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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Apr 01. 2022

학방름여

우리는 대화를 마무리하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방학이 끝나더라도 지금과 같은 관계를 잘 이어나가자고. 


,


벌써 여름방학의 절반이 지나갔다.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공기에 눈을 뜨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지난밤 아침 일찍 나갔다 온다는 말을 했었다. 

며칠 새 부쩍 할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음이 느껴진다.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 싫어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할아버지에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본인이 아프다고 내게 말해주었더라면,, 잠시 동안 생각을 더하다 이내 멈추고 만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렇지만,, 

멍하니 마루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을 본 구백이는 짖어 보이며 자신의 목줄을 풀어달라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까이 다가가 줄을 풀어내자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달려든다. 

"구백아 할아버지가 안 아프면 좋겠어, 오래오래 건강하면 좋겠어."

뭐가 그리 좋은지 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기 바빠 보인다.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만다. 

인기척 소리에 고개를 들자 수현이가 보였다. 

구백이는 수현이에게 다가가 반가움을 드러낸다. 

"진우야 뭐 하고 있어?" 

"응, 그냥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얼마나 깊이 생각을 했길래, 내가 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거야, " 

"수현아 넌 방학숙제가 뭐야?"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역시나 가장 큰 숙제는 매일 일기를 쓰는 거야. 그런데 자꾸 미루다 보니까. 이주나 쓰지 못한 거 있지, 그래서 어젯밤 이 주 치를 한꺼번에 다 적어버렸어."

뿌듯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말하는 수연이를 바라보며 나는 놀라 물었다.

"어떻게? 이주 동안의 일기를 한 번에 적을 수 있어? 네 기억력이 대단한가 보구나."

수현이는 나의 말에 웃음을 드러낸다. 

"하루를 기록하는 건 아주 간단하지. 짧게 단어로 기록을 해두는 거야. 예를 들어 오늘 너를 만났고 구백이와 함께 하고 있으니 '진우' , '구백이' 이런 식으로 메모를 남겨놓으면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날의 단어를 보고 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어."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럼 그것 말고는?"

"많지, 그런데 걱정이 되진 않아. 아직 방학은 꽤 남아있잖아 진우 넌 숙제가 뭐야?"

숙제에 대한 질문을 건넨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의 해결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한 가지다.

방학 동안 보냈던 일들을 정리해 개학을 하게 되면 순서대로 발표를 하는 것. 그것뿐이다. 

학기초 우리 반은 번호를 적어놓은 쪽지를 무작위를 섞은 다음 순서대로 뽑아 결정을 했다. 

내가 뽑은 번호는 1번이었다. 덕분에 개학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발표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어떤 식으로 발표를 해야 할지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시골에서 보낸 여름방학 이야기를 하면 그만이겠지만 나에게는 벅찬 이 상황을 쉽게 풀어낼 자신이 없다. 

"딱 하나 있는데 제일 어려운 것 같아, 방학 동안 보냈던 일들을 잘 정리한 다음 개학을 한 뒤에 차례대로 발표를 하는 거야. 그런데 내가 1번이거든. 가장 먼저 발표를 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실은 잘 모르겠어. 이번 여름방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이야. 수현아 네가 나라면 어떻게 발표를 하겠어?"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나라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 같아. 왜냐하면 포장해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돌려 말하더라도 결국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더니 구백이를 안고 볼에 입맞춤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구백이가 정말 좋은가 보구나, " 

수현이는 "그럼 당연히 좋지."

마루에 구백이를 내려놓고서 "진우야 괜한 걱정은 하지 마.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해서 자꾸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매일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남은 방학 동안 조금씩 준비를 해보는 거지. 뭐, 내 앞에서 발표 연습을 한다고 하면 나는 언제든지 좋아."

아주 잘 이해했음에도 섣불리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지금부터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말고, "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야옹이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수현이를 부르며 손으로 담장을 가리켰다.

