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자마자 취업한 너의 첫 회사. 선배들이 입을 모아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그곳이다. 그만큼 박봉에 하드 하기로 유명한 곳이었으니까. 그때 너는 아직 군인의 물이 빠지지 않았을 때라 도전 정신이 투철했던 걸까?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에 휘말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너는 첫 회사로 '우리들'에 입사했다.
동화에서 청개구리는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뭐든지 반대로 했던 자신을 뉘우치며 비가 올 때마다 개굴개굴 울었다. 청개구리 심보로 도전했던 첫 회사에서 너 역시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회사에서 집이 지하철 다섯 정거장 거리밖에 안 되는데 야근하느라 집에 못 가는 날도 있었다. 너는 사내 보건실에서 자고 화장실에서 씻으며 20대 후반의 꽃다운 청춘을 회사에 바쳤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 가득 차올랐을 때 너는 선배를 만났다. "네가 아직 사회 초년생이니 최소 3년은 경험해 봐야 그 조직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거야." 순진했던 너는 선배의 조언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그래,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겠지!' 회피하려던 마음을 어렵게 고쳐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공교롭게도 너는 새로운 곳으로 발령이 났다. '정말,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네!'
유통회사 우리들 역사상 최대 규모인 신규 점포에 운 좋게도 오픈 멤버로 합류한 것이었다. 너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흘렸던 눈물을 보상받는 기분을 느꼈다. 아무나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는 기대감으로 너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더 힘든 나날이 펼쳐졌다. 일은 잘하지만 악명 높은 15년 차 팀장에게 "야, 너 인생 그 따위로 살지 말아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혼났다. 심지어 너는 식사할 때도 팀장에게 혼나서 체하고, 잘해보려고 해도 혼나고 또 혼났다.
'지금까지 살면서 뭘 해도 못한다고 욕먹어 본 적은 없었는데... 그래도 애정이 있으니까 혹독하게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 여전히 순진한 너는 스스로를 다독여봤지만, 팀장은 여기저기에 너의 험담을 하고 다녔다. 그동안 팀장의 언행이 애정인지 증오인지 헷갈렸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당시 입사 2년 차가 된 너의 연봉은 2천만 원 초반대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1년 차 때는 2천만 원 후반 대였는데 "신입 사원이 입사 1년 만에 무슨 성과를 낸다고 성과급을 주겠냐"라며 2년 차 때는 아예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었다. 회사의 꼼수 계약이었다. '겨우 이 돈 벌자고 하루에 13~14시간씩 일하며 개고생을 하는 건가?' 너는 또 현타가 왔다.
하지만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주위에 자랑하고 다니는 엄마의 체면을 생각할 때 너는 선배의 조언대로 일단 3년까지만 버텨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퇴사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회사에서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파격적으로 연봉 50% 인상안을 언론에 발표한 것이었다. 신입사원 초봉을 최고 4천만 원까지 올려주고 인재 영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오 마이 갓! 이로써 너의 첫 직장 생명은 순조롭게 연장되는 듯했다. 지금 돌아보면 일 잘하기로 유명한 팀장이 코흘리개였던 너를 볼 때 얼마나 어설프고 한심했을지 이제야 짐작이 갈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팀장은 노동 수익, 자본 수익의 개념을 설명해 주며 100만 원을 잃어도 좋으니 주식을 시작해 보라는 조언도 너에게 해줬고, 브랜드의 역사와 타깃 고객을 분류하는 개념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한번 혼낼 때, 아니 자주 혼낼 때마다 무섭게 혼내서 그렇지 사실은 츤데레 같은 사람이었다고 너는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채 출신들만 파격 연봉제의 혜택을 받는 바람에 M&A를 통해 한 식구가 된 팀장은 찬밥신세였다. 순식 간에 15년 차 팀장과 신입사원인 너의 연봉 격차가 순식간에 좁혀지는 망측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과연 팀장의 마음이 어땠을까? 너를 향한 애증의 마음에서 '애'는 떨어져 나가고 '증'만 남아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너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던 연봉 인상이 회사 전체적으로는 공채냐 아니냐 출신 성분에 따른 갈라 치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너가 잘못한 건 없는데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나날들이 펼쳐졌다. 식사를 할 때도 팀장의 자존심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너가 계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 회로를 광속으로 돌리곤 했다. '3년을 채울 수는 있을까?' 너는 고민에 빠졌다.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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