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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Apr 26. 2022

여름방학

메모를 한 뒤 소파에 잠깐 누워있으려던 것이 그대로 잠에든 모양이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엄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진우야 왜 그렇게 불편하고 자고 있어"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고개를 들자 엄마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엄마를 끌어안았다. 

잠시 동안 우리 사이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엄마,,"

지그시 나를 내려다본다.

"나 혼자 남겨두고 사라지지 않을 거지?"

끌어안은 손길에 힘을 더하며 미소를 띤다. "당연하지. 우리 아들을 두고 어딜 가겠어, 너도 참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안도감이 마음 깊숙이 파고들수록 자리 잡고 있던 슬픔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린다. 

엄마는 놀람과 동시에 소매를 잡아당겨 눈물을 닦아낸다. 

"안 좋은 꿈을 꾼 게 맞나 보구나, 꿈속에서 엄마가 진우를 혼자 두고 떠난 거야? 혹시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현실에선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말했잖아 엄마는 진우가 멋지게 자라서 결혼도 하고 잘 지내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볼 거라고."


늦은 밤, 불이 꺼진 방안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잠에 들려던 찰나였다. 머리를 쓰다듬고 마치 할아버지가 밤마다 그랬듯, 혼잣말을 하며 마지막에는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 뒤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가자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오던 빛은 사라지고 방안은 다시 어둠으로 가득 찬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도 그렇다고 설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알 수 없는 감정이다. 

나 역시도 누군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이던 친구 중 한 명은 사고를 당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아니었음에도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살다 보면 병을 얻어 죽게 되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며, 여러 예상치 못한 일들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은 여느 다른 이들과의 죽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겨낼 수 없는 큰 고통이자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힘듦이었다. 

아직도 응급실에서 죽어가던 엄마를 마주하던 순간이, 장례식장 , 화장터. 그 이후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가슴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있으면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 마음속에 깊숙이 새겨진 기분이 든다. 


'

일상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럴수록 내게 일어났던 일들은 정말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승현이는 4학년이 되었고 같은 반이 되진 못했지만 여전히 등하교를 함께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진우야 이번 여름방학은 쓰러지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 해."

우리는 동시에 웃고 말았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당연히 그럴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이번 방학에는 꼭 캠핑을 가자고 했어. 

엄마의 휴가를 맞춰서 말이지."

승현이는 부럽다는 듯 자신은 언제나 그랬듯 시골로 내려간다며 말한다. 

'시골, 일 년이 지나버렸다. 모두들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수현이는,, 그리고 구백이는. 머릿속에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흐릿해져 가는 기억 탓에 이젠 떠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할아버지도 보고 싶다.'

교실로 들어가자 친구들 모두 신이 나 보였다.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방학식은 각반에서 진행되었다. 방학 동안 주의해야 할 사항과 숙제에 대한 전달사항을 안내받은 뒤 기대하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아간다. 

"승현아,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가자. 너무 덥다."

좋다며 나를 따라 편의점으로 들어온다. 

막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구매해 편의점 한편 휴식공간에서 먹기로 했다. 

"더우니까. 다 먹고 나가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진우야 나는 너무 좋다. 작년 여름방학 때 네가 쓰러지는 바람에 방학을 즐겁게 보내면서도 마음 한편엔 무거움이 자리 잡아있었거든,, 너를 두고 내가 즐겁게 놀면 미안해지는 거야, "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런 생각을 했었어. 몰랐네, "

승현이는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속으로 내가 깨어나길 매일 기도 했다고.  

이틀 뒤 승현이는 예정대로 시골로 내려갔다. 

"진우야 방학 잘 보내고 다시 만나자."

캠핑 가기로 약속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을 먹고 공원 산책을 나갔다.

이렇게 혼자 다닐 때면 승현이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곤 했다. 

