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살기 위해 먹는 사람도 있고 언제부턴가 먹방이 하나의 흐름이 된 요즘.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나는 살기 위해 먹는 편이다.
지금은,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 있지만 일을 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무언가를 먹는 일은 늘 뒤로 밀리고 밀려 내 안의 줄을 다시 서고 다시 서야 한 끼를 때우는 일이 많았다.
그런 내가, 아기를 낳고 아기를 키우며 아기가 먹고사는 일에 열을 올린다.
유기농 재료들을 신중하게 고르고, 각종 재료를 고르는 법을 익히고 재료들의 조합을 생각해가며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이유식을 다짜고짜 시작했다.
냄비 하나 들고 시작해 불 앞에서 하루 종일 저어대고, 잘 걸러지지도 않는 잎채소들을 탁탁 걸러 가며 고운 쌀가루에 색색의 채소들을 섞어 이유식을 만들어댔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첫날. 말이 쌀미음이지 물에 가까운 그것을 스푼으로 받아마시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너.
스푼 안에 담긴 쌀미음이 뭔지도 모르고 넙죽넙죽 잘도 받아마시는 너를 보며, 네가 쥐고 있던 그 스푼 끝에서 네가 먹어만 준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만들고 말겠다는 내 의지를 엿보았다.
물론, 힘든 순간도 많았다.
있어야 할 재료가 냉장고에 없어 마트에 달려간 적도 여러 번.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 쉬지도 못하고 조용조용 몰래몰래 이유식을 만들던 시간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매번 잠들지 못하고 아이의 식사를 준비했다.
“그냥, 사 먹으면 되지.”
분명 내가 자주 하던 말인데 이상하게 아이에게는 적용이 안된다. 아이 앞에 마주 앉아 내가 만든 이유식을 신나게 오물거리는 작은 입을 보고 있으면 그게 안된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아이는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어주었고 쌀미음을 삼키던 작디작은 아이가 봄 여름 가을 세 개의 긴 계절을 보내고 어느새 겨울을 맞이했다. 겨울을 맞이한 아이는 몰라보게 자라 있었고 오늘의 얼굴과 내일의 얼굴이 달랐다.
아기의 성장은 그런 것이었다.
아이는 먹을 수 있는 것, 먹고 싶은 것이 참 많아졌고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많아져 행복한 고민을 했다.
모유에서 분유로 분유에서 이유식으로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 아이는 또 다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아이는 이제 밥솥에서 퍼낸 밥으로 밥을 먹는다. 첫 번째 생일이 다가올 동안, 아이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된 것이다.
처음 밥솥을 열고 아이의 밥을 덜던 날, 그건 처음 이유식을 만들던 때와 또 다른 감동이었다.
남편에게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아이가 세끼를 먹게 된 이후부터는 더욱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 서운한 마음을 안다.
하지만, 이제 뛰는 듯 걷는 이 놀라운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이제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반찬을 두고 동그랗게 앉아 밥을 먹을 것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나누고 별일 아닌 농담으로 웃음이 오르고 내리는 식탁 분명 그날이 올 것이다.
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 그것들을 먹고 여물어가는 너의 모습.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내일의 식사를 궁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