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속셈 대신 웃음 하나

-정형외과 병동에서

by 푸른향기

병원에서도 얼마씩 쥐여줘야 잘해준다는 말을 듣고

만 원짜리 다섯 장를 준비했네

간병인들이 교대로 바뀌니 만원씩 줄까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전해주나, 마주 보며 손에 쥐여줄까

그때 눈을 마주칠까 말까

다른 환자가 다 듣고 있을 텐데

나만 잘 봐달라는 마음

한 구석이 께름칙 께름칙 식판을 내어주면서

밥그릇 위에 가만히 얹어 놓았네

간병인은 난처한 듯 당황한 듯 밀쳐내고

난 다시 한 장을 간병인 주머니에 넣어 주었네

허이고 으메 으짜까, 어유 왜 이런댜

티브이를 보면서 끝없이 혼잣말을 하는 할매

딱따구리가 나무 등걸을 파는 것처럼

따그르 따그르 코를 골다가 꼭 오토바이 시동처럼

드르렁 대다가 자기 소리에 놀라 큰 숨 쉬고

쿵 돌아눕곤 하는 할매

언제 퇴원하나 기다리고 있는데 가만 보니 그 할매

오가는 간호사며 간병인에게 선상님 슨상님 하며 말도 잘 건다

어이 슨상님, 이거 좀 뎁혀다 줘

간호사 선상님, 나 화장실에 좀 가게

내가 만 원짜리 만지작거리며 의뭉하게 머리 굴리고 있을 때

호출벨을 눌러도 빨리 오지 않는다고

궁시렁 궁시렁 불평을 늘어놓다가도

간호사가 다가오면 환하게 웃으며

고맙소잉, 고맙소이를 빠지지 않고 잘도 건넨다



병실도 하나의 세계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도 있고 친밀한 사교도 있고 은근한 왕따도 있다. 내가 있었던 병실은 정형외과 병동의 4인실이었다. 정형외과라 대부분 노인들이 많았다. 처음 입원했을 때는 물론 20대 어린 대학생도 있었지만. 그 대학생은 요즘 유행하는 전동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리 골절을 당했다 했다. 틈틈이 노트북 켜놓고 화상으로 수업 듣던 대학생이 퇴원하자 80대 노인이 들어오고 난 당장에 유일한 젊은이가 되었다. 할매들은 "어떻게 오셨소?" 하며 한번 인사를 트더니 삽시간에 친해져서는 반찬도 나눠먹고 "잘 잤소오?" 하며 아침 인사도 건네곤 했다.


나는 저절로 왕따가 되어서 '에어컨 온도가 너무 높다', 'TV 소리가 너무 크다', '새벽에 잠을 잘 수가 없다'하며 불평하고 있다가 할머니들이 안보는 틈에 몰래 에어컨 온도를 낮추거나, TV를 크게 틀어놓고 잠자는 할매 옆에 다가가 TV를 끄곤 했다. 나를 더 왕따로 만든 건 다름 아닌 그 촌지(내가 간병인들에게 건네려던 돈)때문이었다.


물론 촌지 사건을 다른 할매들이 모르고 있는 듯했지만 내 스스로 왕따를 만든 사건이라고 자칭하는 것이다. 그럴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는 3명의 할매들 사이에서 나한테만 잘해주라고 돈을 건네려 했으니, 그 이기적이고 엉큼한 행동이 미운 왕따 같은 행동이 아니고 무엇일까.


간호사들은 늙은 할머니들을 엄마라고 부르며 주사도 놓고 혈압도 재고 막 뭐라 하기도 한다. "엄마, 그러니까 막 움직이지 말랬잖아, 그러니까 피가 막 나오잖아" 하면 할매들은 "아 , 알았어,알았어"하고 민망해하고, 또 아프다고 엄살을 피우면 간호사들은 "알았어 알았어 안 할게" 하며 할매들을 다독인다.

누구를 딱히 더 잘 봐주고 누구를 더 밉게 봐서 소홀히 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환자와 돌보는 사람 사이의 관계로 친근해지고 익숙해지면서 시간이 가는 곳이었다.


내가 건네려던 돈에 당황한 듯 얼굴이 빨개지던 간병인이 떠오른다. 새삼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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