"저것 봐. 야옹이가 나타났어"

 수현이는 구백이를 냅다 끌어안더니 조심히 담장으로 다가간다. 

"야옹아 네 친구 구백이야 자 인사해"

구백이는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든다. 야옹이는 평소라면 담장 너머로 사라졌을 테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자리를 뜨지 않고 수현이와 구백이를 바라본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야옹이' , '구백이' , '수현이'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승현이를 만나면 또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마주했던 이들에 대해 이야기해야지.

"수현아" 이름을 부르자 구백이를 안고서 엉거주춤 뒤돈다. 

"고마워 발표 걱정이었는데 조금은 마음이 나아졌어 네 말처럼 숲에서 발표 연습을 하자."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그사이 야옹이는 담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부지런히 아침을 맞이한 우리는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진우야 먼저 내려가 있을게"

수현이를 뒤따라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진우 왔구나, 그런데 밥을 먹으려면 모자를 벗어야지"

옆에서 수현이는 "진우 머리를 안 감아서 모자를 쓰는 거래요. 이해해요 할머니" 

그러냐며 웃어넘긴다. "어서 앉아 먹자꾸나"

할아버지도 그렇고 할머니도 요리 실력이 정말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우야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어딜 간다고 말 안 했니?" 

고개를 저었다. "네 볼일이 있다고만 했어요. 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요."

할머니는 내게 질문을 했지만 눈빛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시골에 왔던 첫날밤의 대화가 떠올랐다. 

할머니에게 물어본다면 솔직한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밥을 먹다 말고 수저를 내려놓은 나를 본 수현이는 무슨 생각을 그리 하냐고 묻는다. 

별일 아니라며 말한 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바닥이 드러나는 나의 밥그릇을 본 할머니는 더 먹겠냐는 질문조차 생략하고 더 먹으라며 그릇 위에 밥을 채워 넣는다.

"저 괜찮아요. 배불러요"

"그것 가지고 되겠어, 우리 수현이도 그것보단 더 먹는데 반찬은 없지만 사양 말고 더 먹어 진우야"

반복되는 대화에 체념한 채로 잘 먹겠다는 답을 하고서 식사를 이어 나갔다.

곁에서 보던 수현이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웃고 만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할머니는 수박을 잘라 상위에 올려놓았다. 

"다 먹으면 수박도 먹어"

수현이는 배부르다는 의사를 자신의 배를 문지르는 것으로 대신한다. 할머니는 그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나절만 나가 놀아도 금방 소화될 거라며 하나씩이라도 먹으라며 우리 손에 쥐어준다. 

망설이는 사이 전화벨이 울리고 어서 받으라는 손짓에 받아 들고 말았다. 

"수박이 달고 맛이 좋아." 나의 말에 수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를 받으러 갔던 할머니는 누구와 통화를 하는 것인지 밝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져갔다. 궁금함에 나도 모르게 바라보지만 시선이 마주 치차 애써 고개를 떨구는 할머니를 보며 의아함이 더해진다.   

'누구와 통화를 하길래 시선을 피하는 걸까 나 혼자만의 착각인 것일까.'

잠시 후 전화기를 내려놓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표정이다. 

"진우야 할아버지가 쓰러져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하는구나. 집에 가서 겉옷 챙겨 입고 나오렴 같이 병원에 가자꾸나." 분명 정확하게 말을 들었음에도 몇 초 동안 몸이 굳은 것처럼 움직일 수도 또 아무 말도 뱉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왜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는 할머니를 본 수현이는 나에게 "일단 병원부터 가자."

그 말에 엉거주춤하며 일어났다. 삼십 분 뒤 우리는 아랫집 사는 아저씨네 트럭을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차창 너머로 비가 오는 것이 보인다. 

그럼에도 햇살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수현아 바깥 좀 봐. 비가 오는데도 해가 사라지지 않았어. 오히려 더 빛나는 것 같아"

할머니와 수현이는 동시에 바깥을 바라본다. 

