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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Jun 29. 2021

학방름여

밥을 먹고 난 뒤 반찬들을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엄마의 퇴근시간은 늘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밥을 먹은 뒤에는 정리를 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그렇게 퇴근 후 정리된 모습을 마주할 때면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멋진 아들이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칭찬을 듣고 싶어 더욱이 정리를 했던 것인지도, 

이제는 칭찬을 해주는 이 가 없음에도 자리 잡은 습관은 이곳에서도 나타나고 만다. 

문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진우야 빨리 나와!"

시계를 바라보니 정확히 삼십 분이 지나있다.  손에 묻어있는 물기를 바지에 쓱, 닦는다. 또 한 번 소리가 들린다. "진우야 뭐해. 삼십 분 지났다니까 어서 나와" 

문을 열고 나서자 큼지막한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수현이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러자 수현이는 "왜 웃는 거야?" 

"아니야. 그냥 웃겼던 기억이 생각났을 뿐이야"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열린 대문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내가 없는 사이 아무도 없는 집에 누군가 불쑥 찾아오면 어떡할까라는 우려스러운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을 읽은 것인지 "걱정 마. 시골에서는 모두들 이렇게 살아. 문단속은 잘하지 않아" 마음을 읽힌 것 같아 멋쩍은 웃음을 짓고 만다. 

"정말 신기해. 서울에서는 항상 문단속을 잘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곳에서는 모두들 그렇게 산다고 하니 말이야" 수현이는 나의 말에 웃으며 앞장서 나아간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려는 거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에 잠자코 따라가기로 했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작은 개울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진우야. 그런 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와"

수현이는 다급하다는 듯 나를 부르는 손짓을 더해낸다. 

"알겠어. 같이 가자." 수현이 곁으로 다가갔다. 

길을 걷는 동안 마주한 집들은 수현이가 말했던 것처럼 하나같이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몇 집을 지나쳐 나아가는 사이 담장 너머로 꽃이 피어있는 초록색 대문 집 앞에서 걸음이 멈춘다. 대문 틈 사이로 처음 보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주춤하는 사이 수현이는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넨다. "왕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미소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그 모습에 나 역시 엉거주춤하며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처음 마주하는 나에게도 같은 미소를 짓는다. 

수현이는 나에게 "저분은 왕할머니야. 우리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아서 나는 그렇게 불러.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왕할머니는 작년에 90살이 되었다고 했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90살이라니, 아니지. 정확히 한 해가 또 지났으니 91살이 된 것이다. 내가 살아온 날들보다 몇 배는 더 긴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니 뭐랄까.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할머니에게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우리를 부르는 손짓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이에서 보더라도 왕할머니는 전혀 90살을 넘긴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루에 앉자 바구니에 담긴 과일을 건넨다. 바구니 안에는 귤이 담겨 있다. 두 개씩 집어 한 번은 수현이에게, 또 한 번은 나에게.

우리는 동시에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처음 보는 친구는 어디에서 왔나?" 수현이는 대신해서 대답한다.

"아~ 우리 윗집 할아버지네 손자예요. 이름은 진우예요. 나이는 열 살." 나는 중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구나. 네가 진우구나. 그러고 보니 네 엄마 어릴 적 모습과 똑 닮았어"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 우리 엄마를 알아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아주 잘 알고 있지, 얼마나 예뻤다고 네 엄마를 볼 때마다 아주 미소가 절로 지어졌지"

엄마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가도 동시에 슬픈 마음이 차오른다.

"그런데요. 엄마는 하늘나라에 갔어요. 그래서 이제 만날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현이는 할머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잠시 뒤 말을 이해하고 작은 체구로 나를 껴안는다. 

나지막이 말을 이어나간다. "데려가려면 이 늙은이를 데려가야지.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정적이 흐른다. "많이 슬프지? 힘들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젊을 적 남편을 떠나보내고 막 돌이 지난 아이를 홀로 키워야 했어. 그땐 뭐, 슬퍼할 틈이 없었어. 아이를 키우려면 뭐든 해야 했으니까. 닥치는 대로 일 하고 몸은 힘들어도 나만 보면 웃는 아이를 보며 힘을 냈지.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를 때, 또 걸음마를 떼고 걷기 시작할 때,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마음이 차오르는 거야.. 그럴 때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엔 남편 사진을 품에 안고서 눈물을 훔치는 일로 나를 위로하며 굳은 세월을 이겨내며 키워왔어. 그런데 아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수백 수천번은 했지만 결국 마주한 것은 싸늘한 시신이 된 아이의 모습이었단다. 그 후로 몇 날 며칠을 울었는지,,"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아픈 곳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먼저 간 남편과 아이가 자신들의 몫까지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가 싶기도 해, 이 늙은이가 지금껏 병원을 가본 것을 손에 꼽을 정도니 말이야."

나와 수현이는 할머니의 말에 집중했다. 

"수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남편을 떠나보내던 날. 아이를 떠나보내던 날. 들을 잊을 수가 없어. 그렇다고 애써 잊으려고 하지도 않지. 그냥, 삶이 힘들 때면 나를 두고 떠난 이들은 얼마나 슬플까. 그 생각을 하면 내가 더 잘 살아야지.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보고 해야지. 그래야 언젠가 만나면 잘했다. 이 소리 들을 것 같아서, "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똑같이 먼 곳을 바라봤다. "진우야. 할머니가 해주고 싶은 말은 엄마는 자신의 몫까지 네가 삶을 잘 살아주길 바란다는 거야. 이 할머니처럼 오래오래 건강히, 좋은 것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지금만 보면 인생은 참 힘든 것 같지만, 조금만 더 길게 보면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더구나." 할머니의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표정 속에서 나는 할머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낸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끝나자 할머니는 나와 수현이에게  귤을 하나씩 먹여준다.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고 수현이는 "왕할머니 그럼 저희 이만 가볼게요. 또 놀러 올게요~"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할머니는 조심스레 나의 손을 잡고 말한다. "언제든지 놀러 오렴." 고개를 끄덕였다.

