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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Oct 06. 2018

리우 데 자네이루: 슬픈 눈의 예수

두 얼굴의 도시


20170727~20170729: Rio de Janeiro, Brazil


밤이 깊어서야 리우 데 자네이루에 도착했다. 나는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이 도시의 명성보다, 총성이 오가는 악의 소굴 이미지 같은 악명에 사로잡혀 있었다. 공항버스가 내려준 코파카바나 해변의 거리에서 내가 묵을 호텔까지는 도보로 두 블록.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바짝 긴장한 채 걸었더니, 방에 들어와 문을 닫자마자 힘이 쭉 풀렸다.


코파카바나, 이파네마 해변. 해변의 축구라니 정말 브라질같다고 생각해서 셔터 눌렀는데 나중에 확대해 보니까 포즈 취해주셨더라. 20170728,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먼 곳의 낙원


첫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일 년 내내 뜨거운 리우의 태양은 벌써 한창 타오르고 있었다. 빨래를 맡기고, 장을 봤다. 아침 일상이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평화로워서 어젯밤의 긴장이 멋쩍게 느껴졌다. “오브리가다!” 경쾌한 포르투갈어 인사가 또르르 귓전을 굴러다녔다. 한 달 넘게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을 돌아다니다가 브라질에 오니 조금 더 낯선 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코파카바나 해변과 이파네마 해변은 이른 아침부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붐볐다. 한가로이 누워 책을 읽거나 공을 차는 사람들의 얼굴에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이 머나먼 해변에서 아침 산책을 하는 스스로가 문득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두근거렸다. 낯선 언어와 쉼 없는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해변을 걷다가 앉다가 했다. 낙원이 따로 없다고, 그 순간만큼은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가니까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이 나왔다. 시청 앞 광장은 유럽의 여느 큰 도시들처럼 붐볐다. 고층 빌딩들 틈에 느닷없이 불시착한 외계인의 우주선처럼, 또 고대의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아 있는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도 인상적이었다.


메트로폴리타나성당 앞에 십자가가 없었다면 누구라도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심의 풍경. 20170728,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성당 안의 모습. 20170728,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그리고 어떤 지옥


낙원으로서의 리우는 허울 좋은 모래성 같았다. 지옥에 가까운 삶들이 너무나도 가까이에, 지독히도 많았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에서 몇 발자국을 걷자 걸인들이 곳곳에 드러누운 거리가 나타났다. 고가도로 아래에는 듬성듬성 집 아닌 집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무장한 경찰차가 지키는 이곳이 리우의 옛 도심인 센트로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카리오카 수도교, 셀라론 다리로 이어지는 센트로 지역은 구도심 특유의 허름하고 빛바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페인트 칠이 벗어진 옛 건물들이 한때의 화려한 광영을 더듬더듬 말하고 있었다.


브라질은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다. 우리나라보다도 명목 기준 GDP가 높다. 리우는 한때 이 나라의 수도였던, 지금도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거기 누운 사람들의 처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침부터 나체로 해변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며 먹고 마시던 이들의 태평한 얼굴. 깡마른 몸 위에 옷가지조차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아스팔트 도로 위에 널브러진 다른 이들의 텅 빈 얼굴. 이 도시에서의 가난은 남미 그 어느 곳에서의 가난보다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왼쪽 맨 위부터 카리오카 수도교. 셀라론 계단으로 향하는 길에 본 쇠락한 건물들,  벽에 그려진 그림들. 그리고 셀라론 계단. 20170728,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경찰조차 들어갈 수 없는 곳.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어 나간다는 곳. 거칠고 가난한 빈민 구역을 브라질에서는 ‘파벨라(Favela)’라고 부른다. 리우에만 파벨라가 수백 개라고 했다. 해 지는 슈거로프 산(Pão de Açúcar) 위에서 내려다봤던 아득한 불빛들 틈바구니 어딘가에 그 파벨라들이 있었을 것이었다. 최근에는 파벨라를 돌아보는 투어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누군가의 삶에 대해 생각하자니 관광이라는 행위의 모든 것들이 신물나게 느껴졌다.  