공원에 올 때마다 지정석처럼 정해둔 의자에 앉아 먼 곳을 바라봤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자 푸르른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햇살을 비춰낸다. 눈을 감자 숲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처음 숲을 갔을 때부터 왠지 평범한 곳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의 곁으로 돌아왔듯이, 할아버지의 병도 아무렇지 않게 완쾌되었다면 좋겠다. 아니, 꼭 그렇게 돼야만 한다. 

다리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어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만다. 

시선 아래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와 꼬리를 흔들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혀를 내밀고 방긋 웃는다. 그 모습에 따라 웃게 된다. 

잠시 후 주인이 나타나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강아지를 좋아하는데 만져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물론이라며 웃는다. 

손을 내밀어 쓰다듬자 꼬리를 더욱 격하게 움직인다.  

"네 이름이 뭐야?" 

대답은 주인이 대신한다. 

"강아지 이름은 '젤리'에요." 

"젤리야 안녕"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신이 나는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왜 이름이 젤리에요?" 

"제가 젤리를 좋아하거든요. 이유가 단순하죠?"

몇 분간 지속된 대화는 이내 끝이 났다. 

멀어져 가던 강아지와 주인의 뒷모습에선 행복함이 가득 묻어나는 것 같았다. 

'우리 구백이는,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의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구백이의 존재도 그렇게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선풍기를 틀었다.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린다. 금세 땀이 마르자 기분이 좋아진다. 

퇴근 후 엄마는 치킨을 사 왔다. 나를 부르며 한 손에 들린 봉지를 흔들어 보인다.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킨치!"

거꾸로 말하는 엄마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제 유행 지나서 거꾸로 말하지 않아, 치킨이지."

그렇냐며 웃는 엄마와 그 모습에 덩달아 다시 웃고 만다.

"내일이면 캠핑을 갈 건데 어떤 추억을 만들고 오고 싶어?"

잠시 동안 생각을 하다 "그냥, 엄마와 함께 있는 모든 게 나에겐 추억이니까. 가는 것만으로도 좋아."

볼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들, 그런데 말이지. 조금은 특별한 캠핑을 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음,, 예를 들면 진우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 같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엄마와 함께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껴졌다. "응 당연하지! 엄마 식기 전에 어서 치킨을 먹자."

소란스러움에 눈을 뜨고 말았다.

벽면에 붙어 있는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5시 33분을 지나가고 있다.

슬며시 방문을 열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눈을 비비며 나갔다. 

"엄마 뭘 그렇게 바쁘게 준비하고 있어?"

화들짝 놀라 눈이 마주친다. 

"진우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여전히 반쯤 눈이 감긴 채로 소파를 가리킨다.

엄마는 나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멋쩍은 웃음을 드러낸다. 

소파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담긴 봉투가 가득이다. 그 옆으로는 옷가지며 캠핑에 필요한 용품들이 섞여 있다. 

"미안,, 조심히 준비한다는 게 진우를 깨웠나 보구나, 아직 출발하려면 시간 더 남았으니까. 어서 들어가 더 자." 

기지개를 켰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쓱 넘기고 "나도 도울게. 같이하고 싶어"

괜찮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자 엄마는 "그럼 같이 준비해볼까?"

가장 먼저 내 옷들을 정리해 가방에 담았다.

빠뜨린 것은 없는지 내게 확인을 해달라고 하는 사이, 엄마는 유부초밥을 만들어 왔다. 

"진우가 가장 좋아하는 유부초밥."

접시 위에 올려져 있는 유부초밥을 들어 입안에 집어넣었다. 

엄마의 유부초밥은 언제 먹어도 정말 맛있다.  

"엄마, 정말 맛있어."

일 년 전의 사건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열 살이라는 나이에 깨닫게 했다는 것이다.

병원을 막 퇴원했을 무렵,

승현이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승현아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야. 엄마가 갑자기 네 곁을 떠나게 되면 어떨 것 같아?"

