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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Apr 05. 2022

학방름여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가장 마지막에 병실을 나오며 뒤를 돌아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할아버지는 얕은 미소를 지었다. 한 손을 들어 작게나마 인사를 했다. 

트럭 안에선 틀어둔 라디오 소리만이 들릴 뿐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여름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소식은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하고 있다. 

저녁 먹기 전까진 집에 있고 싶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그럼 수현이랑 함께 놀고 있으면 자신이 부르러 가겠다고 한다. "괜찮아요. 잠을 자고 싶어서 그래요. 시간 되면 알아서 내려 갈게요. 그래도 괜찮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수현아 이따 봐."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구백이는 며칠을 못 본 것처럼 나를 반겨준다. 물그릇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채워 넣는다. "구백아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어, " 

목줄을 풀어주길 원하는 구백이를 뒤로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조금만 쉬다 나올게. 그런 뒤 함께 놀아줄게 미안해" 

침대에 누워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에 빠져 든다.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고 만다.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다. 벌써 저녁시간이 된 건가 싶었다.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가자 수현이는 "몇 번을 불렀는데 이제야 나오는 거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미안,, 깊이 잠들었나 봐. 저녁 먹으러 가자."

예상과는 다른 말을 듣게 된다. "할머니 다시 병원에 갔어.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있던 나에게 수현이는

"진우야 우리 숲에 가지 않을래?"

해가 진 이후 그것도 저녁 시간에 숲에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갑자기 숲에 가자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숲에 갈 때마다 우리가 앉던 큰 바위 알지? 그곳에 올라가 간절히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도대체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네가 시골에 도착하기 며칠 전 혼자서 숲에 간 적이 있거든. 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어. 방학을 함께 보낼 좋은 친구를 말이야. 물론, 무조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그저 바람이었을 뿐이지. 그런데 거짓말처럼 진우 네가 나타났어. 그리고 나는 확신을 하게 됐어. 숲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곳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바라면 이루어지게 해주는 신비한 곳이 틀림없다고."

듣고 있는 와중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내가 시골로 온 것도 그리고 너를 만난 것도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뿐이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시도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속는 셈 치고 한번 시도해볼 순 있잖아."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늦은 밤 무슨 방법으로 숲에 가겠어. 이렇게 어두운데,, 내일 아침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수현이는 그제야 뒤편에 감춰두고 있던 손전등을 꺼내 보인다. 

"자봐. 괜찮을 거야 달도 떠있고, 혹시라도 할아버지에게 정말 큰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우리가 내일 숲에 가면 너무 늦어버릴지도 모르잖아. 무서우면 구백이를 함께 데려가자. 딱 소원만 빌고 돌아오면 괜찮을 거야."

각자의 손에 손전등을 쥔 채로 집을 나섰다. 구백이는 저녁 무렵 밖에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이 난 것 같다. 

느슨히 줄을 잡은 채로 구백이를 앞장 세웠다. 

숲에 입구에 다다르자 가로등도 보이지 않고 불빛이 사라진 탓에 정말 깜깜했다. 

발걸음을 주저하자 수현이는 자신이 먼저 가겠다며 손전등으로 숲을 비추며 나아간다. 

조심스레 그 뒤를 따라갔다. 

"수현아. 우리 사이가 너무 멀어지면 위험하니까, 급하게 가지 말고 천천히 걷자."

그제야 수현이는 걸음을 멈춰서 나를 기다린다.

다행히 숲의 공터는 달빛이 비쳐 그리 어둡게 느껴지진 않았다. 

"자 진우야 어서 올라가!"

망설이던 발걸음의 이유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는 마음과 소원을 빈 뒤에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은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다. 

목줄을 수현이의 손에 쥐어준다. 한 발자국 씩 조심히 바위로 올라갔다. 

올라간 뒤엔 뒤돌아 수현이를 바라봤다.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수현이는 정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는 사이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얼굴에는 빗방울이 부딪힌다. 

눈을 감았다. 

빗소리 이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세요.' 혼잣말은 이내 엄마에 대한 말로 바뀌었다. '엄마, 할아버지가 많이 아파. 아프지 않게 도와줘 지켜보고 있는 것 다 알아. 함께 캠핑 가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두고 떠났다고 해서 원망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 순간, 천둥번개가 쳤다.

반짝이는 소리와 함께 굉음이 울려 퍼졌다. 

구백이는 놀라 짖고 수현이는 근처에 있던 나무 아래에 몸을 수그린다.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지도 몰라.'

"수현아 비가 더 오기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급하게 바위에서 내려와 수현이가 잡고 있던 목줄을 건네받았다. 

이번엔 내가 먼저 앞장서 걸었다. 

"먼저 갈 테니까. 잘 보고 따라와야 해"

"응 알겠어, 걱정하지 마" 

금방 비가 그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먼발치 시야에 숲의 입구가 보이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수현아 조금만 가면 돼 다 왔어."

뒤돌아 보자 수현이는 뭐가 즐거운 것인지 미소를 짓고 있다. 

"왜 웃는 거야?"

"그냥, " 

싱거운 대답에 나 역시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구백아 어서 집에 가자." 

