였기에 당황했다. 용기 내어 선배 작가에게 이 월급이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때도 다 그랬어’라는 첨언과 함께.    

 

물론 이건 2008년 내가 처음 방송작가를 시작했을 때의 월급이다. 당시 취재작가들은 대부분 80만 원의 월급을 받고 그나마 사정이 좋은 제작사에서는 100만 원가량의 돈을 줬다. 그것은 관행이었고 아무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업계에서 책정한 금액이니 그대로 받아들였다. 첫 월급을 부모님께 드렸을 때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실망하신 눈치였다. 몇 년이 흘러 무심코 ‘대학 잘 나와서 그 돈 받는 건 너무했지’라는 말이 나왔을 때 부모님이 실망하셨구나 확신했다.      


친구들은 방송작가를 한다는 나에게 '방송작가들은 돈 많이 번다던데 너도 많이 받아?'라는 질문을 순수하게 던졌고 나는 '김수현 작가님 정도 돼야 많이 벌더라'며 웃어넘겼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 할수록 괴리감이 느껴져 힘들었다. 친구들은 정시 출퇴근에 휴가, 월차, 연차, 병가, 주말 휴식 등이 평범한 일상이었고 난 그런 걸 하나도 누릴 수 없었다. 나는 매일 8시 출근에 퇴근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일이 많으면 야근을 했고 지하철 막차를 타는 일이 한 달에 20일 이상이었다. 하루에 집에 있는 시간은 정말 잠을 잘 때뿐이었다. 말 그대로 개같이 일하면서 쥐똥만큼 받고 일했다. 


흔히 말하는 ‘열정 페이’ 나는 그 열정 하나만을 믿고 취재 작가 시절을 견뎠다. 내가 덜 먹고 덜 쓰고 참으면 될 일이었으니까. 지금 고생해도 나중에 다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방송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으로 경제적인 부족함은 메울 수 있는 때였다. 그러나 열정이라는 게 양은 냄비 같아서 확 불타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리곤 했다. 스스로도 ‘이 돈 받으려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나’ 싶었고, ‘친구들은 정시 출퇴근하면서도 돈 많이 버는데’라면서 자책하고 힘들어했다. 1년 뒤에는 120만 원으로 월급이 올랐지만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데는 한없이 부족했다.      


*2019년 현재 취재 작가는 최저임금의 상승으로 최소 160~180만 원으로 책정되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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