말을 듣고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럴 일은 없어. 내가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오래오래 내 모습을 지켜볼 거라고 그랬거든.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걸. 그리고 엄마는 무척이나 건강해. 힘도 세고 진우 너도 봤잖아. 장을 보고 무거운 봉지를 양손 가득 척척 들고 오는 모습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네 말이 맞아. 오래오래, "


생각보다 꽤나 많은 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엄마에게는 무슨 짐이 이렇게 많냐고 묻자 "그냥,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라는 싱거운 답을 듣게 된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 너머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캠핑장은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고 들었다. 

"진우야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새벽부터 일어나느라 피곤할 텐데, 한숨 자."

괜찮다는 손짓을 더하며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잖아. 나보다 더 힘든 건 운전하는 엄마일 텐데, 내가 피곤하다고 잠들어버리면 안 되지." 

그렇냐며 웃는 엄마에게 "항상 고맙고 사랑해 엄마"

엄마는 자신이 더 고맙다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엄마도 우리 아들 많이 사랑해."

익숙한 곳들을 벗어나 차량은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따뜻한 햇살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는 것이 느껴진다. 

버텨보려고 했지만 밀려드는 피곤함을 이길 수가 없다. 


구백이가 내게 달려왔다. 

꼬리는 흔들고 있지만 표정은 왜 이제야 나타난 것이냐며 서운함이 가득해 보인다. 

"구백아, 미안해.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많이 놀랐지?"

거리를 유지하던 것도 잠시, 품 안에 안겨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화 풀린 거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났다.

"구백아 이리 와.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거야"

고개를 들자 수현이의 모습이 보였다.

"수현아. 나 진우야 어떻게 된 거야?"

그러나 수현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 누구냐며 내게 묻는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저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니, 나 진우라니까. 우리 작년 여름방학을 같이 보냈잖아. 숲에도 함께 가고 기억 안 나?"

수차례 이야기를 반복할수록 오히려 수현이는 나를 더욱더 경계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숲에 대해 언급하니 그럴 수밖에.

포기하려던 찰나 수현이 곁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왔다.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

아는 척을 하자 미소를 짓는다. 

역시 할아버지는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수현아 이 친구는 처음 보는 친구인데 네 친구니?"

"아니요. 저도 처음 보는 애인데,, 제 이름을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내게 묻는다.

"우리 수현이를 어떻게 알고 있니?"

머뭇거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아,, 죄송해요. 제 친구 중에 수현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는데 헷갈린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다며 괜찮다는 말을 하고서 수현이와 할아버지 구백이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나아갔다. 

뒤돌아 멀어져 가는 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수현이만큼은 나를 기억해주고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은 사라지고 말았다. 


"진우야 이제 그만 일어나 도착했어"

엄마의 목소리에 눈을 뜨자 '꿈이었구나. 꿈,,'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네가 진우구나. 반갑다 난 네 할아버지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달려가 안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아픈 건 괜찮아요? 이제 아무렇지 않아요?"

할아버지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내게 다가와 "진우야, 할아버지가 아프다니? 할아버지는 아주 건강해"

그리고 잠시 말을 머뭇거리더니 "이제야 소개해줘서 미안해, 네 할아버지야."

할아버지는 우리의 대화를 듣다 엄마의 말이 끝나자 "그래, 진우야 할아버지는 아주 건강해. 먼저 반갑게 인사해줘서 고맙구나, 진우가 할아버지를 낯설어하면 어떨까 걱정했는데,,"

눈물을 닦아내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토록 꿈꾸던 순간이었다. 엄마와 할아버지 내가 함께 있는 순간을, 그러나 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아,,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저는 진우라고 해요."

할아버지가 앞장서 집으로 나아가는 동안 엄마는 내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진우야 괜찮아? 할아버지를 처음 보는 거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네가 알게 되면 크게 놀라지 않을까 걱정했어.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주는 모습에 얼마나 안도감이 드는지 몰라. 정말 고마워"

엄마의 눈가엔 눈물이 살짝 맺혀있다. 

