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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진 Mar 23. 2020

일자리 구하기 어렵죠

방송작가들은 각 방송사와 연계된 구성작가 아카데미나 구성다큐 연구회 (http://docuwriter.co.kr) 사이트, 또는 방송작가들의 단체 카톡 구인구직방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아카데미나 연구회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막내작가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방송작가들의 단톡방에 하나 둘 초대받아 들어가게 된다. 방송작가들의 단체 카톡을 구인구직방도 있고 연락처 수배방도 있고 잡담방도 있고 종류도 인원도 꽤 많은 편이다. 대부분 현업에 종사하는 작가들의 단톡방이기 때문에 더 자주 구인구직글이 올라오는 편이다. 


대체로 구인글들을 살펴보면 프로그램 명, 제작사, 방송사, 투입 시기, 필요 연차, 페이, 그 외 조건 등이 쓰여있고 함께 적힌 이메일 주소로 이력서를 보내면 된다. 때로는 프로그램마다 모니터링 자료를 같이 보내라고 하거나 자신이 썼던 촬영 구성안이나 원고를 보내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게 이력서의 프로그램 명 한 줄보다 더 확실한 서류가 될 테니까. 


막내작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이력서에 적을 이력이 없는데 뭘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데, 그럴 때는 당연히 자기소개서를 써 보내면 된다. 자기소개서는 취업 준비생들이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방송작가를 하고 싶다면 조금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도 좋다. 자기 스스로를 한 줄의 카피로, 또는 하나의 프로그램에 빗대어 써서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면 당연히 눈에 띈다. 일반적인 성장배경이나 왜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 이런 건 솔직히 너무 진부해서 많이 지원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기 어렵다. 


이렇게 이력서를 보내고 마감 기한이 지나면 서류에 통과된 사람들에게만 연락이 가고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은 보통 해당 프로그램의 메인작가와 일대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경우에 따라 프로그램 팀장, 제작사 대표, 같은 프로그램의 서브작가 등 일대다 면접을 보기도 한다. 


면접에서는 보통 왜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는지를 물어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은 필수이며 자신이었으면 어떤 구성을 했겠다. 어떤 식의 아이디어를 더했으면 좋겠다 등의 개선점도 추가로 생각해가는 것이 좋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고 있는지는 필수로 봐야 한다. 의외로 프로그램 모니터를 안 하고 오는 사람도 많고 최근에 방송된 한 두 편만 보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프로그램 모니터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저런 구성을 하려면 뭘 섭외해야 하고, 어떤 자료가 필요하고, 어떤 내용을 써야 하고 등등을 생각하면 자신이 프로그램에서 작가로서 할 역할들이 대충 잡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만약 함께 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일하게 될지를 얘기한다. 재택인지, 출근인지, 제작 일정은 어떻고 작가로서 해야 할 업무들을 알려주고, 가장 중요한 페이 얘기를 한다. 보통 구인구직글에는 페이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면접 시 협의라고 된 것도 많다. 그러면 면접 때 얘기를 하는데 대부분은 연차에 맞춰주려고 하지만 제작사의 사정상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본래 연차 페이보다 낮은 페이를 부를 것이다. 그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으면 괜찮다 하면 되고, 아니면 그래도 최소 이 정도는 맞춰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야 한다. 돈 얘기를 부끄러워하는 작가들이 가끔 있는데 부끄러움은 잠시다. 내 생계가 달려있는데 돈 얘기는 최대한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편당 페이인지, 주당 페이인지, 월급인지,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날짜가 주말인지, 월초인지, 월말 인지도 꼼꼼히 물어보는 게 덜 찝찝하다. 나중에 확인해보고 말해줄게 라고 한다면 나중에 내가 다시 물어보지 않는 한 먼저 얘기를 해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니 돈 얘기는 면접 때 미리 꼼꼼하게 체크할 것. 


