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내 삶의 무게를 가끔은 외면할 필요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힘들다고 여겨지는 데엔 일단 800km에 달하는 길을 온전히 내 두 다리로 걷기 때문이지만, 한 달이 넘는 동안 사용할 짐을 챙긴 배낭을 메고 그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캐리어에서 배낭으로 여행가방을 바꾸기만 해도 도시 이동을 하거나 숙소를 바꿀 때 참 힘든데,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 평균 7시간씩 걷는다? 선뜻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다.
아주 오래전, 종교적 의미로 하염없이 길을 걸었던 최초의 순례자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시절 지도나 이정표가 제대로 되어있었을 리도 없다. 그러면 그 짐을 지고 길을 헤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대표 어플인 ‘부엔 까미노’도 구글 맵을 기준으로 현재 위치와 앞으로 갈 길을 안내하고, 앞으로 얼마나 걸어야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갈 수 있을지 알 수 있고, 부킹닷컴을 통해 미리 오늘 잘 숙소를 예약해 심신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시대다. 길을 찾기 수월해지고 먹고 자는 일을 덜 걱정해도 되는 순례길에 배낭 무게 고민을 덜어주는 서비스가 없을 리 없다.
이름하야 동키 서비스! 옛날 옛적 당나귀가 짐을 나르던 걸 본떠 이렇게 이름을 지었나 보다. 동키 서비스는 내가 출발하는 숙소에서 다음에 머물 숙소까지 배낭이나 캐리어 등 짐을 옮겨주는 운송 서비스로, 대략 회당 6~8유로 정도의 가격이 책정된다. 이 감사한 서비스는 특히 마의 구간이라 여겨지는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인기다. 순례자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에선 아예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피레네 산맥을 넘는 생장(Saint-jean pied de port)부터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는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추천한다.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이용하지!
요즘 나는 순례길을 걷는 하루하루를 인스타 스토리로 업로드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약 10년 전 내가 걷는 프랑스길을 걸었던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20대 초반에 순례길을 걸었다던 친구는 그렇게 젊고 패기 가득한 때에도 너무 힘들었다며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동키 서비스를 잘 활용하라고 했다. 본인이 걸을 땐 어려서 체력은 있되 돈이 없어 돈을 아껴야 하기도 했지만, 그때만 해도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렇게 눈치가 보였단다.
보르다 알베르게에서 론세스바예스를 향해 가는 날. 아침에 대강 훑어보니 동키를 이용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4명. 나머지 10명 정도는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기로 한 듯했다. 그중 3명은 어린이였으므로 그들은 차치하고, 대략 7명 정도의 성인이 배낭의
무게를 견디기로 한 것. 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최소 60대 후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질 땐 대단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특히 내가 피레네 산맥을 넘은 날은 안개가 무척 많이 끼고 포슬포슬한 비가 종일 내렸다. 날씨가 맑아도 배낭을 지고 그 구간을 넘기가 힘든데 궂은 날씨에도 배낭을 손수 이고 간다니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려줄 수밖에. 그러나 나는 진작 그럴 생각을 접었다. 괜한 오기를 부렸다가는 둘째 날부터 골병들어 앞으로의 한 달이 순탄치 못할 수 있다.
온몸을 덮는 판초 우의를 뒤집어쓰고 걷고 또 걸었다. 비 내리는 방향이 내가 걷는 방향과 역방향이라 얼굴이 자꾸 젖었다. 생장에서 보르다로 올 때만 해도 중간중간 배낭을 내려놓고 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날씨가 궂다 보니 모두 휴식 없이 걷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알았는데 보르다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길엔 화장실도, 음식점도 없었다. 그나마 푸드 트럭이 하나 있었고(이것도 겨울 혹은 날씨가 너무 안 좋으면 안 열 수 있다고 한다), 쉼터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냥 뭐랄까, 한 70년 전 아궁이가 있던 부엌간 같달까. 물론 모든 물건을 다 치운 채 방치된. 여하튼 화장실이 없다 보니 이 두 곳 근처의 언덕에서 바지춤을 붙잡은 채 내려오는 아저씨들을 봤는데, 아마도… 음, 예상 가능하다.
순례길에 앞서 유럽여행을 할 때도 하루 15,000보씩 걸으며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순례길에선 기본이 30,000보. 에너지 사용량에 비해 영양적으로 균형적인 식사를 못하고 있다고 느꼈기에 이곳에서 삶은 달걀을 사 먹었다. 그리고 핫초코도 한 잔. 한국에선 잘 안 먹는 음룐데 이곳에선 카페 콘 레체(카페라테보다는 플랫화이트에 가깝다)와 함께 가장 즐겨 먹고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땐 보르다 알베르게에서 나보다 먼저 출발한 미국인 할저씨들과 벨기에 여성이 무언가를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할저씨들은 생장에서부터 걸어오며 마주칠 때마다 안부를 물어줬고, 오리손 산장에선 먼저 일어서는 내게 달려와 이름을 묻고 다정하게 대해준 어른이다. 늘 나만 응원을 받은 것 같아 이번엔 내가 안부를 묻고 그의 커다랗고 단단한 배낭을 보며 대단하다고 추켜세웠다. 한눈에 봐도 배낭이 터질 듯 뭔가를 잔뜩 집어넣은 듯해 몇 kg이나 되느냐 물으니 20kg은 족히 될 거라고 해서 나도 모르게 “와아아아-!!” 하고 탄성을 내지르니 그가 뽀빠이 팔뚝 모양을 하며 자긴 아직 튼튼하다고 말한다.