'할아버지도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구나, 조심히 행동을 해야겠다. 방금과 같은 상황을 자꾸만 만들어 내면 엄마가 걱정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시골 동네의 모습은 일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물론, 온전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오게 되니 흐릿해진 기억들이 다시금 선명해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며 한 번씩 뒤돌아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럼 똑같이 미소로 답했다. 

'엄마는 무슨 마음일까. 그리고 할아버지를 언제 다시 만나게 된 것일까.'

낯설다가도 익숙한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든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그곳엔 여러 사람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수현이와 수현이 할머니 도 보였다.

아는 체를 하고 싶었지만,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겠지만. 

할머니는 엄마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이고, 잘 지냈어? 이 늙은이가 죽기 전에 한 번은 보고 싶었는데 이제 됐네, 됐어."

두 사람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수현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먼저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괜스레 땅바닥을 쳐다보게 된다. 

할머니는 엄마와의 인사를 끝내고 내게 다가왔다. "네가 진우구나. 정말 반갑다, 반가워. 할머니는 엄마를 어릴 적부터 봐온 사람이야. 할아버지랑 친구이기도 하고. 많이 낯설지?"

볼을 어루만지자 거칠어진 손바닥이 피부에 닿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애는 수현이야. 진우 너랑 동갑이니까. 친하게 지내렴"

드디어 수현이와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수현이는 먼저 "안녕, 반가워." 웃으며 말하는 수현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혹시나 나를 아는 체해주지는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수현이는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 그런 건 아니야. 내 이름은 진우야. 반가워"

 

간단한 인사만 했을 뿐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어색하다고 느낀 것인지 수현이는 나를 떠나 어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 모습을 조금은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봤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밝은 미소, 행복이 가득 묻어나는 엄마의 얼굴, 

내가 겪었던 일들의 기억이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구백이는 어디 있을까,

다 함께 평상에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분주히 준비하는 엄마 곁으로 할아버지는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는다. 엄마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얕은 미소를 주고받는다. 

조심스레 엄마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모든 게 그대로였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다.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그저 꿈처럼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에 불과할지라도. 모두가 행복하다면 그만이지 않을까, 

밖으로 나갔을 땐 준비가 마무리된 상태였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마가 함께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시골에 오던 첫날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엄마 고마워, 할아버지를 소개해주고 시골에 데리고 와 줘서" 

말이 끝나자 마찬가지로 귓가에 대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들 무슨 말이야, 엄마가 고맙고 미안해. 이렇게 예고 없이 시골에 오게 됐는데도 처음 보는 할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해준 것도 고맙고, 낯선 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있어주는 것도 고마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잠시 동안 손을 마주 잡았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나의 밥그릇 위에 반찬을 올려줬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서 먹으라며 손짓을 더했다. 수현이와는 인사를 한 이후로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 점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수현이는 벌써 몇 번이나 사소한 질문들을 해왔을 것이고 친근하게 대해주고 불편하지 않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있는 사이, 집 마당으로 누군가 찾아왔다. 한눈에 알아채진 못했지만 거리가 좁혀지자 나에게 구백이를 만나게 해 준 아랫집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하고 싶었지만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곁에는 구백이보다 덩치가 큰 개 한 마리가 함께 였다. 덩치가 크단 것을 제외하면 구백이와 많이 닮아 있었다. 수현이는 아저씨를 보더니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는다. 

그리곤 달려가 개를 끌어 앉는다. 

"요즘처럼 날이 더워지면 먹는 걸 더 주의해야 한대요. 잘못 먹어서 탈이 난 걸 수도 있다고, 별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주사 한 대 맞고 쉬고 왔더니 오는 동안 금세 회복을 했지 뭐예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듯 나를 바라본다. 

