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피고 진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봄날.
문득 ‘아버지’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계셨다.
세상엔 온통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없는 세상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들이고 딸이고 다들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큼 고생한 사람 없다며 ‘엄마’를 유난히 챙기는 모습을
요즘 들어 드라마나 영화, 혹은 주변에서 많이 봤을 것이다.
그때마다 아버지들은 무얼 하고 계셨을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느라 묵묵히 가정의 울타리와 담장이 되었고,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 덥든 춥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을 했다.
윗사람과 주변 사람 눈치를 보며 때로는 아랫사람에게 치여가며 집에서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좋은 것들 죄다 양보하며 살지는 않으셨나요?
내 자식이 잘 먹고 예쁘게 잘 자라주는 것, 아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본인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일만 하며 살지는 않으셨나요?
그때 그 시절엔 월급날만 되면 돈봉투라도 내밀며 아내 앞에서 폼이라도 잡으며 위세를 떨기도 했지만 이젠 이마저도 통장으로 깔끔하게 이체되어버리니 열심히 일만 하던 아버지들의 돈 구경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세월의 흔적과 시대의 변화 속에 이제는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분리수거하는 날이면 알아서 처리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 한 모금과 이웃과의 인사가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아버지로서 나눈 짧은 대화들 속에서 삶의 위로를 조금이나마 받았을까. 가끔은 아내에게 구박을 받기도 했겠지만..
50대 이후가 되어 마주한 아버지라는 이름은 여전히 앞만 바라보는 것도 벅찼다.
모든 사람이 다 그랬으리라. 50대가 넘어서도 지난 인생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눈앞의 현실을 헤쳐 나가야만 했고, 아파트 대출이며 학비며 용돈까지 챙겨야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바쁘게 살았건만 여전히 부족하다 싶은 아버지의 삶과 역할을 되돌아보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현실 속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이 주는 사회적 지위는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현시대의 많은 가족 구성원들은 더 이상 아버지의 맹목적 희생을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살아가는 방법조차 아주 많이 달라졌다.
자신의 가치 실현보다는 사회적 가치 실현과 가족의 행복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아버지들.
노후보장마저 불안정해진 시점에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이 사회가 조금은 씁쓸하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은 분명 그 이름 아래 열심히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결코 후회하지 말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