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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May 29. 2021

학방름여

선생님의 뒤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간다.
다시금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에 힘이 빠지는 것 같다. 먼발치 의자에 앉아있는 승현이의 모습이 보인다. "승현아" 하며 부르자 목소리를 듣고 내게 뛰어와 손을 잡으며 말한다. 

"괜찮아?"라고 묻는 물음에 "응, 괜찮아. 아니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울컥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오늘만큼은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아 꾹 참아본다.

"방학식은 잘 끝냈어." 승현이의 말에 잊고 있었던 방학식이 떠올랐다. 

'아차 오늘은 방학식이었지. 엄마와 함께 캠핑을 떠나기로 했는데..'

여전히 생생한 기억은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나의 마음에 큰 북을 치고 있는 것처럼.

"친구들 모두 네 걱정을 했어. 학방름여 잘 보내라고. 꼭 전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어"

거꾸로 말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래 맞아. 학방름여를 잘 보내야지"

옆에서는 승현이 엄마와 처음 보는 할아버지 한분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발견한 승현이 엄마는 "진우 왔구나."

자연스럽게 품여 안겨본다. "이모. 그런데 옆에 있는 할아버지는 누구예요?" 

대화가 멈추고 시선이 나에게로 고정됐다. 할아버지와 처음 마주하게 됐다,

햇빛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 사이로 깊게 파인 주름이 나이를 가늠케 했다. 

나의 볼을 쓰다듬는다.

깊게 박힌 굳은살과 거칠어진 손마디 사이의 느낌에 거부감이 들다가도 이내 낯선 이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경계심은 사라지고 만다.

"네가 진우구나."

잠시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바라보기만 했다.

"할아버지예요?"

얕게 퍼지는 미소 사이로 "그래. 할아버지란다. 잘 지냈니?"

잘 지냈냐는 말 한마디가 뭐가 그리 대단한 말이라고,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눈물을 닦아보려 했지만 소매는 흐르는 눈물을 닦기엔 역부족이다.  

"분명 어제까지는 잘 지냈는데요. 이제 잘 지내지 못해요 엄,, 마가, 엄마가 죽었으니까요."

옆에서 지켜보던 승현이도, 이모도, 선생님도 모두 숨죽여 눈물을 흘린다.

할아버지는 나를 껴안는다.

"할아버지가 미안하구나, 이제야 너를 만나러 와서 정말 미안하다." 

"할아버지. 엄마는 왜 죽은 거예요? 우리 엄마는 나쁜 짓도 안 하고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엄마가 왜 죽어야 해요?" 할아버지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나의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흐느끼는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울 뿐이다.

눈물을 흘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머리는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그런 생각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있다.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대화를 나누던 우리가 어째서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것인지, 왜 함께 캠핑을 갈 수 없는 것인지,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해서 인 것인지. 

그래서 엄마가 나 대신 죽음을 맞이한 걸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마음속 깊은 곳에 선 수도 없이 질문이 나오지만 답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한 채로 맴돌기만 한다. 

그날 밤은 울다 지쳐 할아버지의 품에서 잠에 들었다. 


다음날부턴 며칠 동안 정신없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승현이 엄마는 내가 상주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상주가 뭔지, 왜 엄마의 사진 앞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을 맞이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에 처음 마주하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승현이는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보냈다.

장례식 마지막 날 밤. 

"진우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이모는 정말 좋은 곳으로 갈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내일 이모를 잘 보내주자" 

"응, 그래야지."

승현이는 나와 몇 마디를 채 주고받기도 전에 잠에 들고 말았다. 피곤한 것인지 코까지 골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승현이가 했던 말들이 잊히지가 않았다.

엄마를 보낼 준비가 안됐는데,, 왜 승현이도 그렇고 모두들 엄마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갈 것처럼 행동하는지. 나는 그 어떤 준비도 안되었는데, 

아직도 잠든 나를 일으켜 세워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말할 것 같다. 

또 눈물이 흐른다. 

그 순간, 누군가 방문을 열어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갔다. 

잠시 동안 흐르는 눈물을 꾹 참아냈다.

제대로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진우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승현이 엄마의 목소리 뒤로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른다.

"우선 시골로 데려갈 생각입니다. 급하게 올라온 탓에 정리하지 못한 것들도 있고,, 여름방학이니 진우를 시골로 대려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집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시간 날 때마다 둘러보면서 확인할게요"

"고마워요. 가족도 아닌데, 이렇게 첫날부터 계속 같이 있어주시고."

"아니에요. 진우 엄마랑은 정말 친한 사이니까요. 이 정도쯤은,, 이 동네에 이사와 아는 사람이 없을 때 가장 먼저 알게 된 것도 진우 엄마였고 외로움을 극복하게 해 준 것도 진우 엄마 덕분이었죠. 최근에 들어서야 가족이 아무도 없는 이유를 알게 돼었어요. 아버님도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할아버지의 멋쩍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다 지난 일인걸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낼 줄 알았으면 못난 자존심 세우지 말고.. 먼저 찾아 나서야 했는데 어디선가 잘 지내겠지.라는 생각만 하다가 이런 일을 받아들이게 되니 저도 마음이 참.."

곧이어 눈물소리가 들렸다. 이내 할아버지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눈물을 보인 것은, 내 앞에선 눈물을 흘리지도 그 어떤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기에 나는 할아버지가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뛰쳐나가 할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발걸음이 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울음소리에 맞춰 숨죽여 눈물을 흘리는 게 전부였다.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게 된다.

"진우야 일어나야지" 울다 지쳐 잠든 모양이다.