"진우, 옆에는 진우 엄마. 어릴 적 같이 놀고 했던 거 기억하지?" 할머니는 아저씨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소개를 했다. 

아저씨는 "아,, 네가 진우구나."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엄마와는 반가운 듯 악수를 했다. " 잘 지냈어?"  

멋쩍은 듯 웃으며 "응 잘 지냈지. 시간이 너무 빨라서 이제야 아버지를 찾아왔지 뭐야, 내 아들이야 진우. 잘 컸지?" 할아버지는 아저씨에게 식사를 안 했으면 같이 먹자고 앉으라며 권한다. 

뒤늦게 합류를 한 아저씨가 식사를 하며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수현이는 한쪽에 묶어둔 목줄을 풀어 산책을 시키려고 했다.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우야 너도 같이 가자." 

엄마를 바라보자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뒤따라 신발을 신고 일어섰다. 

골목가를 벗어나 걷는 동안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에,

"이름이 뭐야?" 

"궁금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춰봐, " 

"음,, 하얀 털을 가지고 있으니까. 백구?" 

수현이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나는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어때? 시골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모든 게 낯설지 않아?" 

"낯설지,, 그런데 익숙해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익숙해."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나에게 소개해주겠다며 발걸음을 이끌어 나아가자 숲으로 간다는 것을 알아챘다. 

일 년 만이다. 

숲의 중심부에 다다르자 "와,," 탄성을 내뱉었다. 

"좋지? 좋아할 것 같았어." 뿌듯한 미소를 드러낸다. 

"응 정말 좋아. 정말로,,"

"이름은 구백이야. 백구의 반대말, "

말을 듣고는 수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말이야,, " 하지만 이내 멈추고 말았다. 혹시나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오해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구백이라는 말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생각해낼 수 있는 생각인 걸.' 

혼잣말을 하는 사이 수현이는 바위 위로 올라갔다. 

"진우야.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나를 이상하게 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 년 전 이곳에 함께 왔어. 아니, 여름방학 동안을 함께 보냈다는 게 맞겠지. 비가 오던 날밤 갑자기 사라져 버린 널 보면서 구백이와 나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하늘나라에 가버린 것은 아닐까. 괜히 소원을 빌자고 말해서 내가 너를 죽게 만든 건 아닐까 하면서. 며칠 동안은 잠들기 전 그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 그런데 이상한 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심지어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널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할머니는 내가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이라고 말했지만 널 다시 만나고 난 확신을 하게 됐어. 꿈이 아니었구나, 우리가 함께 보낸 여름방학은 모두 사실이었구나, 네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난 괜찮아.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거든. 그렇다고 정말 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 "

말을 끝내자 홀가분하게 바위에서 내려왔다. 

"이제 돌아가자. 내 말은 무시해도 괜찮아, "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수현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머릿속이 하얘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기억해주길 바라는 이가 내 앞에 있음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숲의 입구에 다다르자 "그럼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많이 아팠잖아. 우린 그날 밤 할아버지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기 위해 찾아온 거였잖아. 정말 소원이 이루어진 거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양손으로 내 어깨를 부여잡더니 "너도 기억하고 있구나. 그래! 나는 꿈을 꾸었던 것이 아니었던 거야."

그 후의 일에 대해 나도 마찬가지로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을 말할수록 희미해져 가는 게 느껴져 더 이상 흐릿해지지 않도록 말을 아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구백아, 진우야 진우. 기억 안 나? 우리 여름방학을 함께 했던 진우 말이야."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풀숲 한 편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구백이는 수현이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잠시 주춤을 하다 이내 내게 달려들었다. 격하게 드러내는 반가움에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울창한 숲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수현이는 마찬가지로 내 옆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그날 밤 이후로 신기하게도 점점 몸이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한 달 뒤 멀쩡한 상태로 퇴원을 했어. 할머니가 그러는데 병원 사람들은 그걸 보고 기적이라고 그랬대. 갑자기 좋아진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거야. 그저 살고자 하는 할아버지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판단하는 전부였거든."

