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eath in Sep 26. 2018

이구아수: 기꺼이 압도되는 것

폭포를 보며 툭툭 털어내기

20170725~20170727: Puerto Iguazú, Argentina – Pos du Iguazu, Brazil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사실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한데 모여서, 그 잘은 것들이 나약한 마음을 실컷 괴롭혀댔다. 온몸으로 이구아수 폭포(Las Cataratas de Iguazu)를 마주한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순간의 감동을 위해 내가 작은 일에 마음을 쓰며 그토록 흔들렸음을.


하류의 폭포들을 위에서 보면 이랬다. 20170726, 푸에르토 이구아수, 아르헨티나

상실낙심으로 와서


늦잠을 잔 것부터 문제였다. 늦잠을 잤으면서 계획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더 둘러보았다. 에어비앤비로 돌아왔을 때는 공항버스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13층에서부터 캐리어를 들고 뛰어내려 갔다.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겨우 우버를 불러 공항에 갔다. 비행기를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진이 빠진 상태였다.


아르헨티나의 가을을 떠난 비행기는 여름에 도착했다. 푸에르토 이구아수 공항에 발을 딛자마자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쳤다. 갈라파고스를 떠난 지 딱 한 달, 오래간만에 만난 여름인데 심신이 지쳐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반쯤 넋을 놓고 짐을 기다렸다. 승객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백팩 하나가 나오질 않았다. 작은 공항의 도착 홀이 텅 비고, 컨베이어 벨트마저 멈춰 섰다.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해졌다. 아르헨티나 항공 직원들은 상황 설명은커녕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 짐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거야?
음.. 그건 아닐걸. 사실 잘 모르겠어. 다른 비행기에 실려서 갔을 수도 있어.
나 내일모레 새벽에 브라질 가는데?
어떡하지? 알아보긴 할 텐데 일단 지금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태연한 직원들 때문에 기가 찼다. 푸에르토 이구아수에 딱 이틀 머무르는데 가방이 그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해야 할지. 완전히 잃어버린 거라면 어쩌지. 막막했다. 덜렁거리기라면 어딜 내놔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내가, 한 달간 아무런 사고를 치지 않고(칼라마 빼고) 험난한 남미를 무사히 다닌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기적이었다. 신의 덕택이었지만, 나 역시 그만큼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다녔다. 그 수고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나 싶어서 상실감이 컸다.


하류의 크고 작은 폭포들을 곁에서 보았을 때. 20170726, 푸에르토 이구아수, 아르헨티나


호스텔에 짐을 풀었을 때, 기운이 하나도 없었는데 할 일은 많았다. 브라질로 넘어가는 방법을 알아보고, 환전도 해야 했다. 주저앉고 싶었는데 더 나아가야 할 길이 있었다. 억지로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에도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짐은 오지 않았다. 이구아수 폭포를 보러 가야 했다. 파라나 고원 끄트머리, 이구아수 강의 하류에서 쏟아져내리는 지구 상에서 가장 큰 폭포. 이 대륙에 왔으니까 봐야 하는 곳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폭포의 위용을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차마 그려보기 힘들어서 그랬나 보다.


배를 타고 폭포의 밑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본 폭포.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야생동물들. 20170726, 푸에르토 이구아수, 아르헨티나

만사를 씻어내는 소리


폭포를 향해 난 숲길을 따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멀찍이 들리던 물의 괴성이 차츰 내게 다가왔다. 마침내 초록 이파리들 틈으로 어마어마한 물줄기들이 낙하하는 것이 보였다. 빛깔과 모양이 또렷한 무지개들이 도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압도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그 뿌리로 가장 가까이 가려면 폭포 낙하지점 바로 앞까지 다가가는 보트를 타야 했다. 기꺼이 배에 올랐다. 수압에 온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것만 같았다. 폭포 아래로 완전히 들어갔다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찍은 영상을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 거대한 물의 장막 뒤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있을 것만 같아서 눈을 부릅떠보았으나 부질없었다.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젖은 몸이 가을 아침 숲의 날씨에 덜덜 떨렸지만 여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추위조차 값졌다.


고프로로 찍은 것. 고프로를 들고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20170726, 푸에르토 이구아수, 아르헨티나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하는 길, 소용돌이치는 물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20170726, 푸에르토 이구아수, 아르헨티나


274개의 크고 작은 폭포로 이루어진 이구아수의 절정은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이라 불리는 상류의 가장 큰 폭포다. 흠뻑 젖은 몸은 간간히 낮의 햇살을 쬐며 상류로 걷는 동안 바짝 말랐다. 마침내 인파로 가로막힌 악마의 목구멍에 도착했다. 형언할 수 없는 규모와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곳 원주민의 말로 이구아수는 ‘위대한 물’을 뜻한다고 했다. 그 이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암녹색의 물기둥들이 심연을 향해 쉼 없이 쏟아져내렸다. 어마어마한 물은 다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아득했고, 아찔했다. 심지어 7월은 물이 적은 건기였다. 포말이 까마득한 밑바닥 어디서부턴가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바닥이 저 끝 어딘가에 있었다. 무지개들은 폭포 사이사이에 겹겹이 매달려있었다. 그토록 형형한 무지개는 전에 본 적 없었다. 앞으로도 보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아이폰 따위로 다 담을 수 없는 물의 낙하.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 20170726, 푸에르토 이구아수, 아르헨티나