대문의 경계선에 서서 뒤를 돌아봤다. 할머니는 이전과 같이 먼발치를 바라보고 있다. 

나이가 들어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하더라도 깊숙이 자리 잡은 기억만큼은 지워지지 않은 채로 자신의 지난 순간들을 돌아보게 하는 장치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느끼면서, 아, 시간이 정말 이렇게나 흘렀구나. 내 삶이 이만큼이나 채워졌구나 하면서 말이다.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찾아올까.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서 조금은 엄마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들이 찾아올까. 

아직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미래의 날들을 떠올리곤 알 수 없단 결론을 내린다. 

수현이는 뭐가 그리 급한지 걸음걸이에 힘이 실린다. 

"같이 가자." 

나의 말에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려 손짓을 더해내고는 시선은 다시 앞으로 향한다.

하나 둘 집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십 분 정도 나아가자 이내 마을이 보이지 않는 숲의 입구에 다다랐다. 괜한 걱정에 "우리끼리 이 숲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여기선 마을도 보이지 않아." 

수현이는 걱정하지 말라며 어서 가자는 말을 할 뿐이다.

숲의 입구에서 십 분 정도 더 들어가자 마치 누군가 만들어놓은 듯한 공터가 나타났다. 하늘 높이 길게 뻗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고 사이로 햇빛을 비춰냈다. 수현이는 자연스러운 듯 큼지막한 바위 위에 올라가 앉는다. 나 역시 수현 이를 따라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 벌레소리를 제외하면 숲 속은 고요함에 잠겼다. 당연히 우리를 제외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숲 속의 고요함은 두려움을 안겨주기보다 오히려 마음에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넌 이곳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내게 질문을 한다. "어때? 마음에 들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런 곳은 살면서 처음 와보는 것 같아"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내가 태어난 지 육 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이곳으로 왔다고 했어. 물론, 하나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말이야." 

무심코 "그럼 부모님은?" 

수현이는 바위에 그대로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두 분 모두 돌아가셨어." 

"아,, 미안. 괜한 질문을 했구나."

"아니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걸. 집에 화재가 났다고 들었어. 나는 엄마와 함께 낮잠을 자고 있었고 잠깐 사이에 불이 번지는 바람에 대피할 수도 없었지. 설상가상으로 가구가 쓰러져 우리를 덮쳤고 엄마는 나를 감싸 안으며 충격을 그대로 견뎌냈어. 머지않아 아빠가 집안으로 들어온 거야. 엄마는 품 안에 있던 나를 먼저 내보내야 한다며 말했고 아빠는 아니라며 같이 나가야 한다고 했지만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엄마는 기다리고 있을 테니 꼭 와야 한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지. 어쩔 수 없이 아빠는 나를 먼저 바깥으로 내보내야 했어. 주변의 누군가들에게 급히 나를 안겨놓고선 아빠는 또다시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갔고 결국 두 분 다 나오지 못했어. 사실 지금 말하는 것들도 내 기억의 일부는 아니야.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들을 통해 들었을 뿐이지."

말을 하는 동안 감정에는 변화가 없는 듯 평온한 표정이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아서는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마음 한편에 슬픈 감정들을 모두 집어넣은 뒤 자물쇠로 굳게 걸어 잠근 뒤 긴 시간을 그렇게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누군가 굳게 잠긴 문을 여는 순간, 수현이는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슬픔을 느끼게 될지도. 

우리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린다. 

"그래서 말인데,, 오해는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조금은 네가 부럽기도 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현이를 바라봤다.

"떠올리고 싶으면 떠올릴 수 있잖아. 엄마와 함께 보낸 추억들에 대해서 말이야. 나는 그런 게 하나도 없거든. 말했듯이 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해. 네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도 이런 말을 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동안 고민을 하고 말았다.

"아니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네 말이 맞아. 나는 언제든 엄마를 떠올릴 수 있는 게 사실인걸. 내가 너였더라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거야. 그러니 정말 괜찮아."

수현이는 고맙다며 웃어 보인다. 그리고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더니 큰소리로 외친다. "엄마. 아빠. 저 할머니랑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하늘에서 잘 지켜보고 있죠? 사랑해요. 진우야 너도 해봐." 괜한 쑥스러움에 괜찮다는 말을 할 뿐이다.

"있지 나는 가끔씩 이곳에 와서 큰소리로 외치곤 해, 혹시 모르잖아. 엄마 아빠가 내 목소리를 듣고서 꿈속에 나타날지도." 그 말을 듣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큰소리로 "엄마. 나 할아버지 만났어. 함께 오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어쩔 수 없다는 것 잘 알아. 엄마가 나보다 더 이곳에 오고 싶어 했다는 것도. 여름방학이 되면 캠핑 가자고 했던 약속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미안해하지 않으면 좋겠어. 할아버지 동네는 정말 좋은 곳이야. 이곳에서 좋은 친구도 만났어. 잘 지켜보고 있지?"

수현이는 '좋은 친구'라는 말에 웃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숲 속에서 보낸 뒤 마을로 내려왔다. 

숲의 입구를 지나치자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직감적으로 방학 동안 이곳에 여러 번 오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어느새 밭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내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진우야. 어디 다녀오는 길이니?"

"네. 수현이가 동네 구경시켜줬어요. 우리 친구 하기로 했거든요."

할아버지는 잘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서 밥 먹자."

머리를 쓰다듬는 할아버지의 손길에서 흙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났다. 기분 나쁜 냄새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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