이렇게 면접이 프로그램 관련 얘기만 하고 딱 끝나면 참 깔끔하고 좋을 텐데 보통 이러면 15분 내외로 면접이 끝난다. 그렇다 보니 괜히 너무 짧게 얘기한 건 아닌가 싶어서 이런저런 사담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어봐야 한다. 그것이 그 제작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될 수 있다. 보통 사담 중 가장 간단히 할 수 있는 건, 가족 관계, 가족들이 무슨 일 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술은 마시는지, 담배는 피우는지, 애인은 있는지 등등 아주 사생활 적인 사담까지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사생활 영역을 넘어오는 질문을 한다면 그건 평소에도 대체로 그런 얘기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함정은 참 다양하다. 결혼을 안 했다 하면 결혼 때가 되면 프로그램 금방 그만두겠네라고 생각할 것 같고, 결혼했다고 하면 아이는 있냐고 묻는다. 아이가 있다고 하면 육아랑 일 병행하기 힘들겠네 라고 생각할 것 같고, 아이가 없다고 하면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고. 진짜 쓸데없는 TMI대잔치가 열린다. 심지어 난 면접 자리에서 애인 직업이 뭐냐, 2세 계획은 어떻게 되냐, 부모님 학력을 어떻게 되냐 등등 진짜 예의 없는 질문들도 많이 들어봤다. 그걸 가볍게 흘려듣느냐, 진지하게 고민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이렇게 면접이 끝나고 연락이 따로 온다면 합격일 것이고, 연락이 안 오면 불합격인 것인데 하염없이 그 전화를 기다리는 심정은 채용 결과를 기다리는 취준생과 똑같다. 최종 발표날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그저 상의해보고 연락 줄게요 라는 말이 전부니까. 그래서 요즘에는 면접 후에 같이 못하게 돼도 연락 줄까요 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나는 떨어지게 되면 최대한 빨리 연락 달라고 한다. 그래야 다른 곳도 알아보니까. 


내가 잊지 못하는 면접 중 하나는 JTBC의 쇼양 프로그램 면접이었는데, 서류 전형에 통과가 돼서 해당 면접 날짜에 JTBC 1층 로비로 갔는데 유독 로비에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무슨 행사가 있나 싶었는데 잠시 후 어떤 작가님이 로비에서 큰 소리로 '000 프로그램 면접 오신 작가님들 *층으로 올라가실게요'라고 하는 거다. 그 로비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프로그램 면접을 보러 온 작가들이었던 거다. 눈대중으로만 봐도 20명은 족히 넘었고 뽑는 작가는 단 1명이었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은 동시간에 같이 부른 것도 황당한데 더 황당한 건 면접 방식이었다. 


회의실에서 진행된 면접은 프로그램의 메인작가부터 막내작가까지 다 앉아있었고 그 맞은편 의자에 8명씩 들어가서 면접을 진행했다. 그 자리는 마치 '너희 중에 가장 잘난 사람 뽑을 테니까 어디 한 번 자기 자랑 좀 해봐'라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모인 작가들의 연차와 나이는 대부분 높아 보였고 다들 경력도 꽤 쌓은 8년 차 이상의 작가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면접이 진행되면서 분위기 상 누가 되겠구나가 당연히 느껴졌다. 관심 있는 작가에게 더 많은 질문이 가고 호응이 컸으며 그 부분에 불만이 있던 한 작가님은 '어차피 대충 정해진 것 같으니 저한테는 더 질문 안 하셔도 돼요'라고 말했었다. 정말 내 인생 최악의 면접이었다. 물론 나도 떨어졌지만 그런 프로그램에는 안 가는 게 나았던 것 같다. 


요즘처럼 불황일 때는 면접의 기회 자체도 많지 않다고 들었다. 매년 불황이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이번 해에는 안 좋은 일들이 겹쳐 체감상 더 긴 취업난이 될 것 같다. 부디 일하는 작가님들은 건승하시고 일자리를 찾는 작가님들도 좋은 자리가 나타나기를. 그리고 내 반백수 생활도 지치지 않고 잘 견딜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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