"정말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였던 거구나,,"

"있지, 진우 네가 오기 며칠 전 할머니가 조심스레 내게 말했어. 할아버지의 딸이 올 거라고. 진우라는 아들이 있는데 나와 동갑이라면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주라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 우리 엄마 아빠도 다시 살아 돌아올 순 없는 걸까. 어떤 기억도 존재하고 있지 않지만 아니, 모르는 사이라도 괜찮으니 그저 스쳐 지나가도 좋으니까. 한 번만 내 곁에 나타날 순 없는 걸까 하고."

수현이는 말을 이어가다 멈추고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괜한 위로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숲의 깊은 곳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잎사귀가 떨어져 우리 얼굴에 닿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괜찮아. 내겐 할머니가 있는걸, 그리고 널 다시 만나게 됐으니 그거면 충분해"

웃으며 말하는 수현이를 그리고 구백이를 함께 끌어안았다.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가워, "

구백이도 싫지 않은지 가만히 있는다.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는 "잘 놀고 왔어?"

"응 수현이가 동네 구경시켜줬어. 개울가도 가고, 숲에도 다녀왔어. 
저녁을 먹고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엄마 셋만이 남겨졌다. 

엄마와 나는 엄마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자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잠들기 전 방에 들어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엄마는 정말 꿈만 같아.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에 우리 진우와 함께 올 수 있어서 말이야." 어릴 적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순간 잠에 빠져 들었다. 

눈을 떴을 땐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와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엄마는 이미 나간 뒤였다. 

밖에선 수현이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가자 수현이는 반가운 듯 내게 인사를 했다. 

"잘 잤어?"

"응 언제 온 거야?"

"할머니가 일찍 깨우는 바람에, 서둘러 올라왔지. 우리 할머니는 네 엄마가 온 게 많이 좋은가 봐, 어젯밤에도 함께 잠에 들면서 잘됐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으니까." 

수현이와 나는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걷는 동안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멈춰 서게 된다. 굳게 닫혀있다. 

"수현아 왕할머니는 다른 곳으로 간 거야?"

"응 왕할머니는 아주 멀리 갔어."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간 거야?"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얕은 미소를 짓는다. "비행기를 타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높은 곳으로 가야 하니까 말이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나라. 육 개월 전쯤일 거야. 할머니가 다른 분들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잠을 자듯이 아주 편안하게 떠났다고 했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렇게 떠난 거면 잘된 거라고. 나이도 많았으니 잘 살다 간 거라고."

그제야 앞서 수현이가 했던 말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게 됐다.

"그렇구나, 왕할머니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났을 거야. 그곳에선 더 행복할 거야 분명히, "

수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진우야 죽는다는 건 뭘까, 우리도 언젠가는 하늘나라에 가게 되겠지?"

"맞아. 우리도 언젠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나이가 될 것이고 어느 순간 하늘나라로 떠나겠지. 물론,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수현아 그리고 정말 고마워, 덕분에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됐고 이렇게 할아버지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이 마음을 평생토록 잊지 않을 거야."

수현이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날 믿어준 네 마음이 통했기 때문일 거야. 나도 고마워, 우리가 보낸 날들은 먼 훗날 떠올리면 기억될 좋은 순간들이겠지?" 

"당연하지. 내 인생 최고의 여름방학으로 기억될 거야." 

멈춰 선 걸음에 다시 힘을 싣고 앞으로 나아갔다. 

인생은 알 수 없고, 예상치 못한 일들은 매 순간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것이 좋든, 좋지 못하든 말이다. 

마주하며 새로운 기쁨을 느끼듯, 마주하며 새로운 슬픔을 느끼게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걸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에 마음에 위안을 삼아 본다. 그런 일들의 반복 사이로 우리는 아주 조금씩 성장 해나 갈 것이다. 내가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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