“내 배낭은 얼마나 될 거 같아?”
그런데, 별안간 그 대화를 치고 들어오는 벨기에 여성. 미국 할저씨는 다른 사람의 배낭을 건드리기가 뭐 했는지 그저 양손을 들어 올리며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대신 내가 들어봐도 되냐고 묻고 한 손으로 살짝 드니 무슨 바윗돌이라도 넣어왔나 싶다. 배낭 크기는 내 것보다 훨씬 작은데 무게는 더 나갈 게 분명하다. 나는 할저씨들에게 했던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인 후 예의상 괜찮으냐 묻는다. 그러자 말문이 터진 여성.
“내 가방 안에 옷은 한 벌 밖에 없어, 지금 입은 것과 가방에 든 것 총 두 벌이지. 여기저기에 옷을 흘리기도 했는데, 아마 생장이나 보르다에 내 브래지어가 있을걸.”
“그런데 왜 이리 무거워? 옷 3벌을 넣은 내 가방보다 무거울 것 같은데?“
”물을 1리터 넣었고 그리고 뭐 블라블라… 그런데 넌 왜 배낭을 안 멨어?”
“난 동키 보냈어. 피레네 산맥 넘은 후부터 배낭을 메고 다닐 것 같아”
“그건 완전한 잘못이지!”
…엥???!!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그는 ‘completely your fault’라고 했다. 내가 다른 말을 놓쳤다고 해도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말 뒤에 ‘네 잘못‘을 운운한다. 순간적으로 내 표정이 아주 안 좋았는지 그 여성은 내 어깨를 툭 치며 ‘kidding! kidding!’이라고 한다. 난 웃지 않았다.
사실 나는 피레네 산맥을 넘은 다음날, 즉 3일 차에도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다. 수비리(Zubiri)로 향하는 그날은 처음으로 20km를 넘게 걷는 날이었고, 순례자 사무소에서 마지막 3km 구간은 뾰족한 돌이 가득한 내리막이라 위험하다는 언질을 했기 때문이다. 막상 걸어오면서 이 구간은 배낭을 지고 왔어도 괜찮았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예단할 순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날 배낭을 메지 않았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보르다에서 만난 알제리 할머니는 만났을 때부터 팔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도 피레네를 넘을 때엔 동키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하는 아침엔 배낭을 둘러메고 있었다. 팔이 그래서 가방을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고민해 봤는데 그냥 배낭을 메는 대신 다른 사람들처럼 20km가 아니라 7km 정도를 걸으면 나오는 첫 번째 마을에서 쉴 거라고 했다.
순례자 수만큼의 까미노길이 있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순례자 사무소에서는 32일 혹은 33일이면 산티아고에 도달하는 ‘가장 보통의 루트’를 알려주었고, 그대로 걸으면 더 많은 순례자와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보통의 루트를 벗어나 아주 작은 마을에서 쉬어가기도, 남들보다 2시간씩 늦게 출발해 온전히 고독하게 걷기도 했다. 지금도 길을 걸을 만큼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것 같아 에스테야(Estella)라는 마을에서 사흘을 머물기로 했다. 앞으로 남은 길이 더 많기에 초반의 컨디션 난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해낼 수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보통의 루트’대로 걷는 것도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걸 벗어난대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순례자 누구에게나 각자의 까미노는 특별할 것이다.
그러니 배낭을 메든 그렇지 않든, 혹여 시간이나 체력이 허락하지 않거나 여타 이유로 점프(걷지 않고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를 한대도 그걸 까미노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건 그 방법을 선택한 순례자 본인에게 달린 일이지 다른 사람이 나설 일은 아니다. 순례자들 사이에선 걷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엔 포기할 용기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욕심을, 고집을, 미련을, 그 외 날 짓누르는 무언가를 비우러 오지 않았던가. 인생의 무게로 비유되곤 하는 배낭을 짊어지고 끝까지 걸어가는 단단함과 책임감도 좋지만, 그럴 힘이 없을 때 우릴 돕는 손(=동키 서비스와 같은!)이 있고 그걸 잡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까미노가 있듯 각자의 인생이 있고, 그건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우린 그걸 깨우치러 이곳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