입구를 지나 이제 됐다며 수현이를 바라보자 일순간 수현이와 구백이가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이내 주변의 모든 모습들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병실 내부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왜 내가 병원에 있는 거지.'

힘겹게 일어서자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서 다가와 껴안는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익숙한 목소리다. 

얼굴을 마주하고 놀라고 말았다. 

"엄마" 

엄마가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죽게 된 걸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내가 죽은 거야?"

엄마는 무슨 소리를 하냐며 묻는다. 

"한 달 동안 잠들어있다 깨어나서 하는 소리가 죽었냐고 묻는 사람이 어디 있니?"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히 수현이 구백이와 함께 였다. 

비를 피해 집으로 향해가고 있던 사실은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말해주고 있다. 

"수현이랑 구백이는요?"

엄마는 나의 말을 깊이 듣지 않으려고 했다. 

"진우야 네가 한 달 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혼란스럽고 힘들 수도 있어. 잠시만 기다리고 있을래? 선생님을 불러올게."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나도 같이 입원을 하게 된 걸까, 그런데 엄마는 어째서 내 앞에 있는 것일까. 

죽은 게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은 꿈일지도 모른다. 

힘겹게 일어나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가 보였다. 그 너머로 살고 있는 아파트도 보인다.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는 사이 병실 안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중에는 승현이도 있었다. 

"진우야 괜찮아?"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달려가 안고 말았다. 

"승현아 널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어. 학방름여는 잘 보냈어?"

갑작스러운 나의 포옹에도 승현이는 기분이 좋은 듯 웃는다.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엄마와 나누려는 것 같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맞지?"

나의 질문에 승현이는 웃으며 "꿈이라니? 이건 꿈이 아니야. 내가 깨어난 건 현실이야 진우야"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건 뭐야?"

"아 그게 말이야.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보냈던 여름방학 이야기야. 수현이와 구백이라는 강아지를 만났어,, 그러니까 말이야."

이상하게도 생생하던 기억은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할수록 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말하지 않으면 괜찮다가도 말하려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혹시 네가 말하려는 이야기는 꿈의 내용이 아니야?"

방학식 날 아침 학교를 가는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왔기 때문에 내가 여름방학을 시골에서 보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설명하려고 할수록 기억이 지워져 버린다면 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모두와의 기억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 건 꽤나 슬픈 일일 테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내가 쓰러져 병원으로 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일까.'

승현이는 꿈의 내용이라도 좋으니 여름방학을 보냈던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했다. 

멈칫거리던 입술은 이내 "기억이 나지 않아. 네 말처럼 꿈이라서 그런지. 자고 일어나니까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수차례 검사를 거듭한 끝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고 나서야 깨어난 지 일주일 뒤 퇴원을 했다.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했던 이야기에 대해 혹시나 내가 더 아픈 곳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선생님은 긴 시간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꿈을 현실로 혼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을 했다.  

내가 갔던 시골마을의 이름도, 버스 정류장 까지도. 점차적으로 희미해지는 것 같더니 퇴원을 하던 날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수현이 그리고 할머니 구백이에 대한 기억은 오히려 더욱더 선명하게 남아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어쩌면 수현이의 말처럼 그날 밤 바위에서 빌었던 소원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오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승현이와 승현이 엄마는 우리 집에서 나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우야 이모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니? 그래도 우리 진우는 씩씩하고 강하니까. 아무렇지 않게 깨어날 거라고 믿고 있었어." 


승현이는 내가 쓰러졌던 날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방학을 한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마음으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가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 불빛은 초록불로 바뀌었고 신발끈을 묶느라 뒤쳐지던 승현이를 뒤로하고 먼저 건너던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횡단보도 중간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엄마는 나의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왔다고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엄마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사고는 과속운전을 하던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였다. 그날 예정대로라면 출장을 가야 했던 엄마는 나로 인해 출장을 취소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억에 불과한 일로 남게 되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엄마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도 그리고 시골에 있는 이들 또한 나라는 아이의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수현이와 방학이 끝난 뒤에도 만나자는 약속을 했는데 지키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이것마저도 나 혼자만의 약속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다른 이들이 떠나고 엄마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진우야 이번 여름방학은 캠핑을 가자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를 끌어안았다. 

"아니야.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캠핑 가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 어느 여름방학보다 길게 느껴지던 '학방름여'가 끝이 났다.

엄마는 평소와 같이 출근을 했고 승현이와 나는 여전히 함께 학교를 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올 무렵쯤에는 거꾸로 말하던 유행이 끝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도 거꾸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우야 나무를 봐, 가을이 오고 있나 봐."

"그러게, 이번 여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나의 말에 승현이고 웃음을 터트린다.

"그건 당연하지. 넌 한 달 동안 잠들었으니까. 일어났는데 방학이 끝났으니 더 그렇게 느낄 수밖에"

"네 말이 맞아. 그렇게 긴 잠을 잤는데도 피곤한 건 똑같은 것 같아."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이제는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충분한 날씨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을까, 수현이는 방학을 잘 끝냈을지 궁금하다. 

구백이는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지.

자꾸만 기억들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요즘은 메모장에 기록을 한다. 

수현이의 말처럼 모든 날들을 정확히 기억해낼 순 없지만, 특정 단어들을 메모해둠으로써 잊어먹지 않으려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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