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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Oct 21. 2018

상파울루: 다시 떠나기 위해

값 없이 베푸는 마음


20170729~20170731: São Paulo, Brazil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던 두 대륙,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간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브라질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비행시간은 10시간 안팎.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가 거의 모두 상파울루에서 출발한다. 이 징검다리 같은 도시에 사흘을 머물렀다. 그동안 나의 영혼과 육체는 완전히 충전되었다. 남미 대륙과 그럴듯한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찬 파울리스타 대로. 강남대로를 전면 통제해놓은 격. 날씨는 끝내주고 사람들은 흥겹고, 나는 행복했다. 20170730, 상파울루, 브라질


또 다른 여행

 

남미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상파울루에서의 시간은 나 자신을 채우고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할애하기로 처음부터 결심했다. 떨어진 생필품을 사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읽을 책을 몇 권 구입했다. 거의 40일 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도 봤다. 포르투갈어 자막이 나오는 <덩케르크>. 짧고 작은 일상을 만들고, 그 일상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마음을 다듬는 게 사실 무엇보다 중요했다. 처음으로 앞날이 정해진 것이 하나 없는 취약하고 불안한 시기를 살아내는 중이었다. 살아내고 있다기 보다도, 여행을 방패 삼아 견디고 있었다. 신앙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느 때보다도 신에게 의지해도 부족할 판인데 그러지 못했다. 주일마다 자꾸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길을 달려야 하는 일정이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마다, 아름다움 앞에 설 때마다 마음으로 기도를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절박했다. 여행의 절반이 끝났는데 나의 중심이나 신의 계획으로부터 마냥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이따금씩 귀국 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모든 게 무섭게만 느껴졌다.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믿는 신으로부터. 다행히 남미에서의 마지막 일요일은 이동을 하지 않고 온전히 상파울루에서 보낼 수 있었다. 교회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울리스타 대로의 노을과,  플리마켓이 들어선 거리, 쨍한 하늘과 알록달록한 벽화(?). 아마 평생 단 한번뿐일 브라질에서의 혼영. 20170730-31, 상파울루, 브라질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


남미 여행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민인 O 집사님이 계셨다. 여행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분이었다. 예배를 드리겠다는 사람들을 한인교회로 안내하기도 했다. 나와는 달리 반시계 방향으로 남미를 여행한 E언니는 이미 O집사님의 도움을 받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접을 받았어."
 

미심쩍은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O 집사님께 연락해 상파울루에서 한인 교회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O집사님은 현지 교민이라는 P 장로님을 소개해 주셨다. 상파울루에서 맞은 첫 아침, P 장로님 부부는 내가 머무는 곳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직접 예배에 데려가 주셨고, 잔고를 계산해야 하는 장기 여행자가 엄두를 내기 힘든 곳에서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 주셨다. 또 차를 타고 봉헤찌로나 쎄 광장 같은 상파울루 명소 곳곳을 돌아볼 수도 있도록 배려해 주시기도 했다. 


어색하고 낯설었던 마음은 자꾸 다가서는 친절한 미소와 따듯한 대화에 녹아내렸다. 난생처음 보는 어른들이었다. 단지 이때에 이 곳을 내가 여행한다는 이유로 만난 분들이었다. 그런데도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서 바닥보다 깊은 애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조금 더 미리 연락했더라면 숙소를 따로 잡을 것 없이 우리 집에서 지내면 좋은데. 헤어지기 아쉬워서 어떡해요. 다음에 올 땐 꼭 미리 연락하고 우리 집에서 자요.” 


목소리가 너무 좋으셔서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20170730, 상파울루, 브라질


대가가 없는 완전한 친절이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친절과 호의를 함부로 믿다가 자주 마음을 다쳐 비틀거렸다. 수지타산의 원리로 작동하는 세상을 살아내려면 나 역시 온전한 호의로 타인들을 대할 수만은 없었다. 차츰 의심하고 경계하도록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기자라는 직업이 그걸 더욱 부추겼다. 나의 천성과는 먼 것이어서 서글픈 훈련이었다. 


P 장로님 부부 덕에 세상의 방식과 다르게 베풀고 감싸는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돌이켜 생각하게 됐다. 종교를 떠나 누군가를 그렇게 대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신은 예배를 통해서 뿐 아니라 P 장로님 부부를 통해 나를 위로하셨다. 멋쩍고 경황이 없다는 핑계로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그분들께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헤어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받은 사랑은 나 역시 완전한 타인에게 기대 없이 베풀 때에나 갚을 수 있을 것이었다.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풀 만한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어른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상파울루에서 듣는 뉴욕 예찬. 20170730, 상파울루, 브라질


안녕, 

나의 첫 번째 남미


P 장로님 부부와 헤어진 뒤에는 마냥 거리를 걸었다. 마침 숙소 앞 파울리스타 대로(Avenida Paulista)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10차선은 될 법한 대로의 차량 통행을 완전히 막아두고 즐비한 고층 빌딩 틈바구니에서 왁자지껄 즐기는 분위기가 색다르고 흥겨웠다. 꼭 남미 대륙이 나를 위해 준비한 이별의 축제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한데 모여 춤을 추는 사람들을 만났고,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예술가들도 만났다.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을 걸었다. 어느새 마천루 머리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남미와 작별할 시간이라 싱숭생숭한데 거리의 음악가들이 자아내는 선율이 더없이 좋아서, 노을은 또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났다. 


끝내 이 노래를 들으면서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 노래인데. 너무 감미로워서. 제목 아시는분? 20170730, 상파울루, 브라질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
- 장 피에르 나디르, 도미니크 외드 <여행정신>


한국에서 남미로, 또 아프리카로 다시 대륙을 옮겨가지만 내가 단지 있는 곳을 달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바꾸기 위한 여로 위에 있었다. 걸음걸음이 내내 기적이었다. 조심성 없고 서투르기로는 제일가는 내가 소매치기 한 번 당하지 않고, 병원 신세 지지 않고, (비행기 한 번 놓치고 체크카드 하나 잃어버렸지만) 소중한 물건 잃어버리지 않고 남미를 무사히 여행했다. 


스쳐 지나간 모두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늘 돕는 손길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내 힘만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겠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아름다운 노랫말 틈에서 바로 그 순간에도, 나의 시간은 선한 방향으로 무르익고 있었다. 



연습을 열심히 한듯한 10대 춤꾼들. 20170730, 상파울루, 브라질
플래시몹인가, 거리의 평범한 댄서들. 20170730, 상파울루, 브라질




# 소소한 여행 팁


1. 혹시 나처럼 다음 여행을 준비할 사람들, 상파울로에서 생필품(기초화장품 등) 사지 않기를 바란다. 남아프리카가 더 싸다. 

2. 영화를 본 극장은 Playarte Cinemas 였다. 발권을 기계로 해야 했는데 더빙/자막 여부가 명백히 확인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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