"오늘은 엄마를 보내주는 날이야. 며칠 동안 잘했으니 오늘도 잘할 수 있지?"

아직은 잠이 덜 깨 눈 이반쯤 잠긴 상태로 "네. 그럼 이모 이제 우리 못 만나요?"

승현이 엄마는 나의 말에 깜짝 놀라 "아니야. 엄마는 떠나지만 이모는 앞으로도 진우 곁에 계속 있을 거야"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진우야. 이모가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순 없겠지만,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이모에게 연락해도 좋아. 불쑥 찾아와도 괜찮고. 우리는 그런 사이야 알겠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인기척 소리에 승현이도 일어났다.

방을 나서자 한편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숙여 인사 하자 할아버지는 얕은 미소로 답한다.

"진우야 잘 잤니?"

"네 잘 잤어요. 할아버지는요?"

조심스레 곁에 앉는다.

"할아버지도 아주 잘 잤어."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해 보였다.

눈도 빨갛게 부어있다.

마음속으로 할아버지는 정말 괜찮은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생각에 그칠 뿐이다.

다 같이 모여 아침을 먹고 마지막 준비를 서둘렀다.

"진우야 엄마의 사진을 챙겨줄 수 있겠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엄마의 사진을 품에 안고 버스에 올라탔다.

화장터로 이동을 한 뒤 그곳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나의 모습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엄마의 떠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버스 창밖 너머로 보이는 바깥의 풍경들이 나타나 빠르게 사라져 간다.

'엄마. 며칠 만에 바깥에 나오니까 어때? 오늘은 날씨가 무척이나 좋아.'

화장터에 도착하자 우리뿐만이 아니라 누군가들을 떠나보내 려는 사람들의 차량이 주차장 가득이다.

버스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큰 화면 속 엄마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마지막 인사를 씩씩한 모습으로 하고 싶었다.

주먹의 불끈 쥐어본다.

바깥에 나가 있던 승현이는 냅다 뛰어 들어와 "비가 와. 날씨가 맑더니 옷이 다 젖고 말았어"

승현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굵은 빗방울이 땅바닥을 적시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어쩌면 엄마의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엄마의 이름이 적힌 화면만을 바라봤다.

엄마의 화장이 끝날 무렵.

신기하게도 비는 그치고 다시금 햇살이 창 너머로 내부를 비춰냈다.

화장이 끝난 뒤 유골함을 마주하자 눈가에선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재빠르게 소매로 눈물을 닦아본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못 본 것인지 보고도 모른 척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유골함에선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차가움만이 나의 손에 닿을 뿐이다.

승현이, 이모, 할아버지, 그리고 나. 우리는 납골당을 향해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며칠 새 일어나버린 일들은 여전히 감당하기엔 벅차고 힘겨운 일이다. 지정된 납골당 안에 엄마의 유골함을 넣자 그제야 실감이 난 듯 몸에선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버리는 것 같다. 한참을 바라봤다. 유골함 옆으로 놓인 나와 엄마의 다정한 사진만이 우리의 존재를 이어주고 있다. 마음속으로는 이제 그만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아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다. '엄마 잘 지내고 있어야 해. 또 올게' 

손을 잡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할아버지는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의 유골함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제야 나는 엄마와의 작별인사를 했다.

"엄마 사랑해"

며칠 만에 돌아온 집은 변한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이모는 시골에 가져갈 짐들을 챙겨주었다.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와본 우리 집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옮겨 다녔다. 마치, 엄마의 흔적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에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가만히 벽면을 바라본다. 벽면에는 엄마와 나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대뜸 "액자를 가져가고 싶어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다.

안방에서 짐을 챙기던 이모는 거실로 고개를 내밀어 " 그래 진우가 가져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말이 끝나자 승현이는 내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말한다.

"내일 아침에 시골로 갈 거야. 그럼 방학 동안은 만나지 못하겠다. 너도 할아버지를 따라서 시골에 가는 거지?

방학이 끝나고 나면 네가 다녀온 시골이 어땠는지 말해줘."

"응 알겠어. 그런데 방학이 끝나고 우리가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승현이는 쓸데없는 소리라며 웃는다. "아니야. 엄마가 그러는데 진우 넌 방학 동안만 시골에 가는 거라고 했어." 대화는 시시하게 종료된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엄마가 없는 집으로 정말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맴돈다.

저녁이 되자 냉장고 안 모든 반찬들을 꺼냈다. 상할 것 같은 음식들은 정리했다. 북적거리는 식탁 위에선 많은 감정들이 교차한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엄마와 내가 전부인 식탁에 여러 명이 모인 것이 말이다.

"이모 고마워요. 승현아 너도 고마워."

뜬금없는 말에 잠시 동안 손동작이 멈춰 서더니 이내 미소로써 답한다.

긴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눈치다.

늦은 밤이 돼서야 두 사람은 돌아갈 준비를 했다.

" 진우야 이모네 가족은 내일 아침 시골로 떠날 거야. 가기 전에 들릴 테니까. 그때 다시 인사하자"

승현이는 졸린지 눈을 비볐고 엄마의 뒤를 따라나갔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남은 공간에서는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몰랐다.

어색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할아버지 저 먼저 들어가서 잘게요"

"그래. 진우야 먼길 가려면 어서 자야지" 거실 바닥에 누워 잘 준비를 하던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내일부턴 정말 '학방름여'가 시작이야. 

엄마는 내가 슬퍼하고 울기만 하면 더 힘들겠지? 그래 그럴 거야.'

며칠간의 피곤함이 쌓여 나타난 것인지 머지않아 잠에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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