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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Feb 16. 2022

학방름여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하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하나둘 반찬이 상위에 올려진다. 프라이팬 위 생선이 올라가자 지지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냄새는 방안을 가득 채워나간다. 밥을 먹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따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선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나 역시 웃어 보일 뿐이었다.

밥이 절반 정도 줄어들자 "진우야 밥 더 줄까?"

"괜찮아요, 이것도 많아요."

시골의 여름은 도시와는 다르게 조금은 더 시원했다.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충분한 기분이 든다. 활짝 열린 방문 사이로 매미의 울음소리가 더욱더 크게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밥을 먹는다. 이따금 생선을 내 밥 위에 올려주거나 반찬을 챙겨 주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자 "제가 정리하는 것 도와드릴게요."

할아버지는 말이라도 고맙다며 괜찮으니 쉬라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 

어쩔 수 없이 정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반찬을 냉장고에 집어넣으며 싱크대 옆 서랍장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이윽고 손에 들린 것이 약봉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류가 꽤나 많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시선을 의식한 듯 자세를 엉거주춤하며 훔치듯이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는다. 

지난밤의 대화가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정말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일까, 엄마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내 곁을 떠나게 되는 것일까. 

마무리하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엄마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해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삼십 분 뒤 방문이 열리고 다시 일하러 간다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자는 척을 했다. 방안 가득 햇살에 드리운다. 조금씩 눈이 감기는 것을 보니 이대로 있다가는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자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의 책상에 앉았다. 옆으로는 책들이 잘 정돈된 채로 꽂혀있다. 하나씩 꺼내 살펴보다 이윽고 열쇠로 잠긴 다이어리를 한 권 발견했다. 오래되어 표지의 색은 바래 있다. 힘으로 열어보려고 했지만 튼튼하게 만들어진 탓인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체념하고 옆에 있던 작은 구슬을 집어 들었다. 다시금 침대에 앉아 양손으로 구슬을 흔들었다. 그러다 구슬 하나가 튀어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굴러가는 구슬을 따라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틈에 있던 것을 겨우 꺼내 나오려는 순간 머리를 부딪히고 만다. 머리를 집고 정신을 차리는 사이, 구슬을 꺼냈던 틈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짚어 넣는다. 잡힌 것을 꺼내 살펴보자 작은 열쇠였다. 책상 위에 열쇠를 올려놓은 뒤 책장에 끼워져 있던 다이어리를 다시 꺼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어넣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풀린다. 

조심스레 다이어를 열어보다. 

첫 장에 적힌 날짜를 확인해보니 엄마의 나이가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적힌 글이었다. 

몇 장은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 또는 사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다이어리의 끝부분에 다다랐다. 



7/22

사랑하는 나의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나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함께 했던 모든 추억들이 거짓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

'

'


10/23

나도 모르게 자꾸만 아빠에게 엇나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자꾸만.. 그렇게 된다. 속상하다.


'


3/23 

한 남자를 만나 사귀게 되었다.

괜찮은 남자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잘 모르겠다. 

아빠는 한순간에 변해버린 나의 모습에 조금씩 지쳐가는 것 같다. 

이대로 계속해서 지낼 수는 없다.

나 때문에 아빠가 힘들어하는 게 싫다.  


'


아이를 갖게 되었다.

남자 친구는 아이를 지워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럴 수 없다.

아이는 내가 홀로 키울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이야기를 할 때까지만 함께 있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


잠든 아빠의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해 보인다.

꽉 안아주고 싶지만, 잠에서 깨어나게 될까, 주저하게 된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빠에게도 미안하고, 태어날 아이에게도 미안하다.

다이어리를 챙겨 갈까 싶다가, 그대로 두고 떠나가기로 했다.

남자 친구와는 이미 연락이 끊긴 상태이다.

아이와 단둘이 세상을 살아나가야 한다.



그냥, 친자식도 아닌 나를 거두어준 아빠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떠나야겠다.


아빠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다이어리의 내용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가 죽고 나서야 알게 됐다.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을 수만 있다면,

나를 낳은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어떤 대답이라도 좋으니 듣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나누던 우리의 대화가 이제는 그 무엇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됐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 됐다. 지금쯤 엄마는 어디에 머무르고 있을까. 좋은 곳으로 가는 동안 내 생각은 하고 있을지 할아버지와 내가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 

궁금한 것투성이다.

다이어리를 제 위치에 꽃아 넣은 뒤 열쇠는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둔다.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벽에 기대 눈을 감는다. 승현이는 할머니 집에 잘 도착했을까, 방학이 빨리 끝나버리면 좋겠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우리 집이 그리워진다. 

아니, 할아버지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문을 열고 나가자 처음 보는 강아지 한 마리가 마당에 들어와 있다. 

신이 나 가까이 다가갔다. 

"넌 누구야? 어디에서 왔니?" 

강아지는 대답을 하는 대신 내 앞에 배를 뒤집고 드러눕는다. 체구가 작아 품에 쏙 들어온다. 

'정말 작다.'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자 신이 난 듯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몇 발자국 움직이자 뒷걸음을 따라 같이 움직인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강아지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 

'할아버지도 괜찮다고 하시지 않을까,,' 

일방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사이 등 뒤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나 하고 한참을 찾았네, 언제 여기까지 올라왔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누구세요?"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올수록 신고 있는 고무장화 때문이지 삑 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진우구나, 아저씨도 이 동네 사람이야. 안 그래도 오전에 할아버지 밭에 일을 도와주고 오는 길이었어 할아버지가 자랑했던 것처럼 잘생겼구나."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숙인 채로 인사를 했다.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 개가 새끼를 났거든 귀엽지 않니?"

아무 말 없이 강아지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내게 강아지가 좋냐고 재차 물었다. 

"네 좋아요. 정말 귀여운 것 같아요" 

내 말을 듣더니 그럼 키우지 않겠냐는 말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아요?"

"그럼 네 할아버지만 허락하면 아저씨는 괜찮아, 그리고 강아지도 너를 맘에 들어하는 것 같고."

아저씨는 저녁때 다시 오겠다며 그대로 돌아갔다. 강아지는 여전히 나의 곁에 남아 있다. 

마당 한편에 앉아 강아지를 안았다가 내려놓았다가 함께 뛰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할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강아지를 보고는 물었다. 

"진우야 웬 강아지니?" 

표정이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말하면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아,, 그게 오전에 할아버지랑 일했던 아저씨네 강아지인데요. 강아지가 제 발로 여기 집에 와서 함께 놀았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할아버지 이 강아지 제가 키우면 안 돼요?"

생각과는 다르게 할아버지는 단번에 수락을 했다. 

"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렴. 네 엄마도 강아지를 참 좋아했는데,,"

이내 말끝을 흐리더니 할아버지는 발걸음을 옮겨 창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내가 들어가도 충분한 크기의 고무통을 꺼내왔다. 

"진우야 내일 시장에 가서 할아버지가 강아지 집을 사 올 테니 오늘은 여기에 재우자꾸나." 

기쁜 마음에 강아지를 안고 빙빙 돌았다. "감사해요."

'할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던 것은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방학이 끝나고 나면 강아지는 나와 함께 서울로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시골에 남게 될지, 생각해보면 혼자서 서울에 산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승현이 엄마가 자주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어린 내가 혼자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할아버지가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머릿속은 복잡해져 가지만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이 좋다.

그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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