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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Apr 05. 2022

학방름여

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매장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소란스러웠다. 잠시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주문 번호가 화면에 보였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 이층에 자리를 잡았다. 창가 쪽에 앉으면 응급실의 입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현이는 내게 "진우 너보다 할아버지를 더 오래 봤잖아. 강한 분이니까 괜찮을 거야" 

그날 밤의 대화를 수현이에게도 말해준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사라져 버린다.

대답 대신 "맛있다. 어서 먹어 수현아" 

시선을 창가로 향한다. 때마침 구급차에서 내려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 뒤로 멈춰 선 차량 한 대에서는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내렸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가만히 바라봤다. 

아이는 이내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수현이는 그런 나를 보고서 뭘 그렇게 쳐다보냐고 묻는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벽면에 붙어 있던 시계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아저씨가 데리러 온 시간은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는 것을. 

창가 쪽에 앉아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수현이는 여기라며 손을 흔든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아저씨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진우야 할아버지가 당장은 집에 가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발견한 할아버지는 "진우야 할아버지가 미안하구나, 간단한 검사를 해야 해서 며칠은 이곳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정말 간단한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수현이 할머니에게 말해두었으니 그 집에서 며칠만 같이 지내고 있으렴"

"거짓말 아니죠? 진짜 금방 집으로 오는 것 맞죠?" 

할아버지는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할아버지를 뒤로한 채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아저씨는 우리 집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리고 할머니와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에게 전달만 해주고 금방 돌아올 테니 수현이랑 진우는 집에서 쉬고 있어"

따라가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트럭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마당을 벗어났다. 

잠들어 있던 구백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지 집에서 나와 가만히 우리를 바라본다.

수현이는 가까이 다가가 목줄을 푼 뒤 품에 안고서 마루로 데리고 온다. 평소라면 신이 나 움직였을 구백이는 잠이 덜 깬 것인지 움직이지 않은 채로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굵은 빗줄기로 바뀐다. 하늘은 이전과 다르게 어둡게 변해 있다. 

"할아버지는 정말 괜찮은 걸까."

수현이는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그럼, 간단한 검사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무엇을 검사하는지도 알지 못하잖아. 또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숨기는 것일 수도 있고 네 말처럼 건강하고 강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검사를 한다는 게,,,"

말끝을 흐리게 된다. 


며칠이면 집으로 돌아오겠다던 할아버지는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검사가 미뤄지고 있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이 주째 되던 날. 어김없이 병원에 다녀오겠다던 어른들에게 따라가겠다는 말을 전하자 흠칫 놀란 듯 금방 다녀오기 때문에 오늘이 아닌 다음에 같이 가자는 말을 듣는다. 

"안돼요. 저도 가고 싶어요 데려가 주지 않으면 걸어서라도 갈 거예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수현이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눈치를 챈 것인지 덩달아 "맞아요. 왜 우리는 못 가는 거예요. 같이 가요" 잠시 동안 벌어진 실랑이 끝에 함께 병원으로 향하게 됐다.

할머니는 가는 동안 "그럼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래? 물건만 전해주고 나오면 되는 거라서 다 같이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까." 

대답하지 않았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렸다. 할머니와 아저씨는 당황하는 듯했지만 체념한 듯이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실에 들어서자 창가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

큰소리로 부르자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할아버지 역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이내 눈빛은 할머니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다. 할머니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한눈에 보더라도 괜찮은 모습은 아니었다. 

"며칠이면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왜 아직도 집에 안 오는 거예요?" 

질문에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는 나의 손을 잡는다. "진우야 할아버지 검사가 늦어져서,, 그래서 집에 못 가고 있는 거야"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거짓말이잖아요. 다 알고 있어요. 저 시골에 도착했던 날 밤 두 분이 대화하는 것 다 들었어요."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일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결국 입 밖으로 꺼내버리고 말았다. 말하지 않으면 내가 들었던 말들이 거짓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숨기고 숨기다 보면 어느새 건강해진 할아버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마주한 것은 많이 야윈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고 나는 그대로 병실을 뛰쳐나와 주차해두었던 트럭의 뒤로 들어가 주저앉고 말았다. 곧장 뒤따라오던 수현이는 나를 발견하고서 조심히 옆에 와 앉는다.  

"너는 알고 있었어?" 수현이에게 물었다.

대답이 없자 

"알고 있었냐고 묻잖아."

"응,, 그런데 자세히는 몰랐어. 그냥, 할아버지가 조금은 아프고 금방 나을 수 있는 것이라 듣기만 했어 그게 전부야 네게 거짓말을 하려 했던 것도 아니고,,"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삼십 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진우야 다시 들어가자. 그렇게 나와버리면 할아버지가 많이 속상해할 거야."

수현이는 나의 손을 잡고 일어섰고 앞장서 걸어갔다. 다시금 병실로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나를 발견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진우야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을 마주하면 눈물이 날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나의 손을 잡는다. 

"할아버지가 거짓말해서 미안해. 마음은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고개를 들자 할아버지의 눈가엔 눈물이 가득 맺혀있다. 

그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마음을 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 번 슬픈 이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할아버지는 방에 찾아왔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뱉었다. 자신이 먼저 찾지 못함에 미안하다는 말을 했고 엄마를 떠나보낸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미안하다 했고 잘난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자는 척을 했고 이후엔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잠든 척을 해야만 했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입원을 하기 전날 밤에도 방에 찾아와 자신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나를 행복해주겠다고 말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아냈던 나의 마음엔 어느새 할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많이 아프다고 한다. 앞으로 남은 기간이 몇 달이 될지 모를 만큼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다고. 

처음부터 솔직하게 듣고 싶었지만 막상 듣고 나니 듣지 않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별이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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