빵산이라 불리는 슈거로프산 위에서 석양을 보았다.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더 예쁜 하늘이 된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추웠다. 20170728,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리우를 대표하는 명소는 해변도, 파벨라도 아닌 예수상(Cristo Redento)이다. 코르코바도(Corcovado) 산 정상에 브라질이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세워졌다. 무게만 1000톤이 넘는다는 세계 7대 불가사의다. 가까이서 본 예수상은 생각보다도 더 거대하고 정교했다. 커다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자국이 선명한 두 손으로 리우 시내를 감싸 안은 형상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악명 높은 파벨라가 있어서 혹자들은 그곳을 예수조차 등을 돌린 빈민촌이라고들 말한다고 했다.


예수님의 못 박힌 발아래엔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바깥의 왁자지껄함이 완전히 차단된 다른 세상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 잠시 두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이 대륙에 온 뒤로 자꾸만 눈에 밟히고 마음이 쓰였던 소외된 풍경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밖으로 나와 거대한 예수님을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슬퍼 보이는 눈이었다. 등을 돌린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예수님 등 뒤에 십자가 대신 처절하게 가난한 그 동네가 매달려있었다.


예수상에 올라서 본 예수님, 그리고 그 아래 전경. 20170729,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예수상 아래의 리우데자네이루. 20170729,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따로 또 같이


험하다는 리우의 낮과 밤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던 건 우유니를 기점으로 만났던 동갑내기 일행 M과 J 덕분이었다. M과 J는 함께 타지에서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다.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S언니의 소개로 두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둘은 쌍둥이처럼 똑같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안경 뒤에서 환하게 빛나던 수더분한 미소가 그 친구들의 첫인상이었다.


신세를 참 많이 졌다. 좋은 카메라로 찍은 멋진 사진들도 선물 받았고,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이 친구들의 지인 은혜를 입어 한식 파티를 했다. 다시 리우에서 M과 J를 만났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헤어진 지 보름 만의 재회였다. 나보다 며칠 앞서 리우에 들어어온 M, J가 머무는 에어비앤비 맞은편에 숙소를 잡았다. 우리는 첫날 밤늦게 만나 산티아고의 한식 파티를 추억하면서 고기를 잔뜩 구워 쌈에 싸 먹었다. 리우 여행은 그래서 시작부터 든든했다. 차분한 성격과 철저한 준비성으로 무장한 이 친구들과 함께여서 참 좋았다. 리우가 마지막 행선지였던 이들로부터 아프리카를 버틸 힘이 되어 준 라면 등의 보급품도 많이 받았다.


뜻밖에 다시 만나게 된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이구아수에서 브라질 이구아수까지 국경을 넘는 동안 만났던 K오빠, 그리고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와 이구아수에서 며칠을 함께 했던 J 언니, M언니까지. 긴 인생에서, 길지만 짧은 여행을 하는 동안 아주 잠시 스쳤을 뿐인데 꽤나 특별하게 정들어버린 사람들이었다. 리우는 내가 남미 여행에서 맺었던 이 모든 인연들과 작별하는 곳이었다.


충격의 삼바 클럽. 다들 잘추시더라. 20170728,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진정한 로컬 삼바 클럽은 무서운 길거리에 있었다. 20170728,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소소한 여행 팁

1. 공산품 브라질에서 사지 말자. 리우 시내에서 아이폰 충전기와 케이스 하나를 샀는데 7만 원이 넘었다.

2. 예수상까지 가는 길은 워낙 험하다. 경찰이 살해를 당하는 빈민촌 파벨라가 지척이다. 해변가 숙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우버를 불러다가 셔틀 승합차 타는 곳으로 올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기사가 안전을 위해 빈민촌 반대편으로 빙 돌아 올라가 준 덕분에 그 위험하다는 곳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3. 리우데자네이루 최고의 삼바 클럽이라는 Rio Scenarium – Pavilhao da Cultura에도 갔었다. 삼바 쑈라길래 카니발 할 때 입는 의상 입고 댄서들이 현란하게 춰주는 줄 알고 우르르 몰려갔는데 ‘우린 연주할게, 너희가 추렴’ 제도여서 당황스러웠다. 오고가는길 모두 우버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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