신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장관이었다. 그저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보이지 않는 바닥을 마냥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온갖 불순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청량했다. 나의 걱정이나 삶 위의 예측불허, 크고 작은 변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섭리의 불가항력, 그 흐름 속에서 나란 존재는 아주 미세한 부분에 불과했다. 인파가 사방에서 옥죄어왔지만 혼자 외딴 우주에 동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독한 채로 악마의 목구멍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조차 영(零)이 되어 실감할 수 없는 밑바닥 너머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밀림 어딘가에 아직 원시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악마의 목구멍. 압도적이다. 20170726, 푸에르토 이구아수, 아르헨티나


마음 새로고침,

다른 각도에서 보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물소리를 듣다가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과 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쯤 숙소로 돌아왔다. 나의 짐도 그곳에 돌아와 있었다. “그 봐, 다 잘 될 거랬잖아!” 호스텔 직원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활짝 웃었다.


브라질쪽에서 건너다본 건기의 이구아수는 낙원의 입구 같았다. 20170727, 포즈 두 이구아수, 브라질


짐과 함께 활기를 되찾은 덕분에 아침 일찍 포즈 두 이구아수로 향하는 길이 산뜻했다. 브라질 쪽에서 보는 이구아수는 또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숲길을 따라 트랙킹 하면서 폭포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파노라마 전경이 채색 잘 된 그림 같았다. 무엇이든지 다른 방면에서 바라보는 데서 오는 색다른 기쁨은 늘 기대보다 크다. 시원한 물줄기를 들으면서 잠시 잊고 지냈던 그 사실을 곱씹었다. 반대편은 건너뛸까 잠시 고민했던 것이 한심하게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반나절 동안 브라질 쪽에서 폭포에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브라질은 내게 남미 대륙의 마지막 나라였다. 여행이 중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악마의 목구멍 위에 펼쳐진 무지개는 그 위를 걸어서 건널 수 있을 것처럼 선명하고 눈이 부시다. 20170727, 포즈 두 이구아수, 브라질
앞에서 보는 악마의 목구멍. 20170727, 포즈 두 이구아수, 브라질

#소소한 여행 팁

1. 아르헨티나 쪽 폭포는 하류 순환코스(Circuito Inferior)와 폭포 위쪽을 도는 상류 순환코스(CircuitoSuperior)로 나뉜다. 나는 오전 중에는 하류 순환코스를 도보로 돌아본 뒤 점심을 먹고 상류 순환코스 열차를 탔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역에 내려서 걸으면 된다. (그나저나 이과수 아니고 이구아수였다니 충격과 공포다)

2. 폭포 아래쪽으로 다가가는 보트를 탈 생각이면 수영복을 입고 수건을 챙기자. 물이 튀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흠뻑 젖게 된다. 물론 폭포 구경하는 것 자체만으로 소나기 맞은 것처럼 젖게 되니까 옷 역시 젖어도 될만한 것들, 잘 마르는 것들로 입고 가자. 감기 걸리기 좋다. 비옷 있으면 챙기면 좋겠다. 폭포에서도 팔기는 한다. 물안경 있으면 가지고 가기를 추천한다.

3. 아르헨티나 이구아수는 쪼리 신고 돌아다녔는데 발가락이 좀 힘들긴 했지만 다닐만했다. 보트를 탈 생각이었기 때문에 신발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4.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에서 브라질 이과수로 넘어가는 버스표는 터미널에서 미리 구해두면 좋다. 표를 살 때 당일치기로 브라질 이과수에를 다녀올 건지, 아예 브러질로 넘어갈 건지를 직원이 물어본다.

5. 브라질로 넘어가는 승객들은 중간에 한번 짐을 전부 들고 아르헨티나 쪽 국경에 내려서 출국 심사를 받는다. 버스는 그냥 떠난다. 같은 회사의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티켓을 보여주고 타면 된다. 한 10분쯤 가다 보면 브라질 입국심사장에 내려주는데 다시 짐을 다 갖고 내려 심사를 받는다. 버스는 또 떠난다. 다시 같은 회사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면 된다. 기다리기 싫으면 그냥 다른 회사 버스 왔을 때 돈 또 내고 타면 된다.

6. 브라질 이구아수 국립공원에 짐 보관 락커가 있다. 표를 끊을 때 락커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짐을 거기 보관하면 된다.


이전 15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측벽(側壁)과 무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