"와 신기하다." 그리고 침묵은 다시금 이어졌다.

몇 분이 채 되지도 않아 비는 그치고 말았다. 마치 처음부터 오지 않았던 것처럼.  

주차를 하는 동안 먼저 내려 병원으로 들어갔다. 

앞서 나가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엄마를 보냈던 날이 떠올라 할아버지를 보기 전부터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현이는 그런 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온 것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할머니는 가까이 다가가 무리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며 일어서려던 할아버지를 말렸다. 

"뭐하러 진우까지 데리고 왔어 별일도 아닌데,, 애 걱정하게 말이야."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수현이는 나를 대신해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괜찮은 거죠. 금방 집에 갈 수 있는 거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마음속으로 조금의 안도감을 더하게 된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 평화롭던 일상이 지속되길 간절히 바랐다. 

주차를 하러 갔던 아랫집 아저씨를 본 할아버지는 "고마워서 어떻게 신세를 지고 말았네." 

아저씨는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잠시 후 우리를 찾아온 간호사 선생님은 할머니와 아저씨를 따로 불러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입모양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쳐다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선생님이 떠나고 아저씨는 우리에게 다가와 카드를 내밀며 "아까 응급실 들어오면서 바로 옆에 햄버거 가게 있었던 것 기억하니?"  

수현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럼요. 들어오면서 진우에게 이야기도 했는걸요."

"그럼 다행이다. 카드 줄테니까, 진우랑 가서 간식 먹고 있으면 아저씨가 금방 데리러 갈게. 할아버지 할머니랑 상의할 게 좀 있어서 그래 줄 수 있겠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옆에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내 가족인데 왜 내가 빠진 채로 무언가를 상의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어린애라서 그러는 걸까,  

수현이는 나의 손을 잡는다. "진우야. 가자"

손을 잡는 수현이의 눈빛을 바라보자 단순히 햄버거가 먹고 싶어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게 됐다. "응,, 그래" 

몇 발자국 발걸음을 떼고 뒤돌아보자 할아버지는 내게 얕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로 응급실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수현이는 대뜸 "아직 우리는 어른이 아니니까. 그래서 같이 대화를 할 수 없는 건가 봐.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글쎄, 몇 년이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키도 더 커져야 할 테고,,,"

엄마는 내게 어른이 되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행복한 일들도 많이 생길 것이라고.

결혼이라는 것도 하게 될 테고 나와 닮은 자식을 만나게 되는 큰 기쁨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을 듣고 그럼 엄마는 어른이 된 것이냐며 묻는 질문에 행복한 일을 아주 많이 겪었으니 어른이 된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그런 뒤 나를 만난 덕분에 비로소 어른이 되었고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며 말했다. 엄마의 행복은 나에게서 '엄마'라는 단어를 들었던 순간이었고 두발로 걷기 시작하던 날,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된 나를 보던 순간이었다고. 아니 나와 함께 하는 매 순간이 행복이라고 했었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나도 행복해" 품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체온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안겨있던 나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자라 주라는 말에  

"그럼 나 어른 안 할게. 지금처럼 엄마랑 행복하게 그리고 승현이랑 즐겁게 놀고 싶어."

생각해보면 바보 같은 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바보 같은 말에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진우야 어른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도 아니고, 지금보다 키가 큰다고 해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니야." 

"그럼 나도 자식이 생기면 되는 거야?"

웃으며 "엄마처럼 진우를 만나며 어른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진우 네가 경험으로써 깨닫게 될 거야. 엄마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건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

"단단한 게 뭐야? 근육이 생기는 거야?"

재차 웃으며 "그런 것 말고 음,, 슬픈 일을 마주하고도 지지 않는 마음, 힘든 일을 겪고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 지치더라도 괜찮아질 것이라 믿음. 같은 거랄까? 너무 어려운 말이지?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응 너무 어렵다. 나는 어른 안 할래. 그냥 엄마가 내 어른 해줘 어차피 평생 